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가 없다> 에 대해 좋게 쓰지 않을 수가 없다

박찬욱의 2025년작 <어쩔 수가 없다> 를 보고 나서

by 이나영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포스터 사진 아래로 시작되고요. 여기는 사담파트 입니다)



오랜만에 블로그에 영화 글을 적습니다. 사실 그 동안 영화를 안 본 건 아닌데요.

그리고 보면서 느낀 게 없었던 것도 아닌데요.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어요.

집중해서 볼 기회가 적었기도 했고 (시간 상 다른 과제 등을 수행하면서 봤어야 했음) ...

스스로 그런 의욕이 나지 않았기도 했고. 여러 복합적인 이유들로 영화를 메모해가면서 보지 않게 된 것 같아요.


이게 슬픈 일만은 아니었어요. 왜냐하면 영화 공부를 한창 할 시절에는 오히려 너무 좋아하던 취미였던 영화 감상이

압박으로 느껴졌을 때도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요즘은 머리를 비우고, 오로지 다른 세계로 뛰어드는 시간들을

다시 즐길 수 있어 나름대로 기쁜 시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박찬욱 감독님의 <어쩔 수가 없다>를 보자마자 저는 극장에서 뛰쳐나와서

주차장에서 담배를 입에 문 채, 한 장 가득 공책에 기억에 의존한 메모들을 옮겨 적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메모들을 이 변두리 블로그에나마 공개해야한다는 사명감이 들었어요

이유는 개봉 직후에 SNS에서 <어쩔 수가 없다> 평이 너무 안 좋은거예요.

(네, 암시가 맞습니다. 이 글에는 영화가 좋았다, 왜? 에 대한 이야기만 적힐 예정입니다.)

여기서부터 개인적인 이야기. 박찬욱 감독님의 작품들은 너무나 매혹적이지 않나요?

호불호는 갈릴지언정 누구나 한 작품 정도는 씹덕적인 취향의 산물로라도(?) 좋아하게 되지 않나요?


저는 고딩 때 박찬욱 (이제부터 편의상 감독님이라는 호칭은 생략할게요) 님 작품들 너무너무 많이 좋아해 왔어서

분석도 당연히 엄청 많이 했고 찾아보기도 엄청 찾아봤고 작품들이야 말할 것 없이 몇 번씩 돌려보았고

전공 과제나 발표를 할 때에도 영화 관련 과제를 제출할 기회만 생기면 박찬욱 감독님 것으로 다루려고 했어요



그렇게 박찬욱 감독님 리스펙 해왔는데 리스펙 하는 감독님 작품 평가가 너무 안 좋으니까

회피기질이 발동해서 보기가 싫은거예요 전 <헤어질 결심>도 사실 제 취향은 아니었어요 너무 잘 만들었고 아름다웠지만 결말이 그냥 나 1명의 취향에는 안맞았어요 하지만 한 번 보고 나서


여러 번 표를 더 결제했어요 보러 가지는 않고 그냥 결제만 했어요 500원이라도 영화수익으로 집계되길 바라면서(?)

후원하는 마음으로 리스펙 하는 마음으로 작품 또 해달라는 마음으로 더 보여달라는 마음으로

그런데 평가가 너무너무 안좋으니까 이번작품 보고나서 마음이 너무 힘들어지면 어떡하지... 이런 개인적인 두려움으로

<어쩔 수가 없다>를 회피하고 있었어요. 근데 내 친구 누가 무대인사를 다녀왔다네?

즉시 일정을 알아보니까 그 무대인사라는 거 나도 갈 수 있다네?



전 본가가 수도권이 아니니까 수도권에 거처가 생긴 첫 해인 지금

현실적으로 감독님을 직접 볼 수 있는 첫 기회가 찾아온 거죠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겠어요

볼 건 봐야죠 어쩔 수가 없죠 그렇게 갈 건 가게 되었고 볼 건 보게 되었는데

전 이 작품이... 모르겠어요 아예 박찬욱 감독 영화를 처음 접하는 관객이라면 평가가 다를 수도 있겠지만...

저도 뭐가 되는 건 절대 아니지만 그래도 지켜봐 온 나름 팬(?)의 입장으로

감독님이 너무 수고하셨다는 느낌이 들지않나? 감동을 받지않나? 전 감동받았거든요...

언제 처음 감동받았냐면 영화 시작하고 첫 30분은 진짜 말그대로 코미디에요 실제로 개그와 말장난이 난무하고

그 30분동안 관객이 다같이 웃는 순간이 10번은 넘었던 것 같아요 충격받았어요 박찬욱님이 이렇게 코미디를 직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었다고


그래서 <고추 잠자리> 흘러 나올 때 다른 관객들 막 깔깔 웃는데, 저도 웃다가 거짓말안치고 뭔 아들엄마같은 느낌으로 눈물이 흘러나왔어요...

