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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 쓰는 공대생 Jun 08. 2019

박사가 사랑한 수식

'박사가 사랑한 수식' / 오가와 요코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저의 생각을 쓴 글입니다.)



이 책은 요즘 삶이 힘들어서 가슴 따뜻하고 잔잔한 소설이나 영화가 끌린다고 했더니 같은 연구실에 다니는 후배가 추천해줘서 읽게 된 책이다. 이 소설을 추천해 준 그 후배에게 감사한다. 가슴 한편이 따스해지고 마음이 차분해지는 이야기였다.



10년 동안 혼자서 파출부 일을 하며 아들은 키워 온 여성 파출부(이 소설에서는 주인공들의 이름이 하나도 나오지 않으므로 그녀를 A라고 부르도록 하겠다.), 그녀의 어린 아들 루트, 그리고 A의 고용주인 기억이 80분밖에 지속되지 않는 박사(과거 수학을 전공한 교수였던 박사는 30년 전 교통사고로 인해 머리를 다쳐 기억이 80분밖에 지속되지 않는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은 이렇게 세 사람이 타인에서 가족이 되어가는 이야기이다.



박사는 A의 어린 아들이 A가 출근해 있는 동안 혼자 집에 있는다는 것을 알고 아이는 늘 엄마의 곁에서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며 내일부터 당장 어린 아들을 함께 데리고 출근하라고 한다. 박사는 처음 A의 아들을 만나자마자 평평한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정한 목소리로 말한다. "이렇게 먼 곳까지 잘 왔다. 고맙다. 고마워. 너는 루트다. 어떤 숫자든 꺼려하지 않고 자기 안에 보듬는 실로 관대한 기호, 루트야." A는 어쩌면 그때부터 이미 박사와 자신의 어린 아들 루트 사이에 무언지 모를 따뜻한 연대감이 생겼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박사는 괴짜 같은 인물이다. 세상 모든 곳에서 수의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소수를 사랑하며 수학밖에 모르는 특이하지만 순수한 사람이다. 그런 박사가 어린 루트에게는 늘 진짜 할아버지처럼 시시콜콜한 일상을 물어보고 음식을 덜어주고 숙제를 알려준다. 루트는 그런 박사를 진심으로 의지하고 박사는 또한 어린 루트를 무시하지 않고 그의 말을 귀 기울여 들으며 하나의 인격체로 대한다. A도 늘 홀로 키워왔던 루트에게 박사라는 의지할 수 있는 할아버지가 생겨서 기뻐한다. 셋은 평범하게 식탁에 앉아 이야기하며 식사를 하고 함께 야구장을 가고 생일 파티를 한다. 그렇게 평범한 하루를 보내는 그들은 그렇게 가족이 되어 간다. 신기한 것은 박사에게 A와 루트는 80분이 지날 때마다 항상 낯선 사람이라는 것이다. 늘 80분마다 박사와 A, 그리고 루트는 같은 문답을 반복하며 박사는 또다시 루트에게 루트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A와 루트는 그런 문답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을 절대로 티 내지 않는다. 그런 상대에 대한 서로의 배려가 80분마다 새롭게 만나는 그들이 진정한 의미의 가족이 될 수 있게 만들어 준 것이 아닐까.



이 소설을 읽으며 필자는 가족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지금도 많은 집의 식탁 위에는 대화 한마디가 없고 아이들은 부모님과 소통하려고 하지 않으며 아내와 남편은 서로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한 대화와 소통, 이해, 배려의 부재가 가정에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요즘 뉴스를 보면 가정 폭력, 존속 살해 등의 끔찍한 사건을 충분히 쉽게 접할 수 있다.) 가족이란 사전적 의미에서는 피가 이어진 부모와 아이들을 말하겠지만 과연 그 글 한 줄 속에 진정한 가족의 형태가 있을까. 진정한 가족이란 혈연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배려와 사랑, 이해하려는 노력이 만들어주는 것이다. 가족이기에 더 서로를 생각하고 배려하며 소통하려고 노력해야만 한다.(필자도 많이 반성하고 있다. 오늘 어머니한테 전화라도 한 통 드려야겠다.)



길지 않은 소설인데도 지금까지 읽은 소설 중에 가장 감상을 쓰기가 힘들었다. 몇 번을 썼다 지웠는지. 필자의 글 실력에 비해 너무 많은 것을 담고 있다.(그것들을 모두 글로 옮기지 못하는 필자 스스로의 글 실력이 한탄스러울 뿐이다.) 꼭 이 소설을 읽어보시길. 가슴 따뜻한 이야기 속에서 가족의 진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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