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아는 카페 있는데...' 라는 네 살의 말
작년 추석 네살짜리 사촌동생을 보기 위해 가족 다 같이 경상남도로 향했다. 추석 때도 영업을 하는 삼촌네 식구들을 대신해, 우리 가족이 그 동생을 데리고 다니기로 했다.
사촌동생을 차에 태우고, 우리 가족은 행선지를 고민했다.
"목마른데 어디 카페라도 갈까?"
"그래 그러자."
하는 엄마와 나의 대화에 네살짜리 아이가 끼어들었다.
"나 아는 카페 있는데..."
'세상에! 요즘 네 살은 아는 카페도 있어?' 속으로 놀랐지만, 요즘엔 카페가 워낙 흔하니까 그럴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며, 흔쾌히 네가 아는 카페로 가자고 했다.
운전대를 잡은 오빠 옆자리에 앉아서, 고사리 같은 손으로 앞으로 옆으로를 말하며 길을 안내하더니, 어떤 건물을 가리키며 저기라고 했다.
"카페가 3층에 있네."
엘리베이터를 타니, 3층에만 휘양찬란한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건물 3층 전부를 사용하는 그 카페는, 키즈카페였다.
그렇게, 나를 포함한 우리 가족은, 사촌동생 덕분에 생애 최초로 키즈카페 라는 곳을 방문했다.
익숙하게 뛰어 들어가는 사촌동생을 뒤로하고, 나는 카운터에 가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이 한명에 어른이 넷인데, 그건 안되죠?"
어른은 최대 두 명까지만 가능하다고 답해주길 바랬다. 그럼 어쩔 수 없이 어른 넷과 아이 하나를 수용할 수 있는 어른이 카페로 가야했으니까.
하지만, 키즈카페 주인분은 친절하게 말씀하셨다.
"명절엔 그렇게도 많이 오세요^^ 어른 넷 아이 한명으로 결제 해드릴까요?"
이미 카페 안으로 들어가 놀고있는 사촌동생을 보니 결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빠는 슬리퍼를 신고 오는 바람에, 맨발로는 입장이 불가해 덧신도 하나 구매해야했다.
사촌동생이 자주가는 카페의 룰이었다.
정말이지 키즈카페는 내가 생각한 카페와는 전.혀 달랐다.
아이들은 놀고 어른들은 얌전히 앉아있을 수 있는 카페도 아니었다.
사촌동생은 우리에게 롤을 정해줬다.
차기 CEO라도 되려는 걸까. 인력배분에 소질이 있었다.
먼저, 엄마는 음료 담당이었다.
어른 넷과 아이 한명의 음료를 받아, 휴게실 같은 장소에 자리를 잡아야했다.
머리가 풀릴때마다 사촌동생은 엄마에게로 가, 다시 머리를 묶어달라고 했다.
아무리 꽉 묶어도 풀릴만큼, 사촌동생은 열심히 놀았다.
아빠는 볼풀장 쪽에 가있어야했다.
그 방 앞에 앉아있다가, 사촌동생의 반동으로 안에 있던 공이 튀어나가면 다시 던져 넣는 역할이 주어졌다.
사촌동생이 맞춰보라고 하는 곳을 맞추기도 해야했다.
영상속 공룡 같은 것을 공으로 맞추면, 점수가 올라가고, 그런 최신식(?) 게임이 있었다고 한다.
오빠는 어부(?) 역할이었다.
계단을 통해 위쪽으로 올라가 자석으로 아래쪽에 있는 물고기를 10마리 잡으면 젤리로 바꿔준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2층에는 대부분 아이의 아빠로 보이는 사람들이 고기를 잡고 있었다고 했다.
사촌동생의 눈에는, 오빠가 우리 중 물고기를 가장 많이 잡아올 것 같았나보다.
그렇게 아빠들 틈에 앉은 오빠는 사촌동생이 다시 올때까지 적어도 20마리를 잡아두라는 오더를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아이 옆에 있는(?) 역할이었다.
옷을 입을 때는 그쪽으로 가고, 기차를 탈때는 기차쪽으로 가야했다.
기차는 매 정시에 맞춰 줄을 선 사람만 탈 수 있었는데, 정시가 되고 기차 소리가 들리자 사촌동생은 나를 보며, "언니! 기차!"라고 말했다.
그 말에 나도 모르게 기차 시간을 놓친 사람마냥 그쪽으로 허겁지겁 달려갔다.
기관사 역할을 하는 알바분께, 아직 자리가 남았는지를 물어봤다.
KTX도 모바일로 발권하는 나에게, 기차 앞에서 표가 남았는지를 묻는 건 색다른 경험이었다.
처음엔 남은 자리가 없다고 했는데, 다행히 하차하겠다는 아이가 나타나, 우리집 꼬마가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었다.
만약 없었다면 다음 정시를 또 노렸어야 했다고 생각하니, 그또한 아찔했다.
한시간 반쯤 지나고서부터는, 난 도깨비 목소리를 내며, 도깨비에 빙의된 척을 했다.
굵은 목소리로 언니 안에 도깨비가 들어와서 혼자 싸우고 와야겠다고 하면, 동생은 기꺼이 나를 보내줬다.
레고 놀이 공간(?)에 잠시 혼자 핸드폰을 하는 시간이 제일 평온했다.
그때, 내 공백을 채운건 우리 아빠였다는 사실을 나중에 들었다.
백설공주 옷을 맡아둬야하는 역할을 아빠가 했다는 사실을 듣고는 웃음이 났다.
두 시간 후, 사촌동생은 오빠가 잡아온 물고기를 젤리로 바꿔, 양손에 젤리를 들고, 흐뭇한 표정으로 키즈카페를 나섰다.
카페는 자고로 힐링인 것을, 오늘의 시간은 누구의 힐링이었을까.
어른 네명을 제 맘대로 컨트롤 하고 있다는 자신감이 두 시간 넘도록 사촌 동생의 표정에서 나타난걸 보면,
적어도 그 아이는 힐링한게 아닐까 생각했다.
우리는 그렇게 키즈카페를 경험하곤,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이틀 후 고모네 식구들이 사촌동생을 보러 경상남도에 가고 있다는 톡이 가족 단톡에 올라왔다.
나는 씨익 웃으며 톡을 보냈다.
'거기 00이 단골카페 있어. 거기 같이 가! 너무 좋더라!'
이 귀한 경험을 우리 식구만 할 순 없었다고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