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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란 Apr 20. 2024

나도 꽃이로소이다

4월 중순인데 어느 날 갑자기 더워졌다.

텃밭에 일해야 하는데,

고추 심을 밭도 아직 만들지 못했는데,

때 아닌 봄 감기로 남편과 나는 거의 3주를 끙끙 앓아누웠다.

산골로 들어온 지 13년째,

그동안 감기 한번 했던 적이 없던 무적의 몸이라 주변에 떵떵거렸었는데 자연에게 잘난 체 그만하라며 머리를 한대 꽁! 얻어맞고 이번에 보란 듯이 무너졌다.

입맛도 없고 기운도 없고 둘이 골골거려 댔더니

큰언니가 건강에 장사 없다며

머루포도즙과 비타민c를 보내주어 열심히 먹어댔다.

병원에서 링거 한 병 맞는 것보다 포도즙이 더 좋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고 먹은 탓인지 조금씩 몸이 살아나길래,

햇빛 좋은 하루  텃밭에 나가보니

냉이꽃이 밭을 다 뒤덮었다.

이런!

발에 차이고 무릎에 차이고

이걸 다 어떡하나!

제때 캐어서 먹지 못한 탓도 있거니와

못 먹을 바엔 제깍 뽑아줘야 했었는데

그러지 못한 결과가 이리도 엄청나다.

남편도 나도 기운이 없다.

"그냥  둡시다"

덕분에 하얀 냉이꽃에 오래도록 눈길이 머문다.

꽃 한번 피우지 못하고 냉이 나물로 냉이 된장국으로 다 뽑혀 제 향을 톡톡히 뽐내다가,

비로소 살아남아 하얀 냉이꽃의 존재를 이리도 과시하니

나도 꽃이로소이다.

이쁘다.

그래 너도 참 이쁜 꽃이었구나.

벚꽃 잎이 분홍꽃비가 되어 땅을 흐드러지게 덮을 즈음 너의 존재는 이리도 빛이 난다.

그렇지만 내게는 짐이 되어 다가오니

저걸 언제 다 뽑나!



도종환 님의 '접시꽃 당신' 시를 떠올리다가

나는 오늘 '냉이꽃 당신'을 적어본다.


찬란한 봄날

살랑 부는 바람마저

이상하게 춥네

질질 신발 끌며

마지못해 들이 찍는 괭이질에

그만하소 그만하소

냉이 꽃이 울고 있어

흰머리에 내려앉은 복숭아 분홍꽃이

힘에 겨워 부르르 떨고 있어

잠깐 앉아

분홍 꽃 털어보게

오늘 못하면

내일 하면 되지

냉이꽃 세상에서

잠시 딴 세상 인양

내 걱정만 앞세웠어

구경꾼의 엉덩이도 괜찮을걸

대신 내년 된장국엔

흐드러지게 냉이가

들어앉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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