대견하다거나, 기특하다는 말은 윗사람에게 쓰는 말이 아니죠 그런데 그 비슷한 감정을 느낀것같아요 아 진짜 뭔가 보여주셨구나, 하는.

그래서 박찬욱의 서사를 아는 사람이라면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영화가 아닌가.

영화의 서사를 다뤄보기 전에 제 개인의 감상을 공유해보았구요.


바로 여기부터 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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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가 없다>


SNS 반응을 보면 박찬욱이 대중성을 잡으려고 하다가 성공했네 실패했네 하는 논쟁(?)이

굉장히 많은 것 같은데 과연 대중성을 잡으려는 노력이 굉장히 많이 보이는 영화였어요

위에서 관객들을 직관적으로 웃기는 것에 성공했다! 라고도 이야기했지만, 단순히 개그 뿐만이 아니라 주제나 테마 등도 굉장히 직관적이게 두드러집니다


이야기의 굵직한 전개는 이렇게 흘러가는 것 같아요 (여기부터 스포일러 주의)


'다 이루었다' 고 생각한 만수 / 와 그의 가족

그러나 만수가 태양제지에서 해고당하고. (이것이 이야기의 공격점, 그러니까 시발점이 되죠)

만수의 가족들은 금전난으로 많은 '포기'를 해야 했습니다.


두고만 볼 수 없었던 만수는 면접장을 1년 넘게 전전하지만, 성과는 없고 선출('문 제지'의 반장)에게 개무시만 당합니다.

만수는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서라도 다시 취직을 해야 한다고 결심. '레드 페퍼'라는 가상 제지 회사를 만들어 사람들이 지원하게 만들고,

미래 자신의 경쟁자가 될 법한 사람들을 확인합니다. 그렇게 확인해보니 죽일 사람은 셋.

구범모, 고시조, 그리고 자신을 무시했던 선출 (그의 자리를 노리는 듯). 셋만 죽이면 자신은 재취업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차례대로 제거가 이루어지고, 만수는 재취업에 성공합니다.



이것이 세상에서 가장 납작하게 써 본 <어쩔 수가 없다> 줄거리입니다.




그럼 이제 인물들부터 하나씩 구경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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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만수



이름은 만수 무강에서 데려온 걸까요?

영화가 시작할 때 만수의 첫 대사는 "그래... 와라, 가을아." 그리고 시작되는 가을에서 야외 바베큐를 즐기며 의도적으로 2000년대 드라마처럼 연출된 촌스럽고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

가을은 태양이 빨리 지고, 밤이 길어지는 시기이기도 하죠. 태양 제지에서 잘린 만수는 곧 '완벽한 가부장'에서 '어쩔 수가 없는' 연쇄살인마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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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리



만수와 결혼한 상태지만, 전남편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들 유시원은 그 전남편과 낳은 아이인데요.

미리는 비교적 초반부에서 만수와의 대화 속에 만수에게, 시원이 컸으니 이제 약속대로 그 사실을 밝히자고 이야기했던 적 있지만

만수는 "꼭 아는 게 좋은 것은 아니라"는 식으로 무마합니다. 그것이 만수라는 인물의 중요한 철학이기도 한 것 같아요.

어떤 사실은 은폐되는 것이 오히려 좋은 것이라고. 이후 벌어지는 만행들도 가족 구성원 누구에게도 공유하지 않죠



뜬금없지만 얼마 전에 잠이 안 와서 유튜브를 둘러보다가 오영은 박사님이 금쪽상담소에서 어떤 가족과 함께하는 방송을 봤는데

그 가족은 식사 시간에는 무조건 전원이 참석하고, 비밀 얘기도 가족끼리. 가족 외의 인간관계는 다 불필요한 것으로 느끼고, 서로를 지지하고 응원하면서

남들이 보기에는 비현실적인 듯한 꿈도 서로 밀어주더라고요. 그것을 보면서 미드소마 속 공동체의 무조건적 포용에 대한 공포와 비슷한 감상을 느꼈는데



초반부 장어를 함께 구워먹는 가족의 그림은 그런 폐쇄적 가족공동체의 이미지처럼 저에게 다가왔지만

(저는 초딩 이후로 가족들이랑 거실이나 주방에서 밥을 같이 먹어본 적이 거의 없어요)

