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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bbie Aug 24. 2020

우리들의 일그러진 계획

꿈에 그리던 취업 후, 스웨덴으로의 유학을 결심하다.

1. 망가진 계획, 경력


스웨덴으로의 출국 소식을 들은 대부분의 지인들이 말했듯, 이러한 시국에 스웨덴에 왔다. 누군가는 '드디어 네가 스웨덴에 다시 가는구나!'라는 반응을 보이는 반면, 또 다른 누군가는 '왜 이제서야...?'라는 물음을 던진다. 그도 그럴 것이 벌써 이십대 후반이 되어버렸다. 학부 졸업 후 1년 동안의 일본 생활, 그리고 귀국 후 한국에서의 취준 생활 및 잠깐동안의 회사 생활을 거치니 시간이 정말 빠르게 흘러버렸다.


애초부터 스웨덴 대학원에 진학할 생각이었다. 우선 한국에서 최소한 3년 정도의 경력을 쌓고 갈 생각이었지만 항상 계획은 계획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이번에도 그랬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사람'이었다. 마치 편의점 직원이 '봉투 필요하세요?'라고 친절하게 물었을 때, '그럼 지금 이걸 봉투 없이 들고가란 말인가요?'라고 답할 만한 사람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함께 하게 되었다. 회사에서 보내는 한 시간, 한 시간이 아까웠고 매일매일이 불행했다. 힘든 것은 견딜 수 있는데, 불행한 것은 견딜 수 없었다.


이럴 바에 공부를 먼저 하는 게 훨씬 낫지 않을까, 생각을 달리하기 시작했다.


회사를 다니며 대학원 진학을 준비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내 멘탈이 한계에 다다랐음을 체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옵션' 자체를 없애고 싶었다. 대학원 진학에 실패할 경우 이를 대신할 다른 선택지를 과감히 없애버려야 대학원 진학만을 목표로 모든 걸 쏟아부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무래도 퇴사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한 마디로, 입사 5개월 차에 겁도 없이 퇴사를 했다.


2. 무계획


경력을 먼저 쌓겠다는 계획은 실패했지만 그 실패를 감상하고 있을만한 여유는 없었다. 10월 퇴사 이후, 원서 작성에만 바짝 매달렸다. 학부 전공과 어느정도의 연계성이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전공을 전환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초 전공 지식도 공부해가며 원서를 작성해나갔다.


전공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며 전공 코디네이터를 성실히 괴롭혔다. 스터디인스웨덴의 도움을 받아 지원 프로그램 졸업생 선배에게 연락을 취해보기도 하였다. 할 수 있는 건 정말 다 했다. 스웨덴 유학 박람회, 원서접수 워크샵 등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을 찾아가 모든 궁금증을 해결했다.


문의사항에 대해 코디네이터의 답장이 굉장히 빨리 왔다. (Photo: Debora)


약 반 년의 회사생활동안 업무 상 외국어(영어, 일본어)를 사용할 일이 많았는데, 영어로 원서 접수를 하는 것은 차원이 달랐다. 짤막한 이메일 작성만 하다가, 영어로 이렇게 긴 글을 작성하는 것이 너무 오랜만이라 쉽게 익숙해지지 않았다. 문법적 오류도 많아 몇 십번이나 검토했다. 그러다 나중에는 전문 업체에 교정을 맡기기도 했다.


최고의 계획은 무계획이라더니, 정말 하나하나 계획을 세우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스케줄러를 매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주 단위로는 작성하는 편인데.. 얼마나 바빴던 것인지 스케줄러의 약 세 달은 건드려보지도 못한 채 백지 상태로 남게 되었다. 덕분에 실제 접수마감은 1월 15일이었지만, 12월 20일에 모든 원서 접수를 완료할 수 있었다. 정말 가까운 사이가 아니고서는, 다들 내가 이 시기에 집에서 뒹굴뒹굴 쉬고 있었는 줄 알았을 것 같다. 사실은 가장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는데 말이다.


3. 망가지는 계획의 즐거움


모든 것을 내던진 덕분인지, 다행히 1지망이었던 Lund University의 Media and Communication studies 프로그램에 합격했다. 그런데 웬걸. 기뻐할 겨를도 없이 코로나로 인해 유럽의 상황이 심각해지더니 스웨덴으로의 출국이 불확실해졌다. 어떻게 준비한 유학인데 이 계획마저 틀어지다니.


이전과는 달리 살짝 기운이 다운될 것 같았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깊게 생각할 틈을 주지 않았다. 열심히 스웨덴어를 독학하기 시작했고, 전공 프로그램에서 추천해준 읽기자료를 통해 부족한 전공 지식도 채우기 시작했다. 스웨덴 현지 뉴스, 학교 공지와 이메일, 국경 경찰과의 연락을 통해 스웨덴으로의 출국 가능 여부도 주기적으로 확인했다.


아주 다행히, 출국을 한 달 반 앞두고서야 스웨덴으로의 출국이 확실히 가능해졌다. 물론 대부분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 수업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예전과의 계획과는 틀어진 채다. 하지만 달리 선택할 길이 없다. 어쩌다보니 이번에도 주어진 길은 단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스웨덴에 도착했다.


매일같이 함께할 나의 새로운 도시, 룬드의 모습. (Photo: Debora)


정신없는 첫 일주일이 흘렀다. 스웨덴에서의 교환학생 경험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이 환경에 적응하는 데 수월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5년 전과 현재의 스웨덴은 꽤 많이 달라져 있었고, 도시 및 학교가 다른 점 역시 무시할 수 없었다. 나의 계획과 예상은 다시 틀어졌다. 낯선 환경에서 오랜만에 느껴보는 당혹스러움에 마주해야하고 대처해야 했다.


한국에서 스웨덴에서의 학업 및 취업 계획도 어느정도 세워보고 왔으나 지금까지 나의 일상이 그랬듯, 그리고 대부분의 삶이 그렇듯 그 계획 역시 보란듯이 뒤집어질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불안하고 초조해하기보단 계획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을 즐겨보겠다. 결말을 먼저 알고보는 영화나 드라마가 얼마나 재미없겠는가.


한 치 앞도 모르는 내일에 감사하며.


Photo: Christoffer Collin/imagebank.sweden.se


Trevligt att se dig igen, Sverige! (Nice to see you again, Sweden!)


커버 이미지 Cover Image (Photo: Simon Paulin/imagebank.swede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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