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에 가장 어린 꼬마 선생님 (5)

#5. 그리고 우리는 알고 있었다.

by 잇슈


은준이와의 상담이 끝난 후, 얼마 안 가 나 또한 계약이 종료되었기에 근무지를 이동했다.

상담사로 일하기 위해서는 상담 경력이 필수였고, 대도시에서는 워낙 쟁쟁한 상담사가 많다 보니, 나 같은 초보 상담사에게 쉽게 일을 주는 기관이 없었다. 그래서 다니게 되었던 그곳.


당시 사회초년생으로서 차가 없다 보니, 대중교통으로 시골의 여기저기 구석진 곳까지 찾아다니며 상담을 한다는 현실이 녹록지 않았기에. 개인적으로는 좋은 경험을 쌓았다고 생각하며, 그 경력을 통해 도시의 상담 기관으로 이동에 성공한 것이다.


그렇게 나름 만족하며 새 기관에서 일을 하던 어느 날.

상담을 하는 중에는 아무래도 내담자가 앞에 있기 때문에 휴대폰을 다른 장소에 두는 편이었고, 그래서 금방 받지 못했다. 모르는 번호로 여러 번 걸려오는 전화를.


상담심리를 전공으로 선택한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 분야의 기본적인 최저 학력은 석사 이상이며, 대학원을 다니며 일을 병행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모습이라는 것을. 그래서 나 또한 대학원 학업과 학회의 수련, 일까지 같이 하며 빠듯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니 그날도 도시의 모 기관에 출장 상담을 갔던 날이었다.

연달아 예정돼 있던 상담을 끝낸 후, 휴대폰을 보니 낯선 번호가 눈에 띄었다.

총 세 번이나 찍혀 있는 부재중 통화.

혹시 또 다른 근무지에서 온 업무 연락인가 싶어 황급히 내쪽에서 다시 걸어보니.


"여보세요."

"아, 여보세요? 어, 저기, 안녕하세요? 전화가 여러 번 와 있어서…"

"아… 아아! 잠시만요! -아!"

"…?"


처음 들어보는 낯선 중년 남성의 목소리였고, 나는 그를 몰랐지만, 그는 내가 누군지 금방 알아차린 듯했다.

전화기 너머로 누군가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리는데, 그 목소리가 찾는 이름은 또렷이 들리지는 않았다.

그래서 괜히 ‘누구지?’하는 마음에 궁금하기도 하고, 조금 마음을 졸이기도 하며 기다리고 있었는데.


"선생님!"

"!?"


너무나도 익숙한 목소리.

상담사로서의 내 인생에 있어 10회기 상담 완료라는 성공을 가장 처음으로 안겨준 아이.

글로 적고 있는 이 순간에도 여전히 나를 눈물짓게 만들 수 있는…


"… 은준아."

"선생님! 000 선생님이에요? 히힛!"


어쩜 그렇게 똑똑할 수 있었을까.

아이의 입을 통해 나오는 내 이름 석자가 그렇게 감격스러울 수가 없어서 탄식과도 같이, 아이의 이름을 불러 버렸다.


이미 상담이 끝난 이후에도 어느덧 두 계절이나 지나있었을 즈음이었는데도.

아이의 목소리는 여전했고, 정확하게 나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조금 달라진 게 있다면 그저. 본래 내가 알고 있던 아이의 목소리 보다 한층 더 밝고 명랑한 톤이었다는 것.


"세상에… 은준아. 어, 어떻게. 어떻게? 선생님 번호? 어떻게 알았지?"


당황한 마음보다도 반가움이 너무 커서, 우습게도, 말을 더듬는 쪽은 나였고.

아이는 여전히 말을 잘하는 그 똘똘한 모습 그대로였다.


"그때 선생님이 알려주셨잖아요!"

"아, 아아…!"


상담 마지막 날.

