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주차 글쓰기 프로젝트 첫번째 이야기
‘나’라는 무엇인가.
-그렇게 내가 되어간다.-
[주의 : 영화 스포일러 포함]
의료진의 고의로 뒤바뀐 아이들은 원래 가정으로 되돌아간다. 되돌아온 아이들을 돌보는 각자 아버지의 모습에서 잘못을 깨닫고, 상대방의 가정에서 다른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본다. 그러면서 진정한 의미의 ‘아버지’의 의미를 깨닫고 한 걸음씩 ‘아버지’를 향해 걸어가는 모습을 담은 영화이다.
이전의 내 모습을 바라보고 나와 다른 상대방을 보면서 무엇인가를 조금씩 깨닫는다. 그리고 그렇게 내가 되어간다. 주위 친구들을 보면서 장점을 배우고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기록하는 습관, 처세술, 말하는 방법 등 많은 것을 다시 배울 수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배우는 것을 멈췄고 그 자리에 갇혀버렸다. 이렇게 갇혀 있는 시기에 ‘나’를 주제로 글을 쓰게 되었다. 그리고 ‘나’라는 주제를 듣고 생각했다. 스스로 지금의 내 모습을 곱씹어보고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내가 원하는 ‘내가 되어가고 싶다.’라고.
나란 무엇인가
-내가 원하는 모습이 나이길 바란다.-
첫 번째로 나를 표현하고 싶은 단어는 ‘마이웨이’이다. 어린 시절 가족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자랐다. 경제적으로 힘들 때 나를 지원해주던 할아버지의 의견을 단 한 번도 꺽지 못했고, 내가 가고 싶었던 타 지역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에는 온 가족이 나를 말렸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내 의견은 묵살 당했고 군대를 제대하기 전까지 나는 내 의견을 강하게 피력하지 못했다. 물론 당시 가족들에게도 말 못한 이야기가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당시에 나는 그것을 이해하기 조금 어려웠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라는 영화를 보고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조금씩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행동하기 시작했다. 영화 속에서 소심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쉽게 휘둘리는 월터의 모습을 나와 빗대어 바라보았다. 그런 월터의 변화에 감탄하면서 나 또한 조금씩 변하려고 노력했다.
스스로 ‘마이웨이’로 변했다고 느낀 순간은 여행을 떠날 때였다. 여행을 가고 싶었지만 일정이 맞는 동행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나는 고민했다. 혼자서라도 여행을 떠날지, 동행을 구할 때까지 가만히 있을지. 예상보다 답은 정해진 듯 빨리 나왔다.
‘하고 싶은 건 여행 자체이지, 친구와 추억 만들기가 아니라고.’ 그리고 그 날 바로 티켓을 구입하고 유럽으로 떠났다. 여행을 떠나기 전날 밤, 다시 한 번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를 보면서 웃음이 나왔다.
나는 항상 어느 정도 테두리를 만들어 놓는다. 그리고 테두리 안에 있는 사람과 밖에 있는 사람 대해서 확실히 대하는 모습이 확실히 다르다. 테두리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제법 헌신적으로 행동한다. 상황에 따라서는 내가 희생하기도 하면서 사람들에게 베풀려고 노력한다. 솔직히 원래 이러지 못했다. 마이웨이로 살려고 처음 노력했을 때에는 그 정도를 모르다 보니 사람들에게 상처를 많이 줬다. 다행히 이 때 친구들의 조언과 논쟁을 좋아하는 동아리, 그리고 글을 쓰면서 내 말하기 습관의 문제점을 되돌아 보면서 고칠 수 있었다. 그리고 뜻하지 않은 선물을 받으면서 적어도 내 주위사람들에게는 베풀면서 살기로 결심했다.
그 선물은 한 통의 전화였다. 신년으로 넘어가는 순간에 갑자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아보니 학교 후배였다. 그리고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얼마 전 후배와 통화하다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거기 되게 힘들다던데 형은 괜찮나봐요. 하긴 형은 잘하니까’
하지만 이 이야기를 듣고 많은 생각을 했다. 나도 힘들다. 대학교 때부터 집을 나와서 살았고, 학교도 회사도 아는 사람 거의 없는 곳으로 가서 혼자 살았고, 학교도 회사도 집과 멀어서 거의 가지도 않는다. 혼자서 운 적도 몇 번 있다. 그래도 남들한테는 잘 말하지 않는다. 내가 이렇게 살기로 결정했고, 결정에 대한 책임은 오롯히 내 몫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혹시나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나보다 덜 시행착오를 겪었으면 하는 마음에, 내가 했던 많은 것을 기록하고 남겨둘려고 노력한다.
결론
마이웨이로 살아가면서 적어도 내 주위의 사람들에게 베풀 줄 아는 사람. 그게 바로 내가 생각하는 나란 존재이다. 솔직히 아직은 부족하다. 이기주의와 마이웨이의 경계에서 항상 실수하고, 베푸는 것도 마냥 서투르다. 하지만 처음 말했던 것처럼 이런 과정을 받아들일 것이다. ‘그렇게 내가 되어가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