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항상 달리기 꼴등이었다. 신체조건이 부족했던 건 아니다. 몸도 가벼웠고 근육량도 또래에 비해 많아서 친구들을 번쩍번쩍 들어 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꼴등을 했던 이유는 집중력과 승부욕이 부족하고 내향적이었기 때문이다. 나와 다르게 운동신경이 좋았던 동생은 언제나 1등이었다. 달리는 모습을 보면 이를 악물고 반드시 1등을 하겠다는 집념이 보였다. 그런 동생이 종종 부러웠는데 1등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짜릿해 보였달까? 그러나 나에게도 달리기의 짜릿함을 느껴볼 기회가 몇 번 있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나는 살짝 어벙하다. 대부분의 상황이 나보다 빠르게 돌아간다. 그때도 그랬다. 달리기의 규칙은 특정 지점까지 달려가서 카드를 뽑고 거기에 써져있는 물건을 찾아서 결승선까지 가져오는 것이었다. 내가 뽑은 카드에는 "흰색 티셔츠 입은 사람"이라고 쓰여있었다. 카드를 읽고는 어지러운 함성 속에서 멍하게 서있었는데 어디선가 내 손을 휙 낚아챘다. 엄마였다! 엄마가 내 손에 쥐어진 카드를 빼앗고 한마디 했다.
"야이 맹구야! 여기 흰색 티 입은 사람이 널렸는데! 엄마도 흰색이잖아! 가자!"
나는 진짜 맹구였다. 엄마의 말을 듣고 그제야 흰색 티를 입은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걸 깨닫고 있는 동안 엄마는 내 손을 잡고 뛰었다. 거의 끌려가다시피 해서 처음으로 1등을 해봤다.
두 번째도 역시나 특별한 달리기였는데, 미션 지점에서 특정 카드를 뽑아야만 지나갈 수 있었다. 나는 여전히 달리기는 못했지만 운은 좋았다. 세 개의 미션 지점을 바로 통과하고 마지막 직선 코스에 진입했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앞에 아무도 없는 것 아닌가! 내가 진짜 1등인 건가? 1등으로 달리는 게 이런 느낌인가?라고 생각하는 순간 너무 짜릿해서 웃음이 나왔다. 도저히 달릴 수가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 뒤따라오는 친구에게 추월당해서 2등도 아니고 3등을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바로 옆 관중석에 있었던 엄마가 "웃지 말고 뛰어!"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단다. 물론 듣지 못했다. 삼촌도 있었다. 내가 1등으로 들어오는 역사적인 장면을 찍으려고 결승선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미 추월당해놓고 실실 웃는 모습만 찍혔다. 사진 속 내 모습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었다. 달리면서 웃는 게 부끄러웠나 보다.
나는 원래부터 달리기라면 질색이었기 때문에 그날 이후로 뛰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러다 서른을 눈앞에 두고 체력을 키우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할 것 같아서 운동으로 달리기를 시작했다. 알고 보니 달리기는 짜릿한 운동이었다. 이제 나는 달리기에 중독되어 웬만한 거리는 뛰어다니는데, 여느 때처럼 달리다가 문득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했다.
"그때도 지금처럼 뛰었으면 1등 할 수 있었을까? 지금처럼 이라면 1등 할 자신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