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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경은 Nov 22. 2023

경험한 만큼 상상한다

누군가 싫어하는 것을 묻는다면 문득 무모함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한때는 가능성이 제로에 수렴하는 일에 헌신하는 것을 한심하다고 여겼다. 기질이나 성격, 자라온 환경의 영향이겠거니 한다. 가끔은 퍼석퍼석 마른 행주 같은 이런 성격이 답답하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마음 속에 폭풍이 휘몰아치던 시절 심리 상담을 받았던 경험이 있다. 상담사는 나에게 통제 욕구가 강하다고 말했다. 아마도 무모함을 지양하려는 심리의 기저에는 통제할 수 없으리라는 미증유의 두려움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비교적 일찍이 진로를 정한 데다 외국은 내 기준의 무모함과 닿아있는 곳이기에 단 한 번도 해외 살이를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친구들은 어학연수며 교환학생, 워킹 홀리데이 등으로 해외에서 경험을 쌓았는데, 나는 해외여행에도 시큰둥했다. 유학을 갔다든가 해외 취업에 성공했다는 누구 누구의 이야기를 들으면 나와는 다른 우주에 사는 사람이라고 막연하게 느끼곤 했다.     


짧은 해외 살이를 마무리하며 이제야 느낀다. 사람은 경험한 만큼 상상할 수 있다. 그 상상의 결말이 희망이든 절망이든 경험의 기반이 있어야만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다. 사계절이 여름인 나라에 사는 사람이 겨울을 가늠해볼 수 있을까. 반대로 겨울만 있는 세상의 사람이 한여름의 뙤약볕을 그려낼 수 있겠는가.     


더불어 이 깨달음은 우리는 절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결론에 맞닿았다. 아마도 종종 만나는 무수한 외국인과 허공에 겉도는 대화를 할 때마다 머릿 속에 든 생각일 것이다. 또 미국에서 만난 무수한 한국인들을 만날 때도, 여행으로 미국을 찾은 지인들을 조우할 때도 종종 스치던 생각이다. 사람들은 각자의 맥락으로 상황을 이해한다. 같은 시공간을 공유하고 동일한 언어를 쓴다한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한다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다.      


소설가 김연수는 일찍이 내가 느낀 이 감정을 유려한 문장으로 서술한 바 있다. 


“나는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에 회의적이다. 우리는 대부분 다른 사람들을 오해한다. 네 마음을 내가 알아, 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네가 하는 말의 뜻도 나는 모른다, 라고 말해야만 한다. 내가 희망을 느끼는 건 인간의 이런 한계를 발견할 때다. 우린 노력하지 않는 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세상에 사랑이라는 게 존재한다. 따라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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