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에 가장 어린 꼬마 선생님 (epilogue)
어느 상담사의 사정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사실 상담사라는 직업은 위험에 꽤 많이 노출돼 있다.
내가 은준이와의 상담을 연장하고자 했으나 그러지 못한 이유. 그 또한 바로 그 때문이었다.
평소처럼 똑같이 타고 다니던 마을버스 안에서 불현듯 처음 보는 남성에게 폭행을 당할 뻔했으니까.
*다소 폭력적인 장면이 묘사되어 있으니, 읽는 분들의 주의를 요합니다*
그날도 여느 날과 다르지 않았다.
햇빛이 엄청 쨍하지도, 그렇다고 또 비가 우중충하게 내리지도 않던 날.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사이에 버스가 한 대 오는 어느 시골 마을의 작은 버스 정류장.
지금 즈음에는 그 버스 정류장에도 기다리는 승객들을 위한 승강장이나 의자가 생겨났을까.
가히 상상이 어려울 정도로 그 버스 정류장은 버스 정류장 답지 않은 모양새였다.
하지만 말했다시피, 초보 상담사의 급여는 넉넉지 않았고, 자차를 구입할 여력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 자리에서 매 시간 맞춰 오는 버스를 잡아 타야만 하는 게 마치 사명과도 같았다. 어쨌든 너무 늦지 않게 집으로 귀가를 해야 했기에.
그래서 서 있었다. 아무 경계심 없이.
어차피 그 시간에 혼자서 버스를 기다리거나 버스 안의 승객이 나 하나쯤인 건 거의 익숙해지기도 했으니까.
아마도 5회기 전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은준이의 상담이 시작한 후로부터.
어쨌든 은준이의 성실한 참여 덕분에 나름 만족스러운 얼굴로 그 먼 곳까지 오갈 수 있었고.
그날도 그러한 만족감 덕분에 편안한 마음으로 버스를 타고자 기다렸기에.
지나치게 안도했던 것도 같다. 평소보다 더 고요했던 그 자리에서.
"저기, 저, 저기요."
"네?"
삐쩍 마른 처음 보는 중년의 남성.
나이는 정확하게 가늠하기 어려웠지만,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인 것은 분명하게 느껴졌다.
피부는 원래 구릿빛인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고, 마치 이것저것 흙이랑 무언가가 묻은 듯 거무죽죽한 외형이었다. 머리부터 목, 손까지 드문드문 피부색이 서로 달랐으니까.
그리고 출처가 불분명한 상처와 핏자국에 언제부터 입었는지 가늠이 되지 않는 너덜너덜한 옷까지.
옷의 색 마저 피부의 거무튀튀함을 닮아 있었다.
결국 나 또한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뭔가 위험한 느낌. 머릿속에서 적색 경보등이 울리기 시작했다.
"저, 저기, 저. 아내, 아내가 아파요."
"네??"
"아, 아, 아내가 아파. 그래서 내가 시내, 까지 가야 해요. 시내."
"아, 아, 네…."
"아내, 아내가…."
남성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고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말을 심하게 더듬는 것과 발음이 안 좋은 것도 문제였지만, 그 남성이 입을 열 때마다 구취가 풍겨왔고, 남성의 치아 사이사이로 붉은 색깔이 눈에 띄었기에.
잇몸에 문제가 있는 건지, 아니면 누구에게 맞아서 피가 났던 건지.
남성의 치아 사이사이로 선명하게 끼어 있는 핏자국들이 지나치리만큼 눈에 들어왔다.
그럴수록 내 머릿속에서 더욱 선명해지는 생각.
'이 아저씨를 자극하면 안 돼.'
처음에는 등 쪽에서만 느껴졌던 긴장감이 점차 손 끝과 발 끝까지 퍼져, 내 온몸을 단단하게 아니 딱딱하게 만들어 줬다. 그리고는 나의 두려움을 숨기기 위해 내가 손으로 쥐고 있던 가방의 끈을 지그시 더 힘 있게 쥐었다.
금방이라도 덜덜 떨릴 것 같은 손을 감추기 위해. 그게 최선이었다.
