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과자 한 봉지의 의미
그렇게 시작된 초등학생 은준이와의 상담은 생각보다 원만하게 진행됐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원만한 진행’이란, 은준이가 5회기 이상, 즉 총 상담 횟수 중 반절 이상을 성실하게 참여해 줬다는 의미이다.
당시 초보 상담사였던 나에게 있어서는 상담을 받는 내담자가 10회기 약속을 끝까지 지켜주는 것만으로도 큰 성취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그러한 은준이의 적극성에 무척 감사함을 느꼈다. 초보 상담사일 때 특히나 내담자가 상담에 안 올까 봐 어찌나 마음 졸이는지. 아마 일반 사람들의 눈에는 그러한 정도에도 마음 졸이는 모습이 퍽이나 귀엽게 느껴지기도 할 것 같다.
사실 내가 받는 상담 비용은 그렇게 넉넉지 않았다.
아마 이건 상담을 처음 시작하는 모든 상담사들은 대다수가 경험할 수밖에 없는 현실일 것이다.
특히, 10년 전 내가 출장 상담사로 활동할 때는 1회기 당 상담 비용이 1만 원 조금 넘짓 밖에 나오지 않았다. 거기에는 내가 출장을 다니며 소비할 수밖에 없는 교통비, 식대비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설사 출장을 가야 하는 지역이 대중교통이나 자차로 한 시간 넘는 거리라고 할지라도 그 비용은 달라지지 않았다.
여하튼 본론으로 돌아오자면, 당시 내가 은준이의 상담을 의뢰한 교회까지 가려면, 마을버스를 타고 1시간을 가야 했고, 마을버스는 1시간에서 1시간 30분 사이에 한 대씩만 다녔다. 그러다 갑자기 마을버스가 운행을 안 한다고 하면, 택시를 타고 시내까지 나와서 다시 집까지 돌아갈 수 있는 버스를 갈아타야 할 정도로 그 교회가 있는 동네는 꽤 깊은 곳에 자리한 시골이었다.
그리고 나는 은준이와의 두 번째 만남 이후부터는 내가 받는 상담 비용 중 일부를 기꺼이 은준이의 간식 비용으로 지출했다. 매 회기마다, 매주마다, 은준이가 다니는 교회까지 상담을 하러 갈 때면, 은준이가 먹고 싶어 하는 과자를 한 봉지씩 사 들고 버스에 올랐다. 때때로 아이가 과자를 먹다가 목이 막힐까 걱정되어 피크닉을 같이 사서 가져가기도 했다. 어쩌면 이 간식들이 아이가 5회기 이상 상담을 꾸준히 올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였을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부정하지 않겠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시킨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렇게 했다.
은준이를 볼 때마다, 또래 아이들보다 눈에 띄게 작고 왜소한 체구를 지닌 아이의 외형이 신경 쓰이기도 했고. 두 번째 만남 때, 고 작은 얼굴에서 한숨과 같이 내뱉은 말이 사뭇 서글펐기 때문이다.
“선생님, 선생님. 선생님네 집 근처에는 편의점 많아요?”
“편의점? 어, 많은데. 갑자기 편의점은 왜?”
“에휴~”
“(웃으며) 왜, 왜 그러는데.”
“아니에요~ 그냥... 에휴~”
“?”
“제가 서울 살 때는 편의점도 많고 큰 마트도 많았는데요. 여긴 아~무것도 없어요. 편의점 가려면 아빠 차 타고 엄청 가야 하거든요. 엄마는 원래 나가는 걸 싫어해서 제가 막 이렇게 ‘아잉, 엄마~’ 해도 이(-_-)런 표정만 하고, 대답도 안 해요.”
“아….”
“제가 원래 감자 과자를 되게 좋아하거든요? 이렇게 기다란 거. 근데 아빠가 사 오는 과자는 뭔가 맛도 없고. 할머니네서 먹던 그런 과자랑 똑같고. 그래서 제가 아빠한테 '아빠~ 이거 말고~' 하고 이렇게 졸라도 아빠는 알았다고- 알았다고- 약속해 놓고 자꾸 다른 과자를 사 오는 거예요. 에휴~”
은준이는 또래보다 머리가 좋았고, 관찰 학습이나 모방 학습 능력도 높았다. 그리고 책을 많이 읽어서 그런지 언어 표현 능력도 상당히 유창했다. 덕분에 그런 은준이의 말속에서 은준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은 내게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하지만 아직 어린 초등학생인 은준이는 가히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의 엄마가 몸의 병보다 더욱 깊숙이 상처 입은 마음의 병 때문에 자신을 온전히 돌보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는 것을.
그리고 은준이의 아버지도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아이가 좋아하는 과자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기억해서 사다 줘야 한다거나, 아니면 아이와 함께 과자를 사러 가는 게 더 나았으리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을.
그저 은준이 아버지는 아내와 같이하던 장사를 예기치 못한 사고로 인해 접을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갑작스러운 사고로 절망에 빠진 아내의 몸과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그나마 있던 재산마저도 쏟아붓다 보니, 오랜 세월 살아왔던 서울에서의 삶마저도 마치 도망치듯 정리하고 시골로 이주해야 했기 때문에.
