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가 담긴 서비스
여러모로 고민이 많았다. 경험도 없는 레저 분야에 무작정 뛰어드는 것은 바보짓이 아닐까. 혹여 어떠한 성과 없이 시간만 날리고 집에 돌아오는 것은 아닌가 걱정됐다. 특히 체육학을 전공한 친구들과 경쟁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나를 망설이게 만들었다. 또한, 고민하던 그 시기는 취업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였고, 남들처럼 토익·인턴 등 정량적인 스펙을 쌓는 것이 더 중요했을 수도 있다. 그 중요한 시기를, 단순히 끌린다는 이유만으로 시작하는 것은 리스크가 컸다. 그럼에도 내가 결심한 이유는 자신감이었다. 레저에 관한 지식·경험·기술 등 전문성은 체육학도생들한테 뒤쳐져도, 서비스 분야는 이길 수 있다고 확신했다. 나는 관광버스 기사의 아들이었으니까.
아버지에게 배운 고객만족 서비스
우리 아버지는 예전에 관광버스를 운전했다. 그리고 아버지를 따르는 단골손님들이 무척 많았다. 아버지는 운전만 잘하면 된다는 주변의 말에도, 맛집을 찾고 숙소를 일일이 확인했다. 특히, 수차례 운행한 코스여도 사전 답사를 매번 했었다. 지금의 관광업계에서는 당연시한 행동일지 몰라도, 그때 당시에는 그런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업체가 없었다. 그 때문인지 수많은 업체가 있음에도, 손님들은 항상 아버지를 택했고 함께 여행을 떠났다.
신기했던 것은, 아버지는 그런 노력들을 손님에게 알리지 않았다. 초등학생이었던 나로서는 그저 아버지의 모습이 답답했었다. 생색낼 것도 아니면서,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는 행동들을 굳이 하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 나를 보며 아버지는 항상 말씀하셨는데, 지금도 정확히 기억한다. ‘누가 봐도 서비스면 서비스의 가치가 없다’고. 손님들이 서비스라고 느끼면 오히려 더 불편해 한다는 말씀이었다. 무슨 말일까. 손님들이 불편해한다니, 서비스는 크면 클수록 좋은 것 아닌가? 나중에 나도 과한 서비스가 불편했던 경험을 하고나서야 아버지의 말이 무슨 뜻인지 어렴풋이 이해됐다.
우리가 옷가게나 신발가게에 들어서면 종업원이 달려와 계속 우리 곁에 머무른다. 처음에는 나를 우대해주는 느낌이 들고, 개인 비서가 보조해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눈치가 보이고, 과한 서비스를 받은 만큼 무언가 대가를 치러야 할 기분이 든다. 결국 마음에도 없는 물건을 한 개 사서 나왔고, 다음부터 가지 않았다.
나는 제공되는 서비스들 속에서 편안하게 즐기고 싶었다. 그 서비스들한테 이끌려 다니기는 싫었다. 그리고 제공받은 서비스들에 관해서 꼭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면, 혹은 지불해야 할 느낌을 받는다면 차라리 처음부터 서비스를 제공받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서비스를 받을지 안 받을지 선택권이라도 주던가.
아버지도 어디선가 이런 기분을 느끼셨겠지, 아니면 손님들한테서 직접 들으셨을 수도. 어쨌든 아버지는, 과하고 부담되는 서비스는 손님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결국 또 다시 찾지 않게끔 만든다는 것을 알고계신 듯했다. 그것이 전문적으로 옳고 그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아버지의 방식이 다른 업체와 달랐고 그것을 손님도 특별하게 느꼈을 것으로 확신한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라며 ‘가치를 담은 서비스’가 무엇인지를 깨달았기에 적어도 그 분야만큼은 체육학도생들을 이길 자신이 있었다.
손님들 입장에서는 질 높은 서비스를 원할까? 실력 있는 강사를 원할까?