사실 이 가족은 비밀을 은폐해왔거나, 은폐할 예정인 그러니까 이상적인 모습을 가장하고는 있지만 사실 균열이 많은 가정인거죠


잡담하자면 전 대한민국에서 가장 예쁜 사람 세 명 꼽아보자면 항상 손예진이 그 안에 들었는데 무대인사때 볼 수 있어서 너무 감격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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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유시원

작중에서는 결국 끝까지 자신이 친아들이 아니라는 것은 모르지만. 만수와 굉장히 유대가 있는 인물로 느껴지는데요. 만수는 아들이 휴대폰을 훔쳐도 아들 편이구요. 담배를 피워도 미리보다 아들 편이었어요. '비밀'의 속성 중 재미있는 것은 누군가에게 공유하는 순간 서로간에 특별한 유대가 형성된다는 점인데, 아들을 두 번씩이나 구해줬으니 시원은 아빠에게 많은 마음을 주었을 겁니다. 하지만 아빠가 잔혹한 살해를 저지르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알아차리게 되는 인물이기도 한데요. 아직 어린 아이이기에 미리(엄마)에게 결국 털어놓기는 하지만, 이 은밀하고, 다른 가족구성원들을 소외하기도 하는 유대를 지켜보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딸 유리원

저는 극작과에 재학중이라 요즘 연극사를 공부하며 그리스 비극을 많이 읽고 있는데요. 그리스 비극의 특징으로는 많은 사건들이 인간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이 있어요. 신탁, 신의 개입, 운명, 이런 것들이 강하게 작용하는데. 그런 신탁을 전해주는 존재들이 늘 등장하고요. 그리스 비극 뿐만이 아니라 셰익스피어의 <맥베스> 에서도 세 마녀가 예언을 전해주죠. 이런 존재들의 특징으로는 직관적인 표현들보다는 아리까리한 (?) 의미심장한(?) 방식을 선택한다는 것이 있는데요. 맥베스도 '숲이 언덕까지 이사오지 않는 이상 넌 안전해' 라는 예언을 듣고 안심했다가, 숲의 나뭇가지들로 위장한 군대가 그가 사는 언덕까지 쳐들어왔을 때 죽음을 직감하지 않습니까. 이걸 유리원 챕터에 왜 이렇게 구구절절 썼냐면 전 리원이가 꼭 그런 메신저(?) 처럼 느껴졌거든요. 그래서 첼로 연주 장면도 그리스 비극이 꼭 코러스의 노래로 끝나는 것처럼 느껴졌고. 생각해보면 나무(식물)을 원재로 하는 물건을 다루는 인물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방식으로 그것을 이용하지 않았나.


리원이는 여러 두드러지는 특징들이 있고 그 중 하나는 언어적 표현이 굉장히 한정적이라는 것인데. 남들이 언젠가 했던 말만을 반복하죠. 그런데 이 말들이 나중에는 암시처럼 작용해요.

저는 <헤어질 결심>을 볼 때도 파파고의 역할이 되게 좋았는데. 이미 등장했던 대사들에 한 번 더 하이라이트를 쳐 주면서 그 뜻을 강조하고. 왜 강조했는지 뜯어보면 다 이유가 있잖아요. 리원이의 말들도 그런 역할이었던 것 같아요.




저는 <어쩔 수가 없다>의 플롯이 박찬욱의 다른 작품인 <박쥐>와도 닮았다고 느꼈는데요. 그 이유 설명하겠습니다 (이제 <박쥐>마저 스포일러 할테니까 주의하세요).


박쥐의 플롯은 크게 이런 모습이지 않습니까 (매우 납작하게).


1. 신부가 뱀파이어가 되었다

2. 현상현 (신부) 는 그럼에도 세 가지 신념이 있다.

- 나는 산 사람의 피를 마시거나 해치지 않고 ( BUT 노신부를 처치하게 됨 )

- 누군가를 뱀파이어로 만들지도 않고 ( BUT 태주를 뱀파이어로 만들게 됨)

- 죽이지도 않는다 ( BUT 강우를 죽이게 됨 )

3. 세 가지 신념을 모두 버려야 했고 지키지 못했던 현상현은 이제 죽어야 하기에, 마지막으로

자신이 위대한 존재가 아님을 선언하고 태주까지 없애는 방식으로 죽음에 다다른다.


그러니까 여러 사건들을 통해 세 번의 전환을 맞고, 결국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되는 이야기입니다.

(다른 많은 작품들도 이런 양상이지만 굳이 <박쥐>를 가져온 이유는 그냥 내가 보면서 생각나서)


이야기를 만들 때 항상 작법서에서도, 배울 때에도 들었던 말이 있습니다

인물은 사건을 통해 처음과는 변화한 지점이 있어야 한다고요.