"버스, 버, 버스비가 없어. 아내가 아픈데."
"아, 네에…."
"아, 아내한테, 내가, 내가 가야 하는데."
"…."
"그, 그, 그니, 그니까. 버스, 버스비. 좀, 줘요. 버, 버스비."
"…."
남성이 내게 다가온 진짜 목적이 무엇인지 고백한 순간.
-끼익
어느덧 내가 타고 갈, 이 버스 정류장을 유일하게 지나가는 마을버스가 도착했고.
"죄송합니다! 저도 제 버스비 밖에 없어서요!"
급한 김에 후다닥 그 말만 던진 채 버스에 올랐다.
그리고 잽싸게 교통카드를 찍은 후, 최대한 버스의 내리는 문 근처에 앉았다.
또 역시나. 그날따라 아무도 버스에 타지 않았고, 승객은 오로지 나 혼자였다.
덕분에 내가 원했던 자리를 차지했다 생각했고, 그 남성도 따돌렸다 여겨서 한숨 돌리려던 찰나.
"아저씨 뭐야!"
"!?"
"아, 이 인간이 진짜. 또 이러네."
"버, 버스비. 저 여자애가 내준댔어! 저, 저 여자애!"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저 아가씨는 자기 것만 냈어! 당장 내려!"
"뭐? 아냐! 저, 저, 여자애가…!"
"당장 내리라고!"
어느새 날 따라 버스에 오른 그 중년 남성이 버스 기사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버스 기사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당연히 내가 자신의 몫도 내줬을 것이라 확신하며.
그러다 진짜로 내가 자신의 몫을 내주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된 순간.
"이…! 이, 이! 씨발년이!!!"
순식간에 목까지 벌게질 정도로 분노한 그 남성이 내게로 달려들었다.
나를 가리키던 손가락을 어느새 활짝 펼쳐, 나를 후려칠 모양새로 바꾸어.
"야, 이 씨발년아!! 내가! 아내한테 가야 한다고 했잖아!!"
사람이 너무 극심한 공포에 몰리면 비명도 나오지 않는다는 걸, 그때 처음 경험했다.
버스의 맨 앞에서부터 내가 앉은자리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고, 남성은 이제 말도 더듬지 않을 정도로 분노가 폭발해 있었다. 눈에도 핏발이 서 있는 것처럼 보였고, 살기 등등 했다.
그렇게 성큼성큼 다가와서는 코 앞에서 날 폭행하려던 찰나.
"야, 이 미친놈아! 이 새끼 이거 또 이러네!!"
잽싸게 그 남성을 쫓아온 버스 기사 아저씨가 온몸으로 그 남성을 뒤에서 끌어 안아 그 상황을 저지시켰고, 나는 여전히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흡하고 호흡을 멈춘 그대로 얼어있을 뿐.
거친 몸싸움이 시작됐다.
그 남성을 밀어내려는 버스 기사 아저씨와 나를 어떻게든 때리기 위해 허우적 대는 그 남성 사이에.
당기고 밀고, 버티고 붙들고. 서로가 서로에게 욕설과 거친 말이 난무하는 고성이 오가는.
'쿵, 쾅! 쿠쿵! 쿠당탕! 탕탕!'
시끄러운 소리가 버스 안을 메웠다. 나와 버스 기사 아저씨, 그 남성, 고작 3명밖에 없는 버스 안에서.
그저 난 내 앞 좌석의 등받이 윗부분을 꼬옥 쥔 채 숨을 죽이는 것 밖에 할 수 없었고.
결국 버스 기사 아저씨가 그 남성을 내동댕이 치듯 버스의 내리는 문 밖으로 온 힘을 다해 밀치자, 남성이 버스 계단을 굴러 흙바닥까지 나뒹굴었다.
곧이어 버스 기사 아저씨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상당히 민첩하게 행동했다. 재빨리 움직여, 버스의 내리는 문을 굳게 닫아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 남성 또한 멈추지 않았고, 다시 벌떡 일어나 버스 앞문으로 재차 탑승을 시도했고, 이 또한 익숙한 듯 버스 기사 아저씨의 반응이 먼저였다.
