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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가치를 회복하는 정책

중소기업에 취업한 청년도 의욕을 가질 수 있는 나라

by 이완

무기력한 사회

청년이 드러눕고 있다. 2025년 1월 기준, 2, 30대 청년이 72만 명이 마땅한 이유 없이 취업 준비도 하지 않았다. 2010년보다 30만 명 늘었다. 이 문제를 두고 분명 누군가는 요즘 애들의 의지나 열정부터 탓하겠지만, 그것은 그다지 과학적이지 않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고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의욕적으로 움직이고 싶어한다. 이는 심리학자들이 밝혀낸 인간의 기본 욕구다. 그런데 과도한 위협을 느끼면 일할 의욕 뿐만 아니라 성욕, 수면욕 같은 기본 욕구마저 뒤로 미루고 당장 눈 앞의 위협을 경게하는 데 집중한다.

다시 말해, 드러누워 버린 청년이 72만에 달한다는 것은 청년층 사이에 좌절이 확산하고 있다는 단서다. 그렇다면 무엇이 청년의 의욕을 짓누르고 있을까. 각자만의 원인도 있겠지만, 수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인 원인도 분명 있다. 그 중 최근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노동시장이다.

참혹한 노동시장 붕괴 현장

시장경제에서는 모든 것에 가격표가 붙는다. 어떤 취미도 갖지 않고 숨만 쉬고 사는 데도 돈이 들고, 최소한의 법적인 보호를 받을 때도 마찬가지다. 이런 조건 속에서 불평등까지 크다면, 정순신 변호사 사건처럼 가진 사람이 자녀의 학교 폭력마저 무마시키는 사례가 나타나게 된다.

많은 사람이 가난하면 그런 억울한 일을 겪어야 한다는 점을 잘 안다. 그래서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기 위해 무리해서 주택에 투자하거나 사교육비를 감당한다. 또는 사회적 지위를 속이기 위해 온몸에 명품을 두른다. 그 과정에서 번듯한 사회구성원으로 대우받기 위한 조건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겉으로 보이는 평균치가 올라가고 있으니까.

이런 사치 경쟁도 충분히 문제지만, 또 다른 문제가 함께 붉어지고 있다. 바로 사치 경쟁을 견딜 기회가 계속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2025년 1월 기준으로 구직자가 10 명 앞에 놓인 일자리는 고작 3개 뿐이다. 1988년에는 구직자가 10명이라면 일자리가 30개였는데, 지금은 그 10분의 1 수준이다.

취업에 성공해도 문제다. 전체 일자리 중 67% 정도는 중소기업에서 나온다. 그런데 30대 후반 중소기업 종사자의 중위소득은 같은 나이대 대기업 종사자보다 300만 원 정도 적다. 설령 중년까지 일한다고 해도 대기업 종사자를 따라잡을 수 없다. 그렇게 적은 월급을 받으면서 50대가 되면 은퇴를 준비해야 할지 모른다. 평균 은퇴 연령이 49세까지 낮아졌기 때문이다.

많은 청년이 어릴 때부터 집, 학교, 학원을 돌며 취업만 바라보고 살았다. 그만큼 거품 낀 평균에 맞추기 위해 많은 시간과 돈을 들였다. 그런데 노동시장은 점점 불안정해지고 있다. 심지어 일자리 간 격차도 극심하다. 과제는 어려워지는데 수단은 마땅치 않다. 그런 상황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은 다름 아닌 좌절이다.

노동을 다시 위대하게

그렇다면 어떻게 청년을 좌절의 늪에서 꺼낼 수 있을까. 노사관계나 복지제도 전반을 개혁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 사이에 좌절은 더 깊어질 것이다. 비교적 빠르게 손 볼 수 있는 정책이 하나 있다면, 바로 근로장려금일 것이다.

근로장려금은 장점이 많은 제도다. 소득이 오를수록 지급액이 늘어나는 구간이 있어서 근로의욕을 꺾지 않는다. 또한 보편적 기본소득에 비해 적은 예산이 든다. 성인 4000만 명에게 매달 30만 원을 지급하는 데 144조 원이 필요하다. 그 30만 원으로는 미래를 준비할 수도 없고 대기업 종사자를 뒤쫓을 수도 없다. 근로장려금은 일하는 사람에게 지급되는 돈이고, 지급액이 줄어드는 구간이 있어서 그보다 훨씬 적은 예산이 든다.

지금 근로장려금은 1년에 최대 330만 원까지만 지급한다. 이것도 총 소득 4400만 원 미만인 맞벌이 가구여야 받을 수 있는 돈이다. 이를 총 소득 5000만 원 미만 가구에게 최대 600만 원 씩 지급하면 어떨까. 중소기업에서 중위임금을 받는 사람들이 가장 많은 혜택을 받도록 지급 금액을 설정하면, 큰 개혁 없이 청년들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열어 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현행 근로장려금 예산의 10배, 약 44조 원 정도가 필요하다. 이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청년도약계좌처럼 시대에 맞지 않는 정책을 통폐합하는 것 뿐만 아니라 증세도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너무 재정을 아낀 편이고, 지금처럼 전국민의 소득이 위험할 때는 정부가 재정지출을 현명하게 확대해서 대응해야 한다.

근로장려금 외에도 고민해 볼 수 있는 정책은 많다. 하지만 지금 청년들에게는 당장 체감되는 변화가 절실하다. 큰 개혁을 추진하는 동시에 근로장려금을 점진적으로 확대한다면, 청년들도 큰 변화를 기다릴 기운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3/9 국회의사당 의원회관에서 발표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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