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학창시절
지난번 여러분에게 말씀드렸던 영화는 [굿 윌 헌팅]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제가 말씀드리려는 영화는 [죽은 시인의 사회] 입니다. 본의 아니게 재개봉하는 영화, 그리고 스승에 대해 다루는 영화를 연속으로 다루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지난 [굿 윌 헌팅]과는 비슷하지만 다른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명문대학 진학만을 위해서 수업을 하는 학교에 특이한 선생님이 오신 게 모든 변화의 시작입니다. 첫날부터 삼각함수에 대해서 숙제는 내는 선생님과, 지루한 라틴어를 반복해서 말하는 수업과 달리 키팅 선생님의 수업시간은 남달랐습니다. 시는 분석하는 것이 아니며, 그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고 학생들에게 가르칩니다. 그리고는 그런 내용이 적힌 서문을 찢어서 버리게끔 합니다. 또한 시선에 따라 생각이 바뀐다며 학생들에게 교탁 위에 올라가서 교실을 바라보라고 시키곤 합니다. 특이하지만 진지한 키팅선생님의 수업 태도에 아이들은 조금씩 선생님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학생들은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자신들만의 클럽을 만들게 됬습니다. 모임에서 '찰리'라는 학생은 자신의 첫 자작시를 보여주고 자신의 색소폰 실력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영화의 많은 모습이 우리나라의 중고등학생들, 아니 지금 이 글을 쓰는 제 십대 후반과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학창시절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 모임에서 찰리는 이런 말을 합니다. '중얼거림은 더 많이 할수록 더 많이 있다.' 이 말이 저는 너무 공감됬습니다. 십대 후반을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었인지도 전혀 모른채 부모님의 등쌀에, 학교 선생님의 강압에 억눌려 하고 싶은 말을 삼키며, 스스로 중얼거리기만 하는 요즘 학생들의 모습이 이와 같을 것 같았습니다. 또한 키팅 선생님의 독특한 수업 방식이 싫은 사람도 분명 존재했습니다. 교장은 키팅 선생님에게 이런 말을 내뱉습니다. '대학입시에만 전념하게' 학생들에게 가르쳐야하는 것은 지혜가 아닌 지식이라고 못을 박는 대사였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가 생각났습니다. 두 영화 모두 교욱의 문제점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교육의 목적은 강압적 지식의 주입이 아닌, 자율적 지혜의 습득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나왔던 교육의 비극이 왜 아직까지도 우리 곁에 있는지 의문스럽고, 이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스스로가 수치스러울 뿐이었습니다. 또한 만약 나에게 키팅선생님 같은 선생님이 있었나, 그리고 있었다면 나는 영화 속 제자들 중 과연 누구의 모습이었을까 궁금합니다.
이 영화의 마무리는 역시 이 대사로 마무리 지어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