<박쥐>와 <어쩔 수가 없다>의 서사 속 (제가 느끼는 가장 큰) 차이점은, <박쥐>는 결국 돌이킬 수 없는 많은 사건들이 발생되었지만 (태주와 상현이 세상에서 지워져도 지워지지 않는 사건들이 남아 있죠), <어쩔 수가 없다>는 ... 어떻게 보면 모든 일들이 해결되고 끝이 납니다


어떻게 보면 데칼코마니처럼 시작과 끝이 완전히 비슷한 이야기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야기의 시작에서 만수는 가족들과 자신의 집에서 너무 행복하고 제지회사에서도 잘 일하고 있어요

결말에서도 만수는 가족들과 자신의 집에서 너무 행복하고 제지회사에서도 잘 일하고 있고요


이 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만수는 앞으로 그것으로 추궁당하지도, 위기에 빠지지도 않을 것이에요

만수무강하겠죠 심지어 연쇄 살인의 혐의까지 벗어버렸고요

근데 그렇다고 이 사건들을 지나간 인물들이 같은 사람이냐? 그건 절대 아니거든요


만수는 사람을 셋이나 죽였고요

미리는 그걸 알면서 은폐했고요

아들(시원)은 아버지를 평생 의심하게 되었고요

딸(리원)은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면서 처음으로 집에서 첼로를 연주해냅니다


이 사이에는 만수의 세 번의 살인이 있었고요.


자 이제 이 이야기의 본론에 해당되는 세 번의 살인에 대해 이야기해보아야 합니다






세 번의 살인


누구나 알아봤을 듯하지만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세 인물 모두 만수와 유사한 지점이 있다는 사실이죠

또한 살인 별로 특징도 있습니다


1. 구범모 - 잘 나갔지만, 해고되었음. 가족 사이의 미묘한 틈 역시 유사함.

만수의 큰 두려움 중 하나는 사랑하는 미리가 오징어 (?) (젊고, 잘생기고, 돈 많음 ) 씨와 함께 미묘한 상황들(?) 이 있었다는 점이었는데요.

범모씨의 경우에도 부인이 신인 남배우 (젊고, 잘생기고, 돈 많을 듯) 와 바람이 나서 불륜을 하고 있습니다.


범모씨의 부인 이아라씨는 만수와 서로 죽고 죽이려는 연극적 장면까지 보여주지만

결국 이아라씨는 자신의 비밀을 덮기 위해 만수의 비밀까지 덮어주는 이야기의 해소를 담당하고도 있습니다

이아라씨도 나이가 꽤 있으면서도 오디션에서 번번이 떨어지는, 그리고 젊은 남자와 사랑을 나누는 이런 지점들이 구범모, 유만수 둘과도 맞닿는 지점이 있다고 느꼈고 영화 <선셋 대로>의 주인공이 잠깐 생각나기도 했어요

수많은 장갑을 벗으며 살해를 저지르려고 하는 장면도 코믹하게 다가오면서도, 얼마나 많은 자아를 해체해야 살해를 저지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고요

유명한 '고추잠자리' 씬에서도 결국 진실은 은폐되고 끝까지 사실을 모르면서 죽어가는 범모의 처지가 안타깝기도 하고요.




2. 고시조 - 자신과 비슷한 신세. 예체능을 하는 딸에게 만원이라도 쥐여주고 내보내고 싶은 마음. 고시조를 죽이는 것은 비교적 빠르고 담대하게 지나갑니다. 고시조의 이야기는 구범모에 비해서 훨씬 가려져 있기도 하고요. 박찬욱씨는 인물을 정말 섬세하게 다룬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모든 인물들이 '직업' 이라는 신분 외에도 개별적으로 선호하는 취향이나 특성들이 있었다고 느꼈고, 그런데 그것이 앞서 말한 '직업-신분'과도 잘 연관되어서 신기했어요. 고시조씨는 아무래도 엔지니어였기 때문에 차를 수리할 수 있었던 거였겠죠...


구범모를 죽이러 갈 때에는 말그대로 소동극처럼 뱀에게 물리기도 하고, 죽이려다가 꽁트를 직관하기도 하고, 죽이는 상황마저 말그대로 코미디에 끝까지 찝찝한데 고시조의 죽음은 정말 차분하게 진행돼요. 애초에 계획적으로 그에 대해 조사하고 접근했고, 살인에 다다르기까지도 순탄(?) 하고 반전 없이, 비교적 긴장감 하나 없이 진행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비교적 건조하게 전개되었다고 해도, 서사적으로는 아주 중요한데

이전까지 만수는 살인자는 아닐 수 있었어요. 물론 죽이려고 한 건 맞지만 총을 쏜 건 아라이기 때문에... 하지만 이번의 살인으로 만수는 결국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 것이죠 (심지어 고시조는 살해당한 세 인물 중에서 유일하게 결백하고 성실한 인물로 표현되어서 더더욱...)


