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에 가장 어린 꼬마 선생님 (4)
#4. 눈에 밝힌다
일반 사람들이 상상하는 상담사의 이별은 어떠한 그림일까.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과 헤어짐이기에.
어제보다 오늘, 과거보다 현재에 조금 더 자연스러워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나는 마냥 쉽지만은 않다고 얘기하고 싶다.
‘눈에 밟힌다.’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을 아직 나는 찾지 못했다.
지금까지 내가 만났던 모든 내담자들이 그러했다.
어떻게 보면, 시절인연처럼. 잠깐의 만남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상담을 하는 동안 내담자의 말을 경청하고, 공감하고, 또 서로가 진실성 있게 마음의 교류가 이루어지고.
이를 통해 내담자에 대한 기억을 곱씹기도 하며.
그렇게 내담자들은 상담사의 기억 속에서 온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그중에서도 나는 이 이야기의 시작이 되어준 은준이가 특히 그랬나 보다.
무의식적으로 이 아이와의 이야기를 가장 먼저 적어 내려간 걸 보면.
아무도 모르지만, 은준이와 나는 알 수 있을 아이와 나만의 추억의 조각들.
어느새 훌쩍 자라 있을 아이의 기억 속에서 나라는 존재가 조금이라도 더 섭한 사람이 아니었기를 바라며…
그래도 ‘어른’이라고, 그때에는 그저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진심을 여기에 남겨 본다.
내가 초보상담사로서 시작했던 출장 상담은 같은 대상자의 아이를 한 번 더 연장해서 10회 추가의 상담을 할 수 있기도 했다. 그래서 상담에 성실하게 참여하는 은준이를 보며, 진지하게 연장을 고려하고 있었다.
다만, 여러 번 언급했다시피, 은준이의 상담을 의뢰했던 시골의 교회는 몹시 외진 시골 마을에 자리해 있었다.
그로 인해 다니는 동안에 내게 불미스러운 사건이 하나 생겼었고, 그 사건이 결국 은준이의 상담이 연장되지 못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오늘이 지난 후에 작은 에피소드로 정리해서 가져올 예정이다.
지난 회차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은준이는 본래 교회 내 따돌림의 문제로 상담이 의뢰됐었고, 나는 아이의 자존감을 회복하는 데 주력하다 보니, 그 문제를 좀 더 깊이 있게 다루어야 한다는 사실을 잠시 망각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제 막 상담을 시작했던 나의 입장에서는 그 부분까지 케어하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일이었을 수도 있지만. 못내 죄책감으로 남은 건 어쩔 도리가 없었다.
또한, 그보다 더 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던 현실은 내가 이제 아이에게 상담 종결에 대해 언급해야 한다는 상황이었다.
지난 회기에 아이가 갑작스레 상담에 오지 못하게 된 건 ‘당일 취소’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고스란히 회기 수가 차감되었다. 교회에서 자발적으로 원했기에 더 그랬다. 멀리서 왔던 나를 그대로 돌려보내야 했던 내게, 그들이 느낀 미안한 마음이 너무나도 컸기에.
그렇게 맞이한 8회기 상담.
은준이는 외견상 크게 문제는 없어 보였지만, 안색이 다소 어두워진 상태였고, 분위기는 살짝 침울했다.
아마도 자신이 다른 아이들에게 환영받지 못한다는 걸 제대로 인지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아이는 내게 자신에게 벌어진 일련의 사건에 대해 먼저 언급하지 않았고, 나는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보며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을 오물거리기를 반복했다. 아이의 눈치를 살피며.
그러다 아이가 평소처럼 설명해 주던 와이책의 내용이 끝나갈 즈음, 마른침을 한 번 삼키곤 말을 꺼냈다.
“… 은준아. 우리 이제 곧 상담이 끝나갈 때가 되어서…”
“저희요? 상담이요?”
아이는 잠시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고, 나는 첫날 우리가 약속했던 10회의 상담이 이제 거의 막바지에 다다랐음을 설명했다. 나의 설명을 듣는 동안 아이는 상담실 테이블 위를 보며, 어떠한 표정의 변화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저 테이블 위에 올려둔 자신의 손가락으로 무언가 작은 원을 그리는 듯 움직이기만 할 뿐.
"-해서. 선생님이 이제 두 번 정도 더 오면 끝날 것 같아."
"네에…."
"은준이 혹시 좀 아쉬웠던 거라던지, 아니면 끝나기 전에 조금이라도 얘기해 보고 싶었던 거라던지. 그런 거 있으면 다음에 올 때 얘기해 줄래?"
"네에…."
“…….”
아이의 눈빛과 표정에서 어떠한 감정도 읽히지 않는 듯 느껴져서 나는 잠시 할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그럼 저 이제 가도 되죠?”
“응? 어, 그래. 맞아. 오늘은 이제 끝났어. 맞아. 가도 돼."
“네! 안녕히 가세요!”
그렇게 빠르게 사라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평소와 다르게 잠시 상념에 젖어야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마을버스를 놓치면 안 된다는 조급함에 매번 상담이 끝나면 곧바로 짐을 챙기고는 했지만. 그날따라 그게 영 쉽지 않았다.
그 후, 두 번의 만남 동안 은준이는 너무나도 태평한 모습이었다.
마치 자신과 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그런 아이의 모습에 나 또한 어느 정도 마음 정리를 했고, 상담이 모두 종결된 후 돌아오던 길에는 도리어 시원섭섭한 마음이 컸다고, 스스로 평가했던 것도 같다.
그러니까 어떻게 하면 좋을지 괜히 고민하는 건 나뿐인가 했고, 아이의 또래답지 않은 지나친 차분함에 나는 한 번 더 속아 버렸던 것이다.
아이가 어떤 상황인지 알고 있었음에도.
초보상담사는 괜히 초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게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