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을 뜨개질하다

by 즐란

몇 년 전 남편이 뇌출혈로 쓰러져 입원해 있던 4개월 동안 한 달은 중환자실에 있었고 그 다음 한 달은 중환자급 일반병실이라 간병인을 두고 있었고 나머지 두 달은 내가 직접 간병을 했다.


6번의 수술로 인해 머리를 빡빡 깎게 되었는데 머리뼈를 들어낸 부분이 함몰되어 두상을 보호하는 측면이나 외관상 보기가 안쓰러워서라도 모자를 써서 가려야만 했다.

간병인이 있는 동안 짬짬이 시간을 내어 구정뜨개실로 모자를 만들어 놨다가 검사를 받으러 간다든지 협진을 받으러 간다든지 할 때에는 휠체어를 타고 내가 뜬 모자를

씌워 다녔다.

같은 병실 사람들이 시중에 파는 모자보다 훨씬 예쁘다고 진담인지 그냥 하는 말인지 모를 말들을 해댔지만 그때는 그런 말에 일희일비할 겨를이 없었다.


갑작스러운 남편의 쓰러짐으로 인해 내내 정신이 혼란스러웠고 그 와중에 죽음이란 단어를 신중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안 좋은 일이 언제, 어디에서 불쑥하고 생길지 몰라 나라도 유서를 써놓아야 할 것 같았다.

짧은 유서를 작성해놓고 나니 그제야 마음가짐이 훨씬 가볍고 단단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만약에‘ 하는 마음 졸인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모자가 든 핸드백을 병실 사물함에 넣어놓고 있다가 집에 갈 때쯤 간병인이 내 백을 꺼내주며 "하이고 가방에 도대체 무엇이 들었길래 이리도 무거워요" 한 적이 있다.

그때 마침 병실에 들렀던 딸애가 한 한마디

"책임감"

이 한마디로 병실은 일순간 정적이 되었다.

그 순간에 감히 누가 어떤 말을 할 것인가.

오늘 하루를 무사히 넘김에 감사해하고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낫기를 병실에 있던 환자, 보호자, 간병인, 모두가 갈망하던 시절이었다


남편의 함몰되었던 머리 부분은 들어낸 머리뼈의 보관 상태가 양호하여서 다시 이어 붙이는 7번째 수술 덕분에 제대로 된 두상을 찾게 되었다.

퇴원 후 남편의 머리카락이 자라고 나니 그 모자가 필요 없어졌다.


버리기가 아깝고 다시 풀어 뭔가를 새로 만들기에는 내 열정도 모자라서 모자 입구 부분을 꿰매어 붙이고 뒤통수 부분을 풀어 손잡이를 달고 가방을 만들었다.

사이즈가 아담한 것이 구정뜨개실이라 그런지 여름에 잠깐 시장이나 마트 갈 때 사용하기 딱이었다.

병원에서 쓰던 것이라 좋은 기억도 아닌데 싶어서 버릴까 하다가 꾸역꾸역 만든 게 지지리 궁상을 떤 건 아닌가 싶기도 했다.




모자였던 가방을 볼 때마다 딸애가 책임감이라고 말했던 그 순간이 오버랩되며 떠오르는 걸 보니,

그래서 이 모자를 버리지 못했던 건가?

한순간 책임감을 가지고 내 손에 있다가 남편의 머리에서 이제는 내 가방으로 무슨 책임감을 넣어가지고 다니는 걸까?


지금은 촌부의 삶으로 돌아와 무채색의 시간 속에서 흙의 색들을 입혀가고 흙으로 글을 쓰는, 책임감 대신 꿈을 넣고 다니며 훌훌 나는 사람이 되어있다.

홀가분하다.


이전 29화선래선거 자연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