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중학교 2학년 때였나. 수업시간에 조지 오웰의 '카날루냐 찬가'를 읽다가 선생님한테 빼앗겼다. 수업이 끝나고 찾으러 갔다. 혼나지는 않았다. 대신 선생님은 황당해 했다. 교사로 일하면서 만화책이나 성인물을 압수해 본 적은 있어도, 카탈루냐 찬가를 압수해 본 적은 없다고 했다. 고전을 읽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수업 시간에는 수업에 집중하라며, 선생님은 순순히 책을 돌려줬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집에 갈 시간만 기다렸다. 아직 절반을 더 읽어야 했다.
카탈루냐 찬가는 우연히 고른 책이었다. 주말에 교보문고에서 책을 구경하다가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작가의 이름이 보였다. 그 작가가 '1984'를 쓴 조지 오웰이었다. 나는 그 책을 꺼내서 아무 페이지나 펼쳐 봤다. 어떤 느낌인지만 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10페이지를 읽어버렸다. 손에 땀이 나서 책 페이지가 젖는 줄도 몰랐다. 뒤늦게 책이 젖은 것을 발견하고는 이건 사야겠다 싶었다. 그렇게 몇 주 동안 낯선 사람 이름, 지역 이름을 검색해 가며 읽었다.
그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을 요약하면 이렇다. 1930년대 스페인 내전이 한창일 때, 사회주의자와 아나키스트 민병대가 카탈루냐의 중심 도시 바르셀로나를 점령하고 있었다. 사회주의자 오웰은 신문 기사를 쓰기 위해 바르셀로나로 갔다.
그곳에서 오웰은 노동자가 지배하는 도시가 어떤지 체험할 수 있었다. 바르셀로나의 식당 종업원은 손님에게 존댓말을 쓰지 않았다. 유럽 특유의 존칭은 사라졌다. 종업원에게 팁을 주는 것도 금지되었다. 대신 바르셀로나의 노동자들은 서로 똑같은 눈높이에서 동지라고 부르며 편한 말투를 썼다. 사람들은 빵을 배급받기 위해 줄을 서야 했고, 성당은 혁명가들 탓에 무너져 있었지만, 생활비가 낮아서 극도로 빈곤한 사람은 없었다. 오웰은 바르셀로나의 모습이 다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싸워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 곳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정말 민병대에 입대했다.
오웰이 만난 바르셀로나 사람들을 나도 만나보고 싶었다. 나는 혁명가를 동경했다. 어른들이 부당하게 화를 내거나 우리 집이 가난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을 때마다, 나는 혁명가가 붉은 깃발을 들고 낡은 것을 쓸어내는 모습을 상상했다. 누구도 마땅한 이유 없이 벌 받지 않고, 하기 싫은 일을 강요받지 않고, 서로를 진심으로 아껴주는 세상. 그런 외롭지 않고 자유로운 세상을 위해 자신마저 내던지는 혁명가의 모습을, 나는 수업시간이든 자기 전이든 떠올렸다.
그리고 나도 혁명가의 동지가 되고 싶었다. 어딘가에서 스페인 내전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나도 오웰처럼 현장에 뛰어들어서 혁명가들을 돕고 싶었다. 상대가 무서워서 눈을 피하거나 말을 더듬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드는 데에 이 한 몸 바치고 싶었다. 2km만 달려도 죽을 듯이 헐떡이는, 배 나온 책벌레 주제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