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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ka Feb 06. 2024

엄마의 파란만장한 인생이야기 #7

아들이 대신 써주는 엄마의 인생

7. 오산으로


그 집에는 모든 식솔들이 기댈 곳은 키다리 아저씨 밖에 없었는데 술을 좋아한다는 이유 여동생과 형이 은연중에 무시하는 것이 싫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아버님은 간암에 걸리셨는데 초기에는 거동도 잘하셨고 시청에서 아이들 예절교육도 시키곤 하셨는데 병이 악화되시곤 병석에 누우셨다.      


꼼짝을 못 하시고 대소변을 받아내는 것은 결국 나의 차지.     


바쁘다는 핑계로 코빼기도 내밀지 않았던 자식들은 어쩌다 와서 아버지~ 하면서 애교만 떨다 가버렸다.     


결국 아버님께서는 병원에 1개월 정도 누워계시다가 돌아가셨다.     


남기신 것은 양산에 달랑 집 한 채, 깊은 산속에 선산 하나가 전부


그것도 재산이라고


네가 하니, 내가 하니 싸우면서 여동생과 시고모가 오빠(키다리 아저씨)는 자식도 없고 자식 있는 여자랑 사니까 한 푼도 줄 수 없다고 했다.     


고모들이랑 가족회의 한답시고 모여서 나에게는 빠지라는 여동생,     


나의 가슴에 큰 대못을 하나 박아주더라.     


조금이라도 주면 저 여자 아이들 앞으로 가니까 안된단다.     


기대도 안 했네요.     


큰 재산 주는 것도 아니고 줘봐야 한 2천만 원 남짓 주면서 나머지 재산은 다 포기하라고 했다.     


키다리 아저씨도 가족들의 성화에 어쩌지 못하고..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키다리 아저씨한테 나는 말했다.


나갈 테니 따라오지 말고 여기 식구들과 살 맞대고 살라고.


나는 서울에 아이들 곁으로 갈 테니까.. 하고 옷을 챙겨 나와버렸다.     


이 착하고 바보 같은 아저씨는 나의 뒤를 또 졸졸 따라온다.     


그리고 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면서 하는 말이 나는 네가 없으면 못살고 죽을 수도 있다면서 오산에 외삼촌이 산다고 거기부터 가보자 했다.     


자기보다 1살 많은 친구 같은 외삼촌이 벌써부터 함께 일 해볼 생각 없느냐고 물어왔다면서..     


올라가서 만나보니 이제 막 창업 중인 외삼촌은 너무 반기면서 내일부터 당장 같이 일하자고 했다.     


그런데 살 집도 마련하지 못하고 해서 한 달 정도 시간을 달라고 하고 삼촌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조그만 빌라를 계약했다.     


이삿짐이 오는 동안 나는 서울에 딸 집에 있고 키다리 아저씨는 양산으로 이삿짐을 싸러 다시 내려갔다.     


열흘동안 양산에 있으면서 2층에 살고 있는 여동생과 한 번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단다.     


밥도 따로 먹고.


12월 어느 눈이 억수같이 내리는 날 이삿짐을 실은 차가 들어왔다.     


자기가 키우던 개 2마리까지 데리고 왔네요. (한 마리는 내가 키우던 개였다. 그 사람은 그 늙고 병든 개까지 죽을 때까지 챙겼던 사람이다.)


정말 이 사람 만나 오붓하게 살 수 있나 했는데 난 왜 또 이렇게 슬프기만 할까..

     

아무도 없는 낯선 곳에서 정 붙일 곳도 없고 혼자라는 생각을 하니 오만가지 망상들이 내 머리를 또 어지럽혔다.     


그때부터 키다리 아저씨 출근하면 아침부터 술을 마시고 혼자서 울고 가슴을 쥐어뜯었다.


멍청이 아저씨는 가끔씩 회사에서 일하다가도 감이 이상하면 집에 와보곤 했다.     


어떤 때는 목메고 있을 때 들어와서 들키기도 하고 그래서 불안해서 더 자주 일하던 것을 두고 집에 왔다가곤 했다.     


이러지 말고 정신 좀 차리고, 한번 잘 살아보자고 나를 붙들고 애원도 하고 말리기도 했지만 나 스스로 해결하긴 힘들었다.     


동탄 한림대 병원 정신건강학과 교수를 찾아가 상담을 했다.     


심각한 우울증으로 약을 주시고 상담을 잘해주셨다.     


그리곤 동네 미장원에서 머리 하면서 원장님 얼굴이 어두워 보여 무슨 걱정거리 있냐고 물어보니, 그렇게 보이냐고 되묻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명리학 공부를 했다고 어려운 일 있으면 상담해 드린다고 말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명함도 미용실에 갖다 놓고 입소문으로 손님들이 찾아왔다.     


바쁠 때는 예약이 꽉 찰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손님들이 모두 가고 나면 기가 빠져 힘도 없고 허전했다. 공허 그 자체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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