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호 감독의 2019년 작 <천문: 하늘에 묻는다>는 연기력이 돋보이는 배우, 한석규와 최민식이 주연을 맡아 큰 화제가 됐던 영화다. 이 영화는 한국인에게 가장 익숙한 두 역사 속 인물, 세종대왕과 장영실의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에서 비교적 진입장벽이 낮은 것이 특징적이다.
세종 4년, 조선의 4대 왕 세종(한석규)은 해가 지면 제 기능을 다하는 해시계를 대신해, 백성들을 위한 시간 체계를 정비하고자 한다. 마침내 명나라의 물시계에 힌트를 얻게 되지만, 그것은 한 장의 사진에 불과했다. 설계하는 법도, 내부도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세종은 고민에 빠지고 만다. 그때, 비록 천민의 신분을 가졌지만 뛰어난 재능과 그에 뒤지지 않는 인품을 겸비한 장영실(최민식)이 이것의 원리를 해석해낸다. 장영실은 명을 받들어 조선의 독자적인 방식으로 그것을 완성해내기까지 한다. 이에 큰 감명을 받은 세종은 그에게 관직을 하사하고 천민 신분에서 면천해준다. 그리고 20년 후, 장영실이 만든 임금의 가마 '안여'가 부서지는 사건이 일어난다.
"저 북극성이 내 별이라면, 저 옆에서 빛나는 별은 자네의 별이라네"
우리는 영화 <관상>, <명당> 등과 같이 역사의 이야기에 픽션을 더한 영화들을 많이 접할 수 있다. 그 중 <천문: 하늘의 묻다>의 차별점은 '관계'를 서사의 중심으로 둔 부분을 꼽을 수 있겠다.
세종과 장영실은 모든 백성이 평등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나라를 실현하기 위해 의기투합하게 된다. 모든 이들에게 공정히 빛나는 밤하늘의 수많은 별을 보며 꿈을 꾸고, 그만치 많은 업적을 세우며 돈독한 우정을 키워낸다. 그들이 함께 누워 별을 새는 모습은 마치 로맨스 영화를 연상시키게 하기도 하는데, 연인은 아니지만 영화 속 두 사람의 관계는 분명 공신 관계 이상이다. 서로를 벗으로서 사랑하고 함께 꿈을 꾸는 동반자로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꿈꾸는 세상을 먼저, 신분을 초월한 깊은 애정으로 만들어낸다.
또 캐릭터는 더없이 매력적이다. 수더분하기 그지없는 최민식의 장영실은 너무 순박하다 못해 웃음을 터드리게 한다. 백성을 생각하는 선한 마음의 소유자로, 아끼는 이를 헤픈 웃음으로 '영실아'하고 친숙하게 부르는 한석규의 세종대왕은 보는 이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만든다. 사실 나는 최민식의 장영실에 홀딱 반했다. 뜻깊은 대사들을 그의 덩치와 눈빛만치 짙게 잘 살려서, 영화를 보는 내내 그에게 몰입할 수 있었다. 이 영화에서 농후함을 느낀 이유에 그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한다.
역사는 오랫동안 객관적이고 사실관계가 명확한 것들을 담아 전해왔다. 오랜 세월 지켜 온 기록들은 그 무구한 시간만큼이나 고귀하다. 하지만 우리는 역사 속 인물들을 활자 이상의 것으로는 접할 수 없는 한계를 갖고 있다. 그리고 완벽히 담기지 못한 사실 역시 존재한다.
활자에 담기지 않고 흘려진 사실이 있다는 건 공란이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그 빈칸을 '그 일들이 있기까지 고충은 없었을까', '기쁘거나 슬프진 않았나', '이 사람과 이 사람이 사실 친하진 않았을까', '결심하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하는 상상들로 칠하고 덧붙이며 또 다른 역사를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이건 정말 즐거운 일이다.
<천문: 하늘에 묻다>는 두 연기파 배우의 깊은 명연기 속에서 역사 속 인물들의 성격과 관계를 상상하게 한다. 또한 아름다운 미장센은 무구한 상상력에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 준다. 활자가 담지 못한 빈칸을 이 영화는 '미워할 수 없는 두 사람의 애정'이라는 농후한 맛으로 채워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