3. 최선출 - 왜 최선출을 가장 마지막에 죽였는지 너무 잘 이해가 됐어요. 최선출씨를 죽이지 않고서도 방법이 있다는 것이 대사들을 통해 잠시 암시되는데요. 예를 들면 최선출씨의 비서나 동료가 될 수도 있었겠죠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런데 네가 죽지 않으면 나머지 둘은 개죽음을 당한 거잖아. 어쩔 수 없는 거잖아." 고시조를 비교적 침착하게 죽인 데에 비해, 최선출을 죽이는 것이 힘겹게 그려진 것은 유만수라는 인물의 현실적인 갈등까지 그려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살해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유만수가 스스로 억압했던 것들을 해제했다는 점에 있는데요. 다르게 말하면 자신의 중요 가치인 '가정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포기했던 담배는 이미 진작 시작했고요. 여기서는 아예 술을 진탕 마시고 계속 자신을 괴롭혀왔던 꾸준한 고통인 치아를 스스로 발치해내면서 모든 고통에서 해방되죠. 사실 우리는 자기억압, 인내심, 자기통제 등을 굉장히 뛰어난 능력으로 평가하지만 개인은 그 안에서 고통을 겪을 수 밖에 없어요. 그 고통을 참아내는 것으로 다른 성취를 이루는 것이 아름다운 삶의 지향점... 무언가 아름답고 숭고한 것... 이겠지만, 만수는 결국 '가정을 지키기 위해' 안 마시던 술을 '가정을 지키기 위해' 미친듯이 들이키고 살해를 저지릅니다.


결국 이 살해들은 그 자체로도 끔찍한 범행이지만 만수 개인에게도 세 번의 자아 해체를 맞는 순간들이고.

세 번의 일화들로 인해서 가족들에게도 효과를 미치는데


첫 번째 살해 때부터 미라의 의심은 시작되었고

두 번째 살해 때부터 아들은 아빠를 두려워하게 되었으며

세 번째 살해로 가족은 더 이상 균열을 은폐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가족'이 되어버리죠




오랜만에 쓰려니까 슬슬 체력이 달리네요. 의자에서 일어나고 싶네요

아무튼 지금까지 제가 주장했던 것들은


- 이상적인 척 하는 가족, 해고를 통해 가족을 구제하려는 과정에서 만수와 가족이 해체되는 이야기

- 과정은 세 번의 거대한 살해로 이루어졌고, 그때마다 만수와 가족은 처음의 형태에서 점차 멀어지게 된다


라는 내용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고요. 그 밖에 제가 주목했던 점들을 짧게나마 정리해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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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상 박찬욱의 작품 속에서는 여러가지 섞이지 않는 테마의 요소들이 배치되어 있어 혼란스럽고 혼재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이번에는 강한 주제와 내용에 더 집중해서인지 부가적인 요소들의 대치는 훨씬 덜하다고 (식견이 짧은 저는) 느꼈어요. 그럼에도 첼로 연주와 한국의 몇십년 된 대중가요들이 주로 등장하는 것은 신기하고 반가웠어요. 그리고 <헤어질 결심> 때에도 파파고나 숏츠 같은 최신의 기술을 작중에 포함시키는 게 신기했는데 (왜냐하면 현대 배경이 아닌 작품들도 많이 하셨고 그렇지 않더라도 기존에는 이런 외부 미디어를 직접적으로 작품 내에 잘 안 쓰셨으니까) 이것도 다른 방식의 '혼재' 라고 느껴져 반가웠습니다.


- 돼지가 2만마리 묻혀 있는 집터, 만수가 사랑하는 '집-가정' 은 이런 은폐의 현장속에 놓여있습니다. 할아버지가 2만마리 돼지를 은폐한 것처럼, 이 이야기도 끊임없이 많은 것들을 은폐하는 이야기입니다. 구시조의 시체는 아예 돼지를 연상하는 모습으로 묻히기도 하죠. 사과나무 하나에게 통째로 먹였다구요. 그런데 왜 하필 사과일까요. 영화의 주 무대인 지역이 (지역명은 기억이 안 납니다. 가상의 지명이었는데...) 특산품이 사과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저한테 사과는 여러 가지 이미지로 읽힙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난 직후에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지구가 멸망해도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의 죽음으로 미래를 기약하는 잔혹성(?) 거기서 오는 블랙코미디 같은 느낌 (?) ... 의도대로 읽은 건 아닐 것 같고 그냥 저의 생각입니다


