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받지 못한 퍼즐 한 조각
은준이가 상담실에 오지 않았다.
그게 퍽이나 충격적이었던 것 같다. 당시에는.
은준이와 약속된 상담은 총 10회기였고, 그중 7회기까지 아이가 성실히 참여해 준 덕분에 나는 꽤나 들떠있었던 것도 같다. 그래서 더 놀라움도 컸었나 보다. 누구보다도 아이를 믿고 있었기에.
믿음이란, 그 크기만큼의 대가를 반드시 동반한다는 사실을 상담을 하는 내내 깨달아야 했고. 그 첫 깨달음의 시작이 은준이라는 꼬마 선생님으로부터였다.
그래서 내내 지우지 못했나 보다. 이 아이와 함께 맞춰 나갔던 추억의 퍼즐을.
나와 아이, 서로가 하나씩 채 완성하지 못한 빈칸을 남겨둔 채 말이다.
그리고 아이가 내게 끝내 건네주지 않았던 퍼즐 한 조각이 이 날이었다.
유일하게 상담에 빠졌고, 그 이유조차 말해주지 않았던 날.
대신, 첫 상담 때 아이를 부탁한다고 하셨던 집사님이 아이 대신 미안한 마음을 가득 안고는 상담실에 들어섰다. 그리고는 전해 주었다. 모조품으로 만들어진 형태의 퍼즐 조각을 들고서.
"안녕하세요, 선생님."
"아, 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예, 오랜만이에요. 계속 저희 은준이 상담하러 와주신 건 알았는데. 제가 다른 아이들도 돌보느라 바빠서 이제야 인사드리네요. 죄송해요…."
"아유, 아닙니다. 집사님 바쁘신 거 저도 다 아는데요, 뭘. 하하."
"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해요… 저 근데 은준이는 음…"
"아, 네. 그렇지 않아도 지금 은준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 왜… 은준이가 안 올… 까요…? 하하… 하…."
살짝 난처한 표정을 보인 집사님은 버릇인 듯 이전에 보였던 것처럼 입술을 잠시 앙 다물더니, 다시금 말을 이어나갔다.
"은준이… 오늘 못 올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네? 왜…."
"아… 정말 죄송해요. 선생님 멀리서 오시는 거 저희도 아는데… 미리 연락드렸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아, 네… 어쩔 수 없죠. 원래 저희 상담이 아이들이 꾸준히 온다는 게 쉽지는 않긴 해서요. 하하…."
"네… 그래도 너무 먼 걸음 하시게 한 것 같아서… 죄송해요…."
"예에… 저… 근데 혹시 은준이는 왜 못 오는지… 알 수 있을까요?"
"아… 실은… 음… 하아…."
"…."
작지만 깊은 한숨 소리와 함께 이내 결심한 듯 집사님의 눈빛은 보다 단호해졌다.
"사실 선생님 도착하시기 1시간 전에 저희 교회 내에서 사고가 좀 있었어요."
"에? 사고요? 아…"
"예에… 그래서 저희도 연락도 못 드린 거고… 사실 선생님하고 상담 시작하면서 은준이가 좀 나아지는 게 눈에 보였거든요. 애들 사이에서 자꾸 따돌림당하고 그랬으니까… 교회에서 맨날 무기력하게 앉아만 있었는데. 그냥, 애가 맨날 멍하니 다른 애들 하는 것만 보고… 힘도 없고. 그래서 저희 목사님도 그렇고 사모님이랑 다들 선생님께 되게 고마워하셨어요. 은준이가 선생님하고 상담 시작한 후에는 점점 웃기도 하고, 저희한테 와서 애교도 부리고 그래서요."
"아아, 네에. 그건 진짜 다행이네요…."
"예. 정말 감사해요. 근데 음… 왜 전에 제가 말씀드린 적 있죠. 아이가 좀…."
"아, 네에. 그… 잘난 척…."
"예에… 근데 이번 건 제가 볼 땐 잘난 척은 아닌 것 같긴 한데. 저희야 어른이니까 상관없지만, 아이들한테는 아직 은준이 이미지가 그전보다 많이 달라지진 않았어서요. 그래서… 저희 교회에서 애들 다 같이 미술치료도 하고 그러거든요. 선생님 상담 시작 전에 은준이도 계속했었고요."
"아… 네네. 저도 은준이에게 들었어요. (살짝 웃으며) 애들 장난 같아서 유치하다고 하긴 했지만, 싫어하지는 않는 것 같더라구요."
"아, 은준이가 그렇게 말했어요? 이놈이… (웃음)"
그 당시, 집사님이 너무 미안해하시기도 했고, 본론을 말하기까지 내 눈치를 너무 많이 보셔서 살짝 분위기도 풀어보고자 장난처럼 진실을 가볍게 던져 말했다. 그리고 예상한 대로 은준이를 아끼는 마음을 선명히 보여줬던 집사님으로부터 여전히 아이가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다행이라고도 여겼다. 아이가 아직도 적응 중인 그 공간에서 누군가 애정 어린 관심을 가진 존재가 있다는 것이. 곧 상담의 종결을 준비해야 했던 나의 입장에서는 그게 꽤나 안도감을 주는 상황이었기에.
