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한 명을 위한 교수님 (1)

#1. 노신사도 폭탄을 던진다

by 잇슈


신기한 일이었다.

어떤 말은 욕설이 하나도 안 섞여 있는데도 따가울 때가 있는 것처럼.

또 어떤 말은 슬픈 단어는 한 글자도 들어있지 않음에도 가슴이 저밀 정도로 아플 때가 있다.


개인상담도 그러했지만, 나는 종종 집단상담을 할 때도 그러한 상황을 목도한다.

이번 이야기도 그중 하나이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나는 여전히 출장 상담사이다.

하지만 약간 다른 게 있다면, 지금은 개인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출장을 덜 나가게 되었다는 사실일 것이다.


구체적인 집단명을 여기에 적을 수는 없다. 비밀보장의 의무는 개인상담뿐 아니라, 집단상담에서도 엄격하게 적용되기 때문에. 나는 집단원들과 약속을 지켜야 하니까.

다만 일부 공개하자면, 집단상담 대상자가 부부가족이었다는 것이며, 그들이 서로 신고하여 경찰서까지 방문했을 정도로 심각한 갈등이 있었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소위, '위기의 부부'들.


이건 그저 내가 주로 선택하는 방법 중 하나일 수 있는데.

일반 성인을 대상으로 집단상담을 할 때, 특히 서로 간에 갈등이 심각한 경우. 나는 주로 '반구조화' 집단상담을 선택한다. 집단상담에는 구조화, 반구조화, 비구조화 집단이 있는데, 반구조화 집단상담의 경우, 다른 집단상담 보다 '교육'적인 부분이 강조되기 때문에 무척 용이하기 때문이다.


그날도 그랬다.

날씨는 이제 막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고 있었고, 나는 평소처럼 10분 일찍 집단상담실에 도착했다.

그리고 천천히 개인 노트북과 짐을 풀며 돌아보니, 역시나.


집단에 참여하기로 한 모든 사람들은 서로 말이 없었으며, 스마트폰을 하거나 팔짱을 낀 채 눈을 감고 있는 분도 보였다. 그리고 다섯 쌍의 커플이라고 전해 들은 것과 달리 내 자리 바로 앞에 착석한 한 명의 남성분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대상자들 중에서도 눈에 딱 들어올 정도로 연세가 지긋해 보이시는.

어느 건물의 경비원으로 근무하시는 것으로 추정되는 옷을 입으신 노신사님.

그저 다른 부부와는 또 다른 사연이 있으신가 보다, 하고. 잠시 짐작만 해본 뒤 모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내 눈에 담은 모두의 얼굴에는 언제나처럼 똑같은 표정이 읽혔는데.

그들은 그저 자기들이 해야 한다고 전달받은 집단상담을 빨리 끝내고 집에 돌아가고 싶은 심정들을 뿜뿜 보여주고 있었다. 그 표정은 언제나 모든 대상자가 똑같다 보니, 딱히 자세히 살펴볼 필요도 없었다.

묘하게 고집스러운 모습들에 살포시 웃음이 나올 것 같았지만, 대놓고 웃을 수는 없으니.

그저 입꼬리를 내리기 위해 입술 중앙을 위로 쭈욱 올려볼 뿐이었다.


그렇게 인사를 끝내고, 반구조화 집단상담의 형태답게 교육도 진행했다.

처음에는 상당히 방어적이었던 집단원들이 점차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으며, 봄에 눈 녹듯, 평생을 꽁꽁 묶어둘 것 같았던 팔짱도 서서히 풀어내기 시작했다. 어떤 남성 분들은 어느새 상체를 앞으로 숙인 채 두 손을 기도하듯 모은 자세로 앉아, 상당히 고민을 하는 복잡한 표정 변화를 보여주기도 했으며, 또 어떤 여성 분들은 한쪽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옆 자리의 남편 몰래 훔치기 위해 재빨리 손을 쓰는 행동을 보이기도 하였다.