- 모든 살해를 마치고 나서 미리와 만수가 포옹을 나누는 장면. 만수는 미리에게 1분만 포옹하고 있자고 제안하고, 미리는 숫자를 세기 시작하는데요. '내려 세지 말고 올려 세' 달라고 만수는 요청합니다. 앞으로 자신의 미래가 하향되지 않고 올라가기를 바라는 암시였을까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혼자 의미부여하고 해석하는 거 뻘쭘하고 개소리 일까봐 떨리는 마음에 자꾸 묻는 거 맞음)


- 위에서는 언급했지만 모든 인물들이 '직업-신분' 외에도 다른 개성을 지니고 있고, 만수의 경우에는 '식물을 사랑한다'는 점이 강조되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저에게는 이것이 되게 혼란스러운 이야기였거든요. 왜냐하면 순순히 받아들이기에 반발심이 들었어요. '식물-나무'는 사실 종이의 주재료잖아요? 제지회사에서 일하게 되면 결국 나무를 '베어' 내야 하고요. (작품의 원작 소설이 'Ax' - 만수가 초반부에 이야기하는 '모가지' - '베어' 내야 하는 나무의 이미지는 모두 연결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 두가지가 같이 있을 수 있는지. 온실 속 (사실 온실이라는 공간을 만수가 직접 지었다는 점도 재미있었는데, 온실이야말로 저는 바깥 (진실)로부터 격리된 이상향의 공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만수랑 너무 잘 어울려요 그리고 무엇보다 아버지가 죽은 창고를 부수고 굳이 온실을 지었다는 점도 죽음 은폐의 서사와 잘 맞아 떨어지고요) 에서 식물들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공들이고, 그것들을 예쁘게 관리하는 만수가, 또 그것들을 '모가지' 하는 제지회사에서 일할 수 있는 건지.


잠깐 다른 얘기 하자면 우리 아빠도 제지회사에서 일하세요. 만수나 범모의 말처럼 평생 종이밥만 드신 분이시죠. 그래서 <어쩔 수가 없다> 보면서 아빠가 20년도 넘게 근무하신 첫 회사에서 나가게 되었을 때 얘기가 생각나서 혼자 뜬금없이 눈물이 나기도 했는데... 아무튼, 저희 아빠는 지금도 제지회사에서 일하시지만 주말마다 산에 가서 식물을 기르세요. 그렇지만 그게 지금까지 죽인 나무들에 대한 죄책감이나 그런 건 아니고, 그냥 회사원으로 오래 사셨으니. 노후를 자연에서 보내고자 하는 로망은 요즘 흔하잖아요. 그런데 이게 한 사람의 인생에서 보면 그럴 수도 있는 사례지만 2시간 내외로 담아내고자 하는 것을 꾹꾹 압축해내야 하는 영화매체에서는 다르죠. 만수는 식물에 굉장히 집착하는 동시에, 식물을 죽이는 회사에 일하고 싶어하는 욕망도 굉장히 크고요. 이런 설정은 철저히 의도하에 만들어졌을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는겁니다.


근데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저 나름의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어요)


만수가 구시조의 시체를 말끔히 묶어내는 것의 개연성을 마련해내는 것 ... 그런 역할도 훌륭하게 수행하긴 했지만 이런것은 부가적인 요소라고 생각해요. 그러면 뭐지... 내가 놓치고 있는 것... 실마리는 결말 부근의 장면들이 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다시 취직하게 된 만수의 장면들이 잘려가는 나무의 이미지와 함께 편집되어 있거든요. 사실 영화 속에서 나무가 잘리는 장면들을 굳이 이제 와서 보여줄 필요는 없어요. 제지의 과정은 누구나 그 정도 쯤은 알고 있고 나무들의 죽음은 작중에서 계속 은폐되어 있어도 상관없는 죽음들입니다 (다른 주요 죽음들이 꾸준히 발생하고 있으니까) 그럼 '모가지' 'Ax' 의 이미지를 이어가고 싶었던 걸까? 아니다. 식물을 사랑하면서도 식물들을 죽이고 있는 이 모순. 이것이 만수의 인물 자체의 속성이라고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가족들을 사랑하면서도 간접적으로 그들을 죽이고 있는 이야기를 보여줬으니, 마지막에 암시적으로 그런 만수의 특성을 시각화해서 보여준걸까?