그래서 방심했다. 내가 아닌, 아이에게 남은 숙제는 아직 더 큰 게 있었는데.
잠시 웃음을 갈무리한 집사님은 곧이어 씁쓸한 표정으로 변하며 말을 계속했다.
"근데 그… 사실… 은준이가 아직 아이들 사이에서 따돌림당하는 게 다 좋아지진 않았거든요."
"아, 아… 네…."
"근데 저는 이만큼도 충분히 만족해요. 어쨌든 선생님 상담 덕분에 은준이가 다시 웃게 된 것도 맞고… 전처럼 모든 애들하고 다 못 지내고 그러진 않거든요. 이제 좀 말 좀 섞는 애들도 생겼고…."
"…."
"선생님 오시기 전에 그… 교회 아이들 다 같이 하는 미술치료가 먼저 시작되거든요. 근데 웬일인지 은준이가… 전에 자기도 해봤던 거라서 그런지, 슬그머니 들어오는 거예요. 근데 그냥 저희도 그러려니 했고… 근데…."
상담사로서 내담자와의 관계가 점차 가까워질수록 더욱 깜빡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아이의 상담 의뢰 사유가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의 '따돌림'이었음을… 적어도 나는 잊지 말았어야 했는데.
"은준이는 전에 자기도 해봤던 거니까. 그렇게 하는 거 아니라고… 그냥, 옆에 애한테 훈수를 둔 거죠."
"아아… 네에…."
"음음. 근데 그… 걔는 평소에도 은준이를 너무 싫어했던 앤 데, 은준이는 그걸 몰랐거든요. 은준이는 은따라… 대놓고 애들이 괴롭히고 따돌리고 그런 건 아닌데. 어쨌든 무시하는 거죠. 얘도 싫어하고, 쟤도 싫다 하니까."
"아, 그쵸. 그럼 좀…."
"예에… 그래서 그냥… 애들끼리 싸움이긴 했는데. 하아…. 은준이가 또래보다 워낙 작잖아요. 근데 그 때린 애는 좀… 많이 크거든요. 그 나잇대 애들 중에서도."
"아아…."
"예… 피가 좀 많이 났어요, 은준이가. 그래서 지금 목사님이 급하게 병원 데려가셨거든요…."
"…."
"피가 도저히 안 멈춰 서요."
순간 스치는 장면이 하나 있었다.
이전 회기의 상담에 올 때도 어쩌다 한 번씩, 코피의 흔적을 묻히고 왔던 은준이의 얼굴이.
―은준아, 그 피 왜 그래?
―피요? 어디요?
―코 밑에. 여기.
―아아~ 몰라요! 저 원래 코피 잘 나요. 근데 또 잘 안 멈춰요. 냅두면 이러다 또 괜~찮아져요. 그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오~
초등학교 고학년이라고 해도 아이치고는 너무 능숙하게 답변했던 말.
장난스러움을 가득 담고 태연하게 그 말을 내뱉던 모습.
그때, 아이가 내 눈은 전혀 보지도 않은 채 그렇게 능청스럽게 얘기했었다는 걸 그때도 눈치챘더라면…
아이의 표정이 어땠는지 좀 더 정확하게 볼 수 있었을까.
결국 그날은 은준이의 얼굴은 보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아이에게 주려고 가져갔던 간식만 집사님께 전해달라고 부탁한 채 말이다.
상담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보다는 피를 많이 흘렸을 그 작은 아이의 얼굴이 아른거려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내내. 나는 버스 차창에 머리를 기댄 채 아무 미동조차 할 수 없었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넋이 나갔다. 나도 모르게.
―평소에도 장난처럼 은준이를 툭툭 친 애들이 좀 있었거든요. 그래서 한 번은 코피가 좀 난 적도 있고… 애들이 밀쳤는데, 은준이가 자빠지면서 탁상에 얼굴을 부딪쳐서요… 그래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걔는. 다른 애들도 은준이를 괴롭히는 걸 봤으니까… 자기는 더 심하게 때린 거죠… 그래도 되는 줄 알고.
계속해서 귓가를 떠나지 못하는 집사님의 마지막 말 때문에.
어쩌면 그건 은준이가 내게 끝내 감추고 싶어 했던 비밀이었을지도 몰랐다.
상담사인 나에 대한 믿음과는 별개로, 나를 좋아했던 마음만큼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었던… 아이가 고이 접어 놓았던 자존심. 이후 상담이 끝나는 날까지, 내가 은준이로부터 직접 전해받지 못한 유일한 퍼즐 한 조각.
아이의 비밀에도 분명 타당한 이유가 있었을 텐데. 그 비밀을 몰래 훔쳐본 대가는 꽤나 혹독했다.
죄책감이라는 가시가 너무 크고 두꺼운 모양으로 내 목에 걸려, 나는 이틀 하고도 하루를 꼬박 더 앓아야 했다.
마치 갓 태어난 아기가 지혜열을 앓듯이.
상담사로서의 첫 열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