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그를 위한 결말이었다

네이버 블로그 '전문상담사 잇슈'

by 잇슈


사랑하는 가족을 잃는다는 건. 그가 떠나간 한 계절을 통째로 앓게 된다는 것과 같았다.

애도상담을 할 때마다 종종 경험하고는 한다. 그들의 체온은 소중한 가족을 떠나보낸 그때 그 온도에 멈춰버렸다는 걸.


공기가 점차 차가워지는 가을이면. 어김없이 몸살을 앓는 한 남성이 있었다. 그는 그걸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사실 그와 나의 첫 만남은 상담사와 내담자의 관계가 아니었다. 그는 법 관련 국가기관에서 전문 강사로 일하고 싶었고. 그런 그에게 나를 소개해준 건 다른 기관의 센터장님이었으니까. 교수자와 학습자의 관계. 그렇게 시작됐다.


다만, 내 강의 스타일이 집단상담 형태를 추구하다 보니. 나에게 강의를 배우는 학습자들 대다수가 집단상담을 일부 경험하고는 했다. 전공이 심리학과가 아니고, 꿈이 상담사가 아닐지라도 말이다.


그와 다른 몇몇 학습자들을 모아 소그룹으로 교육을 진행했고. 겨울이 다가오기 직전의 가을에. 그가 크게 앓는 바람에 교육에 참여하는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그리고 무심결에 다른 학습자로부터 전해 들었다. 그의 딸의 기일이 그 시기라고. 어떻게 떠나보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유치원 정도 나이가 됐던 소중한 딸이 그때 그의 품을 떠나갔노라고.


그래서 혼자 짐작만 하다가. 결국 또다시 결석한 그에게 전화를 해서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혹시 매 년마다 이 시기에 아프지 않으냐고. 그러자 그는 잠시 기억을 더듬어 보는 듯하더니, 아 하고 반응했다. 맞다고. 희한할 정도로 이 시기였던 것 같다고. 선생님 어떻게 아셨느냐고. 그렇게 허허 웃었더란다.


하지만 나는 마주 웃어줄 수 없었기에. 잠시 침묵을 하다가 말했다. 괜찮다면, 그 딸에 대한 애도 상담을 우리의 교육 시간에 잠깐 해보면 어떨지. 어쩌면 아이를 그렇게 보내고 애도를 하지 못해서 그 아픔이 몸으로 나타나는 것일 수 있다고. 그러자 그는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내게 다시 연락하여 한 번 해보겠다고 용기를 내주었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건. 그가 오랜 세월 묻어둔 딸에 대한 이야기를 한 마디 두 마디 풀어놓을 때마다. 그 장소에 있던 모두가 하나둘씩 그의 고통에 함께 눈물 흘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 상담을 진행하던 나조차도 말이다.


딸을 떠나보낸 이후에도 그 방 그대로 15년 넘게 계속 청소하고 있었다는 부모의 마음.

초등학교 아이를 보며, 중학교 아이를 보며, 고등학교에 하하 호호 웃으며 등하교하는 아이들을 보며. 내 딸도 올해 저 학교에 입학했을 텐데. 저 아이들과 함께 학교에 가고 집에 돌아왔을 텐데. 그렇게 대학도 가고 회사도 갔을 텐데. 그러다 문득 아이의 방을 보면. 아이가 떠났던 그 나이 그대로 멈춰져 있는 옷가지들이 보여. 멍해지고는 했다던. 어느 아버지의 이야기.


울컥 솟아오르는 울음을 억누르기 위해 억지로 침을 삼키고. 목이 매여 차마 말을 잇지 못할 것 같은 순간에도. 입을 앙 다물고 상담을 계속해 나가야 했던. 어느 가을 끝자락의 기억.


불과 몇 개월 전. 카페에서 잔업을 하고 있던 어느 요일에.

덕분에 계절마다 앓았던 열병이 사라졌다고. 참으로 오랜만에도 연락이 닿았던 그의 목소리. 그날 이후 몇 해가 지나고 보니, 자신이 더 이상 가을에 아프지 않게 됐다는 걸 깨닫게 됐노라며. 한결 가벼워지고 경쾌해진 듯 느껴졌던 진심 어린 감사의 인사.

끝내 그를 위한 결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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