쓰다 보니 나름의 가닥은 잡히는데 여전히 혼란스럽군요 좋은 생각 있으면 공유해주세요 (이건 정말 몰라서 도움 요청하는 게 맞음)


- 그리고 발언권을 얻은 김에 제 나름대로 생각해 본 건데요. 만수가 아라의 불륜 현장을 목격했을 때 기를 써가면서 범모가 그 상황을 못 보게 하려고 했잖아요. 근데 사실 상관없는 일이잖아요. 제가 누구 죽이러갔는데 그 사람 배우자가 바람이 나 있건 말건 간섭할 일이 사실 아니잖아요. 왜 말리려고 했는지 생각을 해 봤는데. 위에서도 계속 주장해왔지만 만수는 '은폐의 미덕'을 믿잖아요. 그리고 범모가 부인에게 자기변호를 할 때 사용했던 언어들을 그대로 빌려와 미리에게 자기변호를 할 때 사용하기도 하고요. 자신과 닮은 상황의 범모에게 멋대로 라포가 있었을 거예요. 그래서 범모에게 가혹한 사실을 보여주기 싫었던 그런 나름의 선의(?) 아닐까 생각해봤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그만 물어볼까요?)


- 개인적으로 좋아했던 포인트들.


ⓐ 아빠를 비추는 나무 속 아들과 그것을 랜턴으로 비추는 미리.

포스터와도 유사하게 만들어진 이 장면이 너무나 좋았음. <스토커>에서도 머리카락이 밀대밭으로 바뀌는 그래픽 매치가 굉장히 SNS에서 인기를 끌었었는데. 빛으로 전환되는 장면들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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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모를 처음 죽여야겠다고 (계획 없이) 마음 먹었을 때, 범모를 미행했다가 높은 곳에서 화분으로 그를 맞추려고 하는데. 코믹하게 연출된 장면이면서도 1. '고추' 화분을 가져와서 '레드 페퍼'의 이름을 얻어오는 것도 재밌었고 2. 만담처럼 이어지는 화분 주인과의 대화도 좋았다. 그런데 제일 제일 좋았던 부분은 따로 있는데.

화분으로 맞춰 죽이려니 크기가 작은 것 같아서 더 큰 화분을 찾고. 그래서도 부족할 것 같아서 높은 곳으로 올라서는데. 이 '올라선다' 는 상승의 이미지가 만수가 가진 제일 커다란 욕망이잖아요. 근데 죽이기 위해서 높은 곳에 올라서고 보니 꼭 그 씬들은 만수가 투신해서 죽으려는 사람처럼 보이게도 연출되어 있어요.

죽이려는 사람이 죽는 것처럼 보여지는 아이러니... 전 아이러니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혼자 너무 좋아했던 지점이고요.


ⓒ 딸의 '독립' 에 관하여

신기한 일이죠. 딸이 독립하려면 첼로 연주자로만 가능해요.

그런데 그 첼로 연주자를 만들어주려면 가부장의 헌신이 필요해요. 독립을 시켜주겠다고 하면서 가정이 다 희생하고 있어요. 너무나도 반대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요.


ⓓ 오진호(?) 님

이름이 오징어로 오해되는 게 웃긴데요. 숲에 사는 만수와 바다에 사는 오징어님의 대결인 것도 같고 웃겼어요. 만수야 추하다. 만수의 가부장적 면모를 강화시키는 장면도 있었죠. 오진호씨가 발치를 도와준다고 제안하셨잖아요. 하지만 자존심 때문에 발치조차 남에게 맡기지 않는 모습. 고통은 스스로 모두 감내해야 한다는 집념. 답답하고 고지식하죠. 자신을 가족들을 위한 거룩한 희생양(?)으로 여기는 것 같아요


ⓔ 마지막, 제지 회사에서

인력 하나도 소중하다던 만수는 결국 인력이 기계로 대체된 회사의 현장에서 홀로 근무하게 되는데요

저는 앞서 언급했듯 아빠가 제지회사에서 오래 근무하셨기 때문에 현장에 가본 적도 있고 이야기도 많이 들었어요 제지회사는 '위이잉' 거리는 소리가 하루종일 엄청 크게 울려퍼져요. 귀가 다 얼얼하대요. 혼자 돌아다니는 만수의 주변에서도 과연 '위이잉' 사운드가 크게 울려퍼지는데 이게 꼭, 아들이 두려워했던 만수의 전기톱 소리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모가지' 로 많은 사람들이 사라진 현장에서 '모가지'를 자른 만수의 소리가 울려퍼지는 ...


하지만 그러면서도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은


'어쩔 수가 없다' 영화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영화 속에서 수없이 많이 나오는 대사입니다.