물론 남편은 그걸 금방 눈치챘으나, 아내가 알아주길 원치 않는 것처럼 보여 잠시 시선만 두었다 바로 할 뿐이었다.


그렇게 집단을 진행하다 보니, 쉬는 시간이면 하나 둘, 마치 학교에서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다가와 조잘대는 것처럼 나에게 대화를 걸기 시작했다.


"강사님 얘기를 들으니, 자꾸 제가 뭔가 생각하게 돼요."

"네. 아마 그러실 거예요. 심리학이 원래 그렇거든요."

"그니까요. 이번에 아내랑 진짜 서로 내가 죽네 네가 죽네 다투고, 경찰서까지 가고 그러니까. 내가 이게 사는 게 맞나? 이런 취급까지 받으며 살아야 하나? 계속 그랬거든요. 그래서 막 집에서 유튜브에서 명상 채널도 찾아보고 이것저것 보고 그랬는데…."


그렇게 말한 한 남편 분을 그 옆자리의 아내분이 살짝 흘겨보더니, 피식 웃었다.


"나는 안 그런 줄 아나…."


이젠 그 미소가 더 이상 남편을 무시하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집단 내 모두가 알고 있었기에.

두 부부의 그런 모습에 동조하듯 다른 사람들도 피식피식 웃었다.


"아니, 당신도 그랬겠지! 근데 내 말은 강사님 강의를 듣다 보니 신기하다는 거야. 강사님 봐바. 얼마나 편안해 보이셔! 그냥 자기가 아시는 거라며 뭐 어디 밥집 얘기하듯 얘기하시는데. 그게 심리학이라는데. 아무리 들어봐도 내 얘기 같단 말이지!"


그 말에 동의라도 하는 것처럼 그 아내 분도 다른 집단원들도 모두 다 같이 살짝씩 고개를 끄덕이거나, 그 마음이 공감이 간다는 듯 잔잔히 미소를 보이기도 했다.


"허, 참! 신기하네 심리학이 참 신기하네요, 강사님!"

"(웃음) 네에. 덕분에 제가 신기한 사람이 되었네요! 감사합니다!"

"아니이, 제가 강사님이 신기하다는 게 아니라아~"

"(다 같이 웃음) 하하하하하"


작은 배움도 느끼고 소통도 해가며.

서로 다른 세상에서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결국 치유의 과정을 겪는 것.

집단상담의 그러한 매력을 전달하기 위해 나는 언제나처럼 노력했고, 그날도 그랬다.


하지만 언제나 집단 내 위기는 찾아오는 법. 마치 우리가 사는 삶의 단면처럼.


"허허, 참 차암 다들 좋을 때다."


유일하게 혼자 참석한 노신사가 이미 그 집단 내에서 가장 어른이라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모 빌라의 경비원으로 70대라고 자기를 소개했기에.


"형님! 아니, 형님도 그렇지 않으세요?"

"허허. 뭐가 또. 이 동생은 차암 말이 많아."

"아니, 강사님 수업이요! 형님도 강사님이 말을 참 잘하신다고 아까 그러셨잖아요. 그러니까 왜 이 좋은 수업에 혼자 오셨어요! 형수님도 같이 오시지."


처음의 서로 내외했던 분위기는 온 데 간 데 없고, 어느새 집단원들은 자기들끼리 통성명도 하고 형님 아우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막 가까워진 사이다 보니 당연히 모르는 일들이 더 많은 법.


"에이잉. 말도 안 되는 소리 말어! 그렇지 않아도 둘이서 서로 오겠다고 또 어찌나 싸워대던지!"

"네??"

"네? 둘이서 요?"


동생이라고 불리던 남성 분과 나의 질문이 동시에 나갔다.

남성 분은 '둘'이라는 단어를 흘렸고, 내가 그걸 주워서 재차 물었던 것이다.


"그래 둘! 내 처가 둘이라고! 큰 놈! 작은놈!"

"(다 같이 동시에) 네에에에!?"


집단상담사인 나조차도 집중하게 만든.

어느 노신사의 폭탄선언이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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