나와 완전히 헤어지는 순간에도 마냥 차분했던 아이의 모습을 보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A4용지 한 귀퉁이를 찢어서 적어줬던 내 개인 연락처. 그 장면이 아이의 답변을 통해 내게도 생생히 재현됐다.


만약 언제든 선생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전화하라고 했던.

선생님이 기관의 결정으로 인해 더 이상 방문을 오는 건 쉽지 않지만, 전화로는 꼭 이야기를 들어주겠다 약속했었던.

그걸 건네받던 아이의 표정에서 그 어떠한 생각이나 감정도 쉽게 읽을 수 없었기에.

별 의미가 없을 줄 알았던 그 행동이 마냥 그렇지만은 않았나 보다.


그렇게 기쁘고 들뜬 마음으로 아이와 그간 만나지 못했던 날들의 이야기를 짧게 나누었다.

아이는 이제 가까워진 친구들도 생겼고, 나의 조언대로 아빠에게 자신이 원하는 과자 이름을 정확하게 적어서 주니까 아빠가 틀리지 않고 과자를 사다주더라는.

남들이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닐지 모르지만, 은준이와 나 사이에 충분히 의미 있는 이야기들을.

마냥 행복한 마음으로 말하고, 들었다.


대화의 끝이 다다르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 알았어~! 참나. 선생님! 아빠가 휴대폰 달라고 하셔서요!"

"응? 응~ 그래, 그래. 그래야지… 하하."

"에휴~"


변하지 않은 아이의 말투는 사랑스러웠다. 조금 어른을 흉내 내는 것 같기도 한.

그래서 몰랐다. 그다음으로 나올 아이의 말이 또 나의 마음에 어떤 파동을 일으킬지.


"선생님!"

"응~"

"근데 선생님 보려면 어디로 가야 해요?"

"선생님? 어어… 어. 선생님 지금 이동해서 이제 그 상담실에서 일하지 않는데, 어쩌지?"

"히잉. 그럼 어디에 있는데요?"

"응. 선생님 지금 OO에 있어."

"OO이요? 거긴 그럼 제가 가는데 얼마나 걸려요?"

"여기? 으음, 글쎄… 은준이네 집에서는… 차로는 아마도 한 시간?"

"아하. 그럼 아빠한테 데려다 달라고 하면 되겠다!"

"…응?"


순간 내가 잘못 들었는가 싶었다. 그래서 잠시 멈칫했다.


"선생님 있는 곳이요! 제가 선생님 만나러 갈게요!"

"어? 어, 어…"

"선생님 보고 싶어요! 히힛. 선생님은요?"

"응?"

"선생님은 저 안 보고 싶어요?"

"어? 아니, 보고 싶지! 당연히 보고 싶지…."

"헤헤!"

"근데, 어떻… 게…?"

"네?"

"어… 그… 은준이가 아직 어려서... 어떻게 올 수 있을지 몰라서…."


괜히 조심스러워지는 말투.


"아빠 차요! 저희 아빠 차 있어요! 아빠한테 차로 데려다 달라고 하면 돼요! 히힛."

"어, 어어… 그래…."


그 직후의 대화는 전부 기억나지는 않는다.

아이의 순수한 믿음에 어떻게 반응해 주는 게 맞을지, 아직 나는 혼란스러웠기에.

그저 아이의 말에 ‘응, 그래.’라고 앵무새 같이 대답만 해주다, 아이의 목소리가 중년 남성의 목소리로 변하는 것을 듣고 잠시 정신을 차렸을 뿐.


"선생님."

"오! 아, 네. 안녕하세요."

"예, 저 은준이 아빠입니다."

"아, 네네. 은준이에게 말씀 들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예. 죄송합니다. 저희 은준이 잘 챙겨주셨는데 제가 인사도 한 번 못 드리고…."

"어, 아닙니다. 바쁘셨던 거 아는데요."

"예에. 항상 감사했습니다… 아이가 집에 오면 선생님 얘기를 많이 해서요."