버스의 앞문과 뒷문을 모두 굳게 닫아버렸다. 그 남성이 절대 들어올 수 없도록.
그러나 남성이 또 멈추지 않았다.
버스의 코 앞에 서서 버스가 움직이지 못하게 하려고 했다.
자길 치지 않고는 지나갈 수 없도록. 그렇게 두 팔을 벌려 버스 앞에 몸을 밀착했다. 익숙한 본새였다.
"이, 씨…!"
결국 버스 기사 아저씨는 거친 말과 함께 차를 잠시 후진한 후, 그 남성이 다시 따라붙으려는 모양새를 따돌리기 위해 재빨리 버스를 몰았고. 당시 뒷좌석에 여전히 얼어붙은 채 있던 지나치는 차창 밖으로 나의 눈에 보인 건, 다시 나뒹구러 진 채, 온몸으로 화를 내며 욕설을 내뱉고 있는 남성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생전 처음 겪는 사건. 자칫하면 '묻지 마 폭행'의 피해자가 될 수도 있었던.
"아가씨, 괜찮아요?"
"네? 네, 네에…."
"저 인간 원래 맨날 저래요. 저거 아주 미치광이야. 이 동네에서 유명해요."
"…."
"에휴… 그니까 앞으로 조심해요. 저기 정류장 말고 다른 데서 탈 수 있으면 타고…."
"… 네… 네…."
그리고 덧붙이길, 남성의 아내는 실제 존재하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저 남성이 맨날 '내 아내가 아파서 버스를 타고 시내에 나가야 한다.'라는 소릴 하며, 다른 승객들에게도 버스비를 강요하다가 난리가 났다는 이야기와 함께.
그렇게 나를 지켜주었던 버스 기사 아저씨.
그리고 내가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 위로해 주었던 말들.
그때의 은혜를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덕택에 내가 나의 소중한 내담자였던 은준이와 끝까지 열 번의 약속을 모두 지킬 수 있었노라고.
이 자리를 기회 삼아 감사 인사를 다시금 전해 본다.
그 시절 내가 다녔던 출장 상담이라는 게 그랬다.
차로 1시간이 넘는 거리를 가더라도 1회기 상담 비용이 1만 원 조금 넘게 나오던 시절. 그 비용에 모든 교통비와 식대비 등등이 포함되어 있던. 4대 보험 중 어느 하나 들어있지 않아서 혹여 다치거나 사고가 나더라도 그 어떠한 보상조차 제대로 받을 수 없었던.
결국 그 일은 담당자를 통해 팀장님께 보고할 수밖에 없었고, 그로 인해 은준이와의 상담도 연장되지 못했다.
그 일을 전해 들은 담당자는 내게 넌지시.
"이미 4회기 기본 상담은 끝났는데… 그냥 중단하는 거 어때요? 그런 일 있었다고 교회에 사정 얘기하고요. 팀장님이 OO선생님한테도 한 번 물어보라고 하셔서…."
라고 했지만. 나는 일단 10회기는 채우겠노라 얘기했고.
은준이 덕분에 10회기를 완성할 수 있었다.
다른 그 무엇보다, 갑작스레 가정의 사정으로 인해 도시에서 시골에 전학 온 은준이의 외로움을 이해하기에. 나 또한 그런 경험이 있었으니까.
그 상황에서 나까지, 아이 앞에서 갑자기 사라지면 아이가 어찌 될까 그게 마음이 쓰여서.
내가 유일하게 은준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게 그것뿐이어서.
그래서 그리했다.
그리고 당시 버스기사님의 적극적인 도움 덕분에 좀 더 용기를 낼 수 있었다고도 생각한다.
상담사의 사정이란 때때로 그랬다.
내담자에게는 쉽게 입 밖으로 전하기 어려운.
그러니 만약 누군가, 갑작스레 상담사로부터 상담을 조기 종결해야 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된다면.
부디 너무 서운해하지 않기를… 염치없게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