사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는 그 대사의 첫 등장이 만수의 살해 때 처음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합리화의 수단으로) 강조되었다고 느꼈는데요. 메모를 적고 나서 생각해 보니 그 전에 한 번 더 있었어요.

첫 등장은 바로 언제였냐면. 만수가 해고될 지 모르는 상황에서 미국인 간부들(?) 에게 손바닥에 적어둔 마음들을 꺼내기 시작했을 때 나오는데요. 통역을 통해 대화에 잠시 응했던 간부는 이렇게 말합니다. 미안합니다.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이후 만수는 해고당함)


어쩔 수 없는 일이었던가요? 아니죠. 사실 만수의 입장에서만 보면 이 때 '어쩔 수 없지 않았던' 살해는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그 말 하나로 자신의 모가지가 날아갔으니까. 이후 만수의 살해들도, '어쩔 수 없지 않았죠.' 어쩔 수 있었는데 어쩔 수 없다라고 말하는 이야기. 그래야 사는 이야기. 제가 아이러니의 팬이라고 했죠. 그래서 너무 좋았죠. 그래서 사실 이 영화의 제목은 <어쩔 수가 없다> 지만, 내용은 <어쩔 수가 있다>.




뭔가 공개적인 글을 쓰고 싶어서 처음으로 블로그가 아닌 브런치에 올려봤는데요


쓰다 보니까 힘들어서 그냥 혼자 생각정리한 글이 되어버렸네요. 그래도 미루던 글을 써서 너무 좋았고.


(여기서부터 다시 사담)


무대인사 때 제가 손예진님 얼굴의 팬이라 너무 좋아할까봐 걱정됐는데 막상 때가 되니 감독님만 보이더라고요. 너무 오래 리스펙 해와서 그런가 감격했음. 영화관 나오자 마자 폰도 꺼져서 바닥에 주저앉아 공책에 메모 시작하는데 갑자기 퇴근길(?) 까지 목격할 수 있어서 더 감격했음. 사실 무대인사 때 대형 포스터+굿즈를 나눠주던데 무대인사가 처음이라 K열까지는 아무도 관심을 안(못)준다는 걸 몰랐어요. 솔직히 웃길수도 있는데 영화가 너무 좋았어서 그것을 못 받은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너무 크고, 다른 관객분은 무대인사 때 넉살좋게 말도 거시던데 나는 뭐지 왜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지 하는 자기혐오에 빠져 갑자기 두통이 시작되고 약 30분동안 기분이 너무 쓰레기같았음 진심으로 화가난듯함 (그런 스스로가 너무 웃겼음) 근데 퇴근하는 현장을 코앞에서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마음이 좀 달래졌어요. 그리고 그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교보문고에서 <어쩔 수가 없다> 원작 도서인 <액스> 개정판을 구매하면 액스 아크릴 키링을 주는 이벤트를 하길래 굶어죽을 결심하고 구매했어요. 그런데 오늘 학교에 가져가니 동기들이 키링보고 이럴 줄 알았으면 말릴 걸... 이라고 하더라고요. 키링이 예쁘지는 않았거든요. 그래도 어쩔 수가 없다. 학교 주변 영화 서점에서 <액스> 독서모임을 연다고 해서 신청도 했어요. 그 날까지 모든 시간을 효율적으로 조율해서 꼭 읽어낸다.


글을 마치며... 사실 인터넷상에 불호후기가 너무 많길래 꼭 써야겠다고 다짐한 것도 있었어요

스스로 정리하는 작업도 필요했지만. 진짜 목적은 따로 있어요


저라고 무조건적으로 이영화가 100% 소울영화고 그런거 아니지만 좋았다는 얘기를 해야 한 분이라도 더 보실거니까요 한 분이라도 더 보셔야 감독님 리스펙 할 수 있고 다음 작품 또 볼 수 있으니까요

저는 진심으로 계속 보고 싶어요 감독님의 작품들을 그리고 이 작품도 너무 마음 좋았고요 대중친화성(?) 도 나름 성공했다고 보고요. 왜 불호후기가 유행이 됐는지 모르겠고요. 다른 분들도 의견에 휩쓸리지 말고 '좋았다'고 얘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요. 그걸 지지해 주기 위해서 올려야겠구요.

그렇지만 이성민배우님이 무대인사때 추석시즌이니까 가족들이랑 다같이 보라고 하셨는데 그것만큼은 절대못할것같아요 가족이 이렇게되었는데 어떻게 가족들과 보죠 하여튼.


이거 제가 좋아하는 말입니다. 이번 가을 <어쩔 수가 없다>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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