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단과 목적, 과학 실험을 끝내고 나서

by 라라


금요일에 과학 실험을 처음 했다. 고학년 과학은 대부분 전담을 붙여 줬고 최근에는 코로나 19로 모둠활동도 다 금지됐었으니까 거의 4년 만인 셈이다. 유리 깨지고 알콜램프에 불 붙고, 손가락에 유리 파편 꽂히고.. 몇 년 일하다 보면 온갖 종류의 사건 사고들을 다 보고 듣게 된다. 개중에 최고봉은 눈에 샤프심이 꽂혀서 빼지 않은 채로 그대로 119에 실려 나간 학생의 이야기였다. 우리는 불안으로 덜덜 떨고 6학년을 이렇게 푸대접해도 되냐고 투덜거리면서 사전 실험을 했다. 이산화망간에 과산화수소를 조금씩 흘려 넣어 산소를 발생시키고 거기에 향불을 집어넣어 불꽃이 커지는 것을 관찰하는 실험이었다.


나는 속으로 애들을 다 휘어잡아야겠다고, 과학실에서 들고 뛰다가 사고를 일으키지 않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금요일 아침에 실행에 옮겼다. 아침부터 빽빽 고함을 지르고 별것 아닌 일에도 화를 냈다. 장난쟁이들이 잔뜩 주눅들고 긴장한 채로 아침 시간을 보냈다. 화면에 과학실 안전 수칙 5가지를 띄우고 그대로 배껴 쓰게 했다. 만날 사소한 일에 어깃장 놓기 좋아하는 똑부러지고 얄미운 여학생 하나에게는 이번 기회에 잔뜩 성을 냈다. 그러면서 속으로 우쭐했던 것 같다. 나는 일 잘하고 카리스마 있는, 아이들을 통제할 수 있는 무서운 선생님이라고.


문제는 과학실에서 불거졌다. 아이들은 완전히 그림 같았다. 안전 수칙을 잘 지켰고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 먼젓번에 실험했던 다른 반들과는 비교도 안 되게 모범적이었다. 그런데 산소 포집이 안 됐다. 이산화망간을 아무리 때려 부어도, 과산화수소를 아무리 넣어도 공깃방울이 충분히 모이지 않았다. 향불도 커지지 않았다. 나는 당황했다. 내 시나리오는 이래서는 안 됐다. 아주 무서운 선생님, 규칙에 맞춰 착착 진행된 실험, 그리고 효과적인 배움과 놀라운 실험결과....


나는 금세 창피해졌다. 그 후로는 부끄러운 감정이 찾아왔다. 미안한 나머지 나는 아이들에게 과잉 보상을 했다. 5교시를 통으로 피구 시간으로 내준 것이다. 아이들은 아침 시간과 과학 시간에 조용히 해 준 것을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것처럼 날뛰었다. 그렇게 실컷 놀게 해줬는데도, 아침에 내가 마음껏 야단쳤던 새침데기 여학생은 학급으로 돌아가면서 여지 없이 얄미운 소리를 했다.


“샘, 3반은 6교시도 밖에 나가는데요? 거기 반은 5-6교시 노는데 왜 저희는 5교시만 놓아요?”


평소 같았으면 그 소리를 픽 웃고 넘기거나 뭔가 적절하게 받아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다른 반이랑 비교하지 마. 우리가 놀 때 그 반이 안 논 적도 많잖아.”


내 자신이 정말 나쁜 교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 나는 과학 실험을 준비하고 아이들을 야단치는 과정에서, 나는 분명 뭔가를 잘못했다. 아마 그건 그 시간의 초점이 나에게 맞춰져 있었기 때문일 거다. 화를 낼 거였으면 정말 진심으로 아이들의 안전을 걱정하면서 화를 내야 했다. 내 진짜 의도를 다른 걸로 포장하면 안 됐다. 만약 유달리 얌전하고 단정한 실험 모습을 원했다면 아이들에게 그냥 말했어야 했다.


“야, 우리는 1반이니까 실험하는 모습도 완벽해야 돼.”


나는 누가 뭐라고 해도 꽤 열심히 노력한다. 순간순간 뭐가 올바른 건지 고민한다. 잘못하면 고치려고 하고 반성하고 아이들을 사랑하려고 노력한다. 내가 부족한 아이들을 용서하듯 나도 내 판단 미스를, 나 자신을 뽐내려고 하는 알량한 마음을 용서해야 한다. 하지만 가끔씩은 줄타기를 하기가, 나 자신을 다루기가 참 힘들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건 참 알량하고 간사스러워서 처음에는 분명 올바르게 시작해도 어느 새 다른 모습으로 변질되어 버린다. 능력 있어 보이려고 하는 나 자신을, 아이들을 내 자아 실현과 수업 능력을 뽐내는 도구로 사용하려고 하는 나 자신을 잡아내고 가르치기가 참 힘들다.


상처 뿐인 과학 실험과 야생마 같았던 피구 시간, 그리고 어영부영 지나간 음악 시간이 지나가고 기진맥진한 금요일 오후가 되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또 그 타이밍에 날벼락 같은 전화가 걸려왔다. 학부모의 민원 전화였다. 툭닥거리면서도 나름대로 예쁘게 잘 놀던 두 아이가 학교 끝난 후 심하게 싸웠단다. 학부모는 머리 끝까지 화가 나 있었고 나는 또 죄인이 되었다. 둘 다 치고 받고, 가해자가 피해자인 상처 뿐인 상황이었다. 핸드폰 너머로 아이는 훌쩍훌쩍 울고 있었다.


“이 모든 상황이 너무 싫어요. 저는 저 때문이라는 말이 가장 싫어요.”


아이들과 전화를 끊고, 학부모들과 통화를 마치고 나도 조금 울었다.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엄마들이나, 마음이 가장 어려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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