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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 쓰는 공대생 Jan 31. 2021

<콧수염> 엠마뉘엘 카레르

<콧수염> / 엠마뉘엘 카레르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제 생각을 쓴 글입니다.)


이렇게 여운이 긴 소설은 오랜만이다. 충격적인 결말이었다. 그럼에도 주인공을 이해하고 심지어는 공감할 수 있었다. 마지막 몇 페이지를 여러 번 다시 읽었다. 얼굴을 찡그리고 턱에 힘을 주면서.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


어느 날 면도를 하던 주인공은 계속해서 길러 온 콧수염을 밀어버리면 아내와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재밌는 장난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콧수염을 깨끗이 면도한 주인공. 그는 외출했다 돌아온 아내의 반응을 기대하며 콧수염이 없는 자신의 모습을 그녀에게 보여준다. 그 순간부터 재밌는 장난은 끔찍한 불안과 두려움으로 변하게 된다. 그의 아내, 친구들, 직장 동료까지 모든 지인이 주인공의 사라진 콧수염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데다, 원래 주인공에게 콧수염 같은 건 있지도 않았다고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주인공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주인공에게 콧수염이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 주인공은 점점 헷갈린다. 자신의 기억이 맞는지, 자신이 미쳐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한다. 콧수염의 유무에서 시작한 혼란은 점점 그 범위를 확장해나간다. 주인공이 살아있다고 믿던 아버지가 2년 전 돌아가셨다는 아내의 충격적인 말. 아내와 갔던 해외여행은 자신을 제외한 누구의 기억에도 남아있지 않으며 생생하게 기억나는 아내와 부모님과의 식사를 아내는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주인공이 미친 걸까? 아니면 세상이 잘못된 걸까?


인간은 기억으로 자신을 정의한다.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것들이 곧 자신을 증명하는 것이다. 누군가의 아들이며 누군가의 남편이고 2년 전 결혼식을 올렸고 OO회사의 회사원이고 등등. 자신의 기억을 부정당한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주인공이 알고 있는 자신은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콧수염이 있던 자신이지 몇십 년간 콧수염이 없던 자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콧수염의 유무라는 사소한 기억이 부정당하는 순간 주인공은 자신의 모든 기억을 의심할 수밖에 없고 자신의 기억이 온전하다는 사실을 증명하려면 어떻게든 콧수염의 존재를 증명해내야만 한다. 그렇기에 소설 내내 기억을 부정당한 인간의 자기 자신을 증명하려는 처절한 몸부림이 이어진다. 어떻게든 콧수염이 있었다는 증거를 찾아내려는 주인공의 행동이나 콧수염을 기억하지 못하는 아내에게 거의 분노에 가까운 감정을 표출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나를 대입해보게 된다. 나는 어떨까. 내게 너무나 명확한 기억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 의해 부정당한다면 나는 내가 나라는 것을 믿고 증명할 수 있을까. 내가 나임을 부정당하는 그 과정을 버티고, 흔들리지 않고, 내가 나임을 끊임없이 믿고 주장할 수 있을까.


이 소설은 매우 탁월하게 주인공에 대한 독자의 신뢰를 쥐락펴락한다. 주인공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소설이므로 당연히 주인공의 기억과 이야기를 믿고 따라가던 독자는 어느 순간부터 헷갈리게 된다. 단순한 콧수염의 유무에서 시작된 기억의 부정이 점점 확장되면서 독자는 아내의 말과 주인공의 말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린다. 소설의 끝까지 작가는 독자에게 진실을 알려주지 않는다. 세상이 잘못된 것인지, 주인공이 잘못된 것인지.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인간은 다른 것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존재성을 획득한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무(無) 속에 인간 하나가 던져진다면 그 인간은 어떻게 자신이 존재함을 증명할 것이며 그 존재성은 누가 긍정해줄 것인가? 콧수염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것이 진실인지 영원히 알 수 없다. 주인공은 주인공대로, 세상은 세상대로 자신이 옳다고 믿을 것이며 어느 쪽도 틀렸다고 할 수 없다. 지구에서 볼 때는 달이 움직이고 달에서 볼 때는 지구가 움직이는 것처럼. 존재의 절대성과 상대성에 대한 질문을 자연스럽게 소설의 설정과 서사에 녹여낸 작가의 능력이 감탄스럽다.


주인공은 자기 자신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당하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러나 그의 노력은 모두 허사로 돌아간다. 주인공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두 가지다. 언제든지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할 수 있는 상황을 수용하고 살아가는 것과 자신이 믿고 있는 자신의 존재가 부정당하는 세상을 부정하고 자기 자신으로서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 소설 내내 쌓아 온 주인공의 서사는 결말에서 전율이 흐르도록 강렬하게 산화한다.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갈 정도로 강렬하고 여운이 남는 결말이었다. 콧수염을 기를 생각은 당분간 하지 못할 것 같다.


소설 속 한 문장


긴장해 있던 정신은 이제 모든 게 끝나고 제자리를 찾았다는 확신이 들자, 비로소 평정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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