"아이가요? (웃음) 몰랐습니다."

"예에… 아이가 선생님을 많이 좋아했거든요. 그래서 죄송합니다. 바쁘실 텐데 이렇게 전화드리게 돼서… 근데 아이가 계속 졸라 가지고요. 선생님 번호 있다고… 선생님이 전화해도 된다고 계속 졸라서…."

"아…."


보지 않아도 그려지는 것 같았다.

아이의 부탁에 아마도 난처했을 아버님의 모습이.

괜히 내가 더 죄송해지는 마음이었는데.


"그리고… 죄송합니다."

"… 예?"

"아이가 선생님을 많이 보고 싶어 해서요…."

"아…."


잠시간 찾아온 정적.

그리고 이제 어떤 말이 나올지 반쯤 예상이 되었던.


"… 기회 되면, 찾아뵙겠습니다."

"아… 네…."


선명하지는 않았지만, 분명 들었었다.

아이가 자신의 아빠에게 부탁해서 선생님의 주소를 물어보게 하겠다고.

그래서 아빠가 자신을 선생님이 있는 곳으로 데려다주게 하겠노라고.

세상 모든 걸 다 가진 것 같은 목소리로, 아이는 그렇게 자신했었다.


그리고 우리는 알고 있었다.


어떤 때는 아이들의 앞에서 그저 알았노라고만 정해진 답을 해줄 수밖에 없는 순간도 있다는 것을.

그건 마치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 같은 거짓된 방법으로.

어른이기에 쓸 수 있는 최선의 수단이라는 것을.


나도 은준이 아버지도, 그렇게 우리는 그날 처음 통화를 했지만.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사람끼리만 알 수 있는 그것처럼.

나도 은준이 아버지도, 각자가 그렇게 은준이 앞에서는 ‘알았다’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통화를 끝낸 후, 아이의 밝은 음성을 뒤로한 채, 나는 또 한동안 멍 때리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무겁게 내려앉는 눈꺼풀과 함께.

가슴 언저리에 얹힌 무언가를 간신히 내리눌러야만 했다.

마치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꾸역꾸역 밀어 넣으며 참아내는 사람처럼.

잠시 동안, 나의 슬픔을 억누르는 데 온 힘을 다하며,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았다.


아이에게 내가 받은 만큼, 해주지 못한 게, 또 해주지 못하는 게 너무 많은 것 같아서.

아직까지도. 나의 무능함 때문에 아이를 결국 기만해 버린 것 같아서.

아이의 순수했던 마음만큼, 내게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죄책감이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아니했다.


결국 여기가 나의 한계점이구나, 싶은 순간. 끝내 터지고야 만 것이다.

아이가 상담을 갑작스레 빠졌던 그날부터 애써 외면해 왔던 내 진심들이.


'미안해 은준아. 선생님이 미숙해서. 미안해.'


봇물처럼. 머릿속에 와르르 쏟아져 온 정신을 지배하고야 말았다.


그리고 받아들여야만 했다. 은준이와의 상담이 완전히 종결됐다는 사실을.

아이를 놓지 못하고 있었던 건 오히려 나였을 수도 있다는… 나의 진실을.






그렇게 한동안, 나는 내 스스로의 역량 부족에 대한 후회감 때문에 괴로워해야만 했다.

그리고 떠올렸다.


‘상담사의 진실성’


상담사에게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자세라고 그렇게 배웠음에도 실천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던 그것.


내가, 나의 소중했던 아이에게 도저히 전할 수 없었던 마지막 퍼즐 한 조각.

이제야, 이렇게나마 슬며시 내밀어 그 빈칸을 맞춰보고자 한다.




-2024. 12. 23. 라스베이거스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이미 훌쩍 자라, 성인이 되어있을 은준이에게.

지금도 아직 부족하지만, 그때는 한참이나 부족했던 초보 상담사가.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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