질 높은 서비스란 정해진 강습 매뉴얼 외에도 무언가를 제공해주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가령, 스키 관련 이론과 기술을 가르치는 것 외에 동영상을 찍어주고, 할인 받을 수 있는 장비업체 소개, 스키와 관련 없는 인적 인프라까지 공유하는 것도 속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강습 쉬는 시간에 손님과 대화하던 도중 금융 관련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면, 내가 알고 있는 은행원이나 보험사를 연결해주는 것 말이다.
반면에 실력 있는 강사란, 레벨Ⅲ 혹은 티칭Ⅲ 상위 자격과 심지어 데몬스트레이터까지 소위 말하는 ‘간판 있는’ 강사를 말할 수 있다. 혹은 여러 기술권 대회에서 입상한 자를 말할 수도 있다. 실력의 기준을 대회 입상, 자격증 여부만으로 논하기는 조심스러우나 대회에서 입상하고 상위 자격증을 취득했다는 것은 공인된 자들로부터 검증받았다는 것을 말하기 때문에 실력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손님들은 어떤 강사를 원할까? 손님이 강습을 받으려는 목적에 따라 답은 달라질 수 있다. 또한, 개인의 성향이나 재력도 선호하는 강사 스타일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정해진 답은 없다. 그래서 내가 응대했던 중산층 혹은 그 이하에 속하는 분들이 원했던 강사 스타일을 설명해볼까 한다.
그분들은 실력 있는 강사보다 질 높은 서비스를 훨씬 더 선호했다. 정확히는 ‘간판 있는’ 강사들을 부담스러워 했다. 강습료 등 비용적인 면이 가장 큰 부담요인이었고, 가볍게 즐기려는 목적으로 강습을 받고 싶었기 때문에 높은 커리어는 불편했다. 일상에 비유하자면, 김치찌개가 먹고 싶어 배워볼까 했더니 백종원이 직접 가르쳐준다고 하는 느낌이다. 부담스럽지 않겠는가. 잠시 한눈이라도 팔았다가는 호되게 혼날 것만 같은 그런 부담 말이다. 그리고 김치찌개 재료값보다 수업료가 더 많이 나올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손님의 성향이나 재력 등에 따라 선호하는 강사 스타일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실력과 서비스 모두 갖춘 강사를 선호하는 손님도 있을 수 있고, 실력은 평범하지만 예의나 인상, 호감도가 마음에 들어서 그 강사를 고집하는 손님도 있다. 이처럼 손님의 유형이 다양한 만큼 강사 스타일도 다양하게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에, 본인의 강점이 무엇인지, 무엇에 자신이 있는지를 명확히 한 후 일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 나는 비전공자였고 상위 간판도 없었지만 꾸준한 노력으로 실력을 올려놨고, 서비스 부분에 자신있다는 것을 고려해 나만의 스타일로 만들 궁리를 했다. 그리고 질 높은 서비스를 선호하는 어머님들 아버지들, 중소기업 사장님들을 대상으로 활동했던 것이 레저시장에서 남을 수 있었던 이유가 될 수 있다.
PS.
손님의 관점에서는 실력 없는 강사를 만날까 걱정하는 분들이 있다. 실력이 바닥이면 아무리 좋은 서비스를 제공해도 배우는 게 없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우려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강사마다 실력의 차이는 존재하겠지만, 실력이 바닥인 강사는 없다. 최근부터 강사를 하려면 최소 ‘레벨Ⅰ 또는 티칭Ⅰ’이라는 자격증이 필요한데,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추지 않는 이상 취득이 어렵다. 이는 곧 강사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일정 수준의 실력을 갖췄다는 말과 같다. 혹여 아주 옛날에 운 좋게 취득해서 강사를 한다고 해도, 그 사람의 실력이 바닥인 것은 손님들이 더 잘 안다. 한두 번 운 좋게 강습할 순 있겠지만 손님들의 재 선택을 받지 못할 것이고, 결국에는 업계에서 도태됐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강사활동을 하고 있는 현직자들이라면, 모두 일정 수준의 실력을 갖춘 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