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블로그 '전문상담사 잇슈' : 이해하기
너는 왜 영어를 쓰냐, 고
교수님의 지적이 들어왔다.
내가 사용하는 언어 표현에 영어로 된 전문용어가 많다는 게 이유였다.
뒤이어 이어진 말씀에
절로 숙연해지기도 했다.
상담은 사람과 사람이 대화를 하는 일인데
이 한국 땅에서 네가
그렇게 영어로 된 전문용어를 많이 사용하면
과연 올바른 상담을 할 수 있겠느냐고.
내 불찰이 맞았다.
그게 어언 10년도 더 된 이야기이다.
그리고 2023년 경이었던 것 같다.
길에서 영어에 능숙한 프랑스 여성이 내게 길을 물어봤고
나는 회화에 능숙하지 못해서 버벅대었다.
그걸 지켜보던 어떤 중년의 남성 분이
나를 몹시 화가 찬 눈으로 노려보더니
다가와서는, 갑자기 환한 미소로 바꾸며 그녀에게 길을 설명해 줬다.
그러고는 다시 나를 위아래로 노려보더니 사라졌는데
그의 행동이 비정상적으로 기이하여
나도 프랑스인 여성도 오히려 그가 이상하다는 듯 그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결국 그녀를
안전하게, 안동까지 가는 버스를 탈 수 있도록
버스 터미널까지 데려다준 건
몸으로 대화한 나였지만 말이다.
그렇게 나에 대한 고마움에
나의 이메일 주소를 직접 달라며 받아 간 프랑스 여성은
나에게 연락하기 위해 카카오톡을 가입했고,
나는 그녀를 위해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다.
우리는 가끔 안부를 주고받는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문득, 나는 그 시작점을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한국 땅에서 사는 한국인이
영어를 못한다는 이유로 무시당하거나
영어를 잘한다고 해서 한껏 콧대를 높인다거나
영어 때문에, 괜스레 부끄러움 또는 위축감을 느껴야 했던 시기.
오히려 외국인들은 내가 영어를 잘 못해서 미안하다 해도
괜찮다며 전혀 미안해하지 말라고 하던데.
같은 한국인은 그 사실을 코웃음 치는 아이러니.
사회가 문제인지 사람이 문제인지
닭과 달걀의 선후 관계에 대한 고민은 영원할 것 같다.
*사진 출처: iStock 무료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