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몰라서 못하는 것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아는데 못한다.
다짐을 했음에도 못한다.
미니멀리스트를 결심하고 1년 반쯤 지난 지금, 겨울이 왔다.
작년 겨울은 내가 미니멀리스트로서 가장 불타오르던 시기였다.
그래서였을까 겨울옷은 한벌도 남기지 않으려는 계획이었던 건지 가지고 있던 옷 대부분을 팔아버렸다.
전부가 아닌 대부분을 팔았기에 당장 이번 겨울에 입을 옷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입고 싶은 옷이 없는 것이다.
내가 팔고 싶었던 겨울옷 중 팔리지 않은 옷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들이었다.
트렌드 하지 않고 올드하다.
이렇게 적고 보니 옷을 아주 대단히 잘 입는 사람 같지만, 그냥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새로운 옷을 입고 싶은 욕심쟁이일 뿐이다.
'나는 태생적으로 구매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인가?'
'평생 간결해질 수 없는 걸까?'
갖고 싶은 게 생길 때면 위의 질문들을 건네며 스스로를 말렸다.
그래도 말려지지 않자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견물생심임을 망각하고 직접 눈으로 보고 안 살 이유들을 찾아보기로 한 것이다.
당연하게도 과오였다.
대단한 디자이너와 마케터들을 거쳐 매장에 도착했을 신상 옷들에는 사지 않을 이유 같은 건 없었다.
오히려 사도 괜찮을 이유만 한가득이었다.
그중 어떤 옷은 특히나 마음에 쏙 들었는데, 품절이었다.
추운 계절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에 품절이었던 그 옷은 재입고될 예정조차 없어 보였다.
구하기 어려워진 그 옷을 떠올리니 갑자기 희망 회로가 가동되기 시작했다.
이 인기 많은 옷은 내가 한동안 입다가 어느 날 당근에 올려도 큰 감가 없이, 구매했던 가격과 비슷한 가격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옷이라는 말이 아닐까? 하는.
위의 생각으로 재고를 찾아 각국의 나라를 수색해보니 독일의 공홈에서 내 사이즈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렇게까지 하는 스스로가 좀 어이없기도 했다.
나는 분명 직장도 있고, 산더미같이 밀려있는 읽지 못한 책도 있고, 정리하지 못한 사진들이 클라우드에 한가득인데 어쩜 이런 일에 이만큼의 시간을 쓸까?
개탄스럽고 어이가 없다가도 혹시 직업을 잘못 택한 게 아닐까 싶었다.
알고 보니 나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사야 하는 그런 운명을 타고나, 사입이나 구매대행 같은 업을 타고났는데 그걸 못하고 있으니 전부 사서 내 집에 두는 게 아닐까? 하는 그런 어이없는 생각까지 들었다.
독일에서 그 물건을 발견했음에도 나는 곧바로 구매하지 않았다.
그저 매일 들어가 봤다.
매일 방문해보는 일은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니었다.
사파리 책갈피를 해두면 10초도 걸리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사이즈가 품절되었다.
독일에서도 기어코 품절되었다.
'아이고 그냥 살걸 일단 살걸...!!!' 저걸 구매한, 또 구매하지 못한 모든 사람들 중 저 화면을 가장 많이 접속했을 사람일지도 모르는 나인데.. 결국 사지 못했다니.
억울했고 당장에 미니멀 이것을 내쫓고 싶어졌다.
옷장에서 나가야 할 건 내 옷이 아니라 미니멀 세 글자가 아닐까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이내 정신이 들었다.
내가 처음 이 삶을 결심한 이유들을 떠올렸고, 혹시 그 생각을 잊을까 봐 적어둔 글을 읽어봤다.
반성했다.
그때의 마음이 고작 2년을 못 버티는구나 싶었다.
동시에 이럴 거라는 사실을 알았기에 그 당시 다짐을 기록해뒀던 것이 생각났다.
1년 전에 나는 메타인지가 잘되었던 사람이었구나 싶어서 갑자기 기특했다.
여하튼 그때의 나 덕분에 이젠 정신이 좀 들었다.
올겨울도 나는 소비하지 않고 참아보기로 다시금 다짐했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감당할 수 없는 물건들에 갑갑해하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걸 사지 못해 괴로워하는
그런 어이없는 미니멀리스트일 예정이다.
번복을 끊임없이 반복하면서도 끝끝내 내가 하고 싶은 선택보다 해야 하는 선택을 해나가는 것. 이것이 미니멀에 앞서 궁극적으로 내가 지향하는 삶의 방식이기에.
1년 차 미니멀리스트는 여전히 종종 미니멀이라는 방식을 삶에 들인 걸 후회한다.
미니멀 라이프를 갈망하면서도 미워한다.
그럼에도 그 덕에 내 삶이 지난 1년 간결해졌음을, 가벼워졌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렇기에 계속 그쪽으로 나아가 볼 예정이다.
잠깐 멈추고 주저 않더라고 끝끝내 원하는 만큼 미니멀해질 것을 약속하며, 우선을 남은 올해도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