아이에게 있어 과자 한 봉지가 갖는 의미가 얼마나 큰지, 도저히 헤아릴 수 없었을 것이다.
당장 자기 자신의 삶마저도 숨 가쁘기에.
그러니까 은준이도, 은준이 아버지도 그 어머니조차도 가족 중 누구 하나 잘못한 사람은 없었다.
갑작스레 누군가에게 들이닥치는 사고와 불행, 그리고 거기에 더해지는 경제적 어려움, 즉 가난이라는 큰 그림자는 굳이 사람을 가려서 찾아가는 것이 아니니까. 결코 우리가 악하게 살아서 혹은 잘못된 삶을 살았기에 신이라는 존재가 어떻게든 벌을 주려고 내리치는 천둥 번개 같은 것도 아니니까.
순간 상담사인 나의 눈동자에 오롯이 담긴 은준이의 투덜거림은 단순히 과자 한 봉지 때문에 솟아 오른 푸념만은 아닌 것 같았다. 또래보다 훨씬 작았던 아이. 그로 인해 얼굴도 체격도, 손마저도 몹시 작았던 아이는 수차례 한숨을 뱉으며, 자신의 얇은 손가락으로 책상의 구석 모서리를 꾹꾹 밀어내듯 손을 놀리며, 그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에.
무의식적으로 아이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어느덧 부모의 관심사에서 한참이나 바깥으로 밀려나버린 자신의 처지를.
자신이 좋아하는 과자 한 봉지조차 제대로 사주지 않는 부모의 모습을 통해, 더 이상 부모로부터 온전한 애정의 형태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는 현실을.
그러니 자꾸 애꿎은 상담실 책상 구석 모서리만 꾹꾹 찍어가며, 마치 자신이 그 모서리에 서 있는 사람인 양 손짓을 하는 것 같았다. 나의 심정이 이렇게 절벽 구석까지 몰린 것 같다는. 그로 인해 한 없이 위태롭고 아슬아슬한 상태라는. 아이만이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외침.
그건 상담사인 나에게만 보인 직관적인 행동관찰이었다.
그래서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굳이 계산해 볼 필요도 없는 일이라고 확신했다.
아이의 말을 들으며, 불현듯 대학 수업 때 들었던 모 교수님의 말씀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상담사는 때로는 상담을 받으러 오는 내담자의 부모의 역할을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부모의 대리자가 되는 거지요. 부모의 역할이 무엇입니까. 밖에 나갔다 온 아이가 엄마, 엄마, 찾으면서 할 말이 있다고 하면 그 얘기를 들어주고. 아이가 어디 다치고 와서 아프다 하면 호 불어주고 위로해 주고. 때로는 아이한테 엄격한 태도로 아닌 건 아니라고 정확하게 훈육을 해주기도 하고… 그래서 상담이 어려운 겁니다.
내담자가 나이가 많건 적건, 아이건 어른이건, 상담사는 그의 부모가 된 것 같은 마음으로 살뜰하게 살펴주기도 해야 하니까요. 자기 부모에게 온전한 보살핌을 받지 못해서 무의식적 미아가 되어버린 그 숱한 아이들을 말입니다…
계속 한숨을 쉬는 은준이를 보면, 괜히 내가 더 눈물을 글썽이게 될 것 같아서, 그래서 아이에게 직접 제안했다.
“은준아… 무슨 과자 좋아해?”
은준이는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자기가 좋아하는 과자 이름을 하나하나 손가락을 꼽아가며 얘기했다. 그러다 이내, 내가 다음 상담 때부터는 사 오겠노라 약속을 하자, '우와! 진짜요?'라며 무척 신이 난 듯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 후 세 번째 상담부터, 나는 아이가 그토록 먹고 싶어 했던 과자를 갖고 상담실에 앉아서 아이를 기다렸다.
처음 과자를 갖고 기다렸던 날에는 평소처럼 상담실에 들어서던 은준이의 표정에서 흡사 하트가 뿅뿅 튀어나올 것 같은 벅찬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더하여, 좁은 상담실 안을 충분히 울릴 수 있을 정도로 '꼴깍'하는 침 넘김 소리도 효과음으로 빠지지 않았다.
청량하고 맑은 한 없이 순수한 사운드였다.
그렇게 내 추억 속 어딘가에 '사랑스러움'이라는 제목으로 저장된 어느 날의 기억이 그러하다.
그날부터 내 생에 가장 어린 꼬마 선생님은 상담 시간마다 자신의 소확행 과자를 꼬옥 끌어안은 채, 부스러기 하나까지 손가락으로 야무지게 콕콕 찍어 먹으며, 나에게 ‘와이 책’ 수업을 해주기에 여념이 없었던 것이다.
더욱 열정적으로 말이다.
하지만 언제나 모든 날이 매일 맑음일 수는 없다고 했던가.
어느 날 갑자기 은준이에게 '딱 하루' 상담에 도저히 올 수 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내가 그 먼 거리를 힘들게 버스를 타고, 교회 상담실에 이미 도착한 상태였음에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