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출산'이라는 단어가 등장할 줄이야.
어느새 출산을 이틀 앞두고 있다.
비혼, 딩크 등 삶의 형태가 다양해진 요즘.
(평균이라는 게 있다면) '평균'에서 약간 빗겨난 시기에 결혼과 출산을 경험하게 됐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이가 생긴다면 어떤 기분일까'
'엄마가 된다면 어떨까?'
'나는 어떤 엄마가 될까?'라는 생각을 해 보곤 했는데,
보수적인 집안에서 여자아이로 태어나고 길러진 탓인지,
엄마의 영향인지는 모르겠다.
막연한 상상 속의 나는,
자녀에게 '동기부여'를 해 줄 수 있는 부모가 되어 있었다.
'우리 엄마는 이런 사람이야'라는
뚜렷한 상을 남겨줄 수 있는 사람.
아이가 학교에 갈 나이가 됐을 때
아이 학교에서 나의 직업을 소개하는 강의를 한다든가
회사를 견학시켜주는...그런 엄마를 꿈꿨다.
아마 36년간의 인생을 지탱해준 건
막연한 그 꿈이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지금도 그 바람은 변함이 없다.
다만, 처음 겪어본 임신과 코 앞으로 다가온 출산 앞에서
자주 움츠러들고 종종 우울해지기도 하는 게 사실이다.
인간으로서, 사회인으로서, 여성으로서
신체가 변하는 게 유쾌하지 않고,
감사하게도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는 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커리어 공백과 복직을 생각하면 머릿 속이 복잡해지고,
출산의 공포 못지 않게 신생아를 어떻게 키워야 할 지,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의 수십년 후를 벌써 고민하며
새벽마다 뜬 눈으로 시간을 보낸다.
아이의 성장과 발달이 나의 성장과 발달과는
반비례 그래프를 그린다는 것을 실감하는 요즘.
남편은 늘 그랬듯 '일상'을 사는데,
나의 일상은 무중력 상태인 것 같고
몸은 자유로운데 마음은 조급한 날들이 이어지면서
우울해지기도 했다.
간절한 바람과 준비로 아이가 생겼고,
건강하게 열 달을 보낸 것에 감사하면서도
충만한 기쁨만큼 깊은 고뇌의 날들도 이어졌다.
우리 엄마도 나를 이렇게 키웠을까.
묻고 싶지만 엄마는 오래 전 세상을 떠나셨다.
나는 오랫동안 아이 곁에서 건강한 엄마가 되어주고 싶다.
그리고 나중에 아이가 나에게,
엄마는 나를 왜 낳았냐고 묻는다면
네가 궁금해서, 그리고 너를 사랑하기 위해서, 라고 대답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