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 쓰는 공대생 Aug 26. 2020

<스탠바이, 웬디>

공대생의 영화 리뷰

<스탠바이, 웬디>

(지극히 주관적인 제 생각을 쓴 글입니다.)


오랜만에 글을 쓰게 되었다. 요즘 바쁜 일이 워낙 많이 밀려드는 탓이다. 책은 꾸준히 읽고 있지만 책에 대한 리뷰를 쓰는 것은 단순히 책을 읽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드는 일이기에 잠시 미뤄놓고 있는 중이다.(조만간 그동안 읽은 책들에 대해 한문단 정도의 짧은 리뷰를 정리해 올리려고 생각하고 있다.) 오늘은 책이 아닌 영화에 대한 글을 처음으로 쓰는데 제대로 된 글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꽤나 생각할 거리가 많은 영화인 듯해 부족함을 무릅쓰고 글을 남긴다.


<스탠바이, 웬디>는 자폐 증상을 지니고 있는 웬디가 스타트렉 시나리오 공모전에 글을 제출하기 위해 LA에 있는 파라마운트 픽쳐스까지 홀로 길을 떠나는 영화다. 이런 류의 영화가 늘 그렇듯이 웬디는 갖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결국 파라마운트 픽쳐스에 도달해 훌륭히 미션을 완수한다. 웬디의 시나리오가 공모전에 당선되는지 아닌지는 이 영화를 볼 사람들을 위해 비밀로 하기로 하고 이 영화가 말하고자 했던 것이 무언인가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영화 속 주된 등장인물은 네 명이다. 주인공이자 약한 자폐 증상을 가지고 있는 웬디, 웬디와 같이 자폐증이나 여타 일상생활에 적응하기 힘든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교육하는 특수학교(?)의 선생님인 스코티, 웬디의 언니인 오드리, 그리고 스코티의 아들 샘. 영화의 초반부에서 웬디는 스코티의 교육에도 잘 적응하고 빵가게 직원 역할에도 잘 적응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웬디는 자신을 찾아온 언니 오드리에게 집에 돌아가고 싶다고, 조카 루비를 보고 싶다고 말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는 특수학교의 규칙, 이모인데도 조카를 보지 못하는 처지가 웬디에게는 불만족스러웠던 것이다. 오드리는 아직 웬디에게 특수학교의 교육이 필요하다는 첫 번째 이유, 자신의 아들인 루비가 웬디와 단둘이 있을 때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른다는 두 번째 이유를 들어 거절하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서 죄책감을 느낀다. 웬디는 다음날 이른 아침, 특수학교를 탈출해 파라마운트 픽쳐스로 향한다. 스타트렉 시나리오 공모전에 시나리오를 제출하기 위해서. 공모전에 당선되어 상금을 받으면 오드리가 돈에 대한 걱정 없이 자신을 집으로 데려가 줄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이 영화에서 스타트렉이 나와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샘과 스코티의 대화를 살펴보자. 스코티는 스타트렉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외계인과 우주선이 나오는 정도는 알고 있지만 커크가 누구고 스팍이 누군지, 스타트렉 세계관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 그녀는 웬디의 시나리오에 나오는 단어 하나하나에 대해 샘에게 묻는다. 그런 그녀를 보고 차에 함께 타고 있던 샘은 우린 교통사고 나서 죽어도 할 말 없다는 과격한 농담을 던진다. 스타트렉에 관해서만큼은 일반인인 스코티보다 웬디가 훨씬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처음으로 웬디와 스코티의 관계가 뒤바뀐다. 웬디의 보호자인 스코티지만 스타트렉에 관해서만큼은 웬디의 조언을 들어야만 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정상인과 자폐증 환자 사이의 관계가 스타트렉을 통해 역전된다. 이 관계의 역전이 우리에게 묻는다. 자폐증 환자는 우리가 보호해야만 하는 존재인가?라고.


스타트렉이 꼭 필요한 두 번째 이유는 바로 스팍이다. 스코티가 샘에게 묻는다. 웬디는 왜 이토록 스타트렉에 빠져 400 페이지가 넘는 시나리오를 쓴 건지. 샘은 사람의 감정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외계인과 사람의 혼혈, 스팍에 감정을 이입한 것이 아니겠냐고 답한다. 스팍은 스타트렉의 일등 항해사이자 부함장이다. 타인의 감정 이해가 힘든 그는 극 중에서 주인공으로 활약한다. 자폐증을 가진 웬디가 그런 스팍에게 자신을 이입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영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소통의 이야기로 나아간다. 스코티, 오드리 모두 웬디의 이야기를 이해하거나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웬디는 그저 보호해야만 할 대상일 뿐이다. 웬디는 자신이 집으로 돌아갈 준비가 되었다고, 루비를 다치게 하지 않을 거라고 계속해서 말하지만 스코티도, 오드리도 웬디를 집으로 데려가지 않는다.


그런 웬디가 경계를 풀고 소통하는 대상이 한 명 나오는데 실종 신고된 웬디를 찾은 경찰관이다. 그녀가 스타트렉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경찰관은 웬디에게 클링온어(스타트렉의 외계 종족 클링온이 쓰는 언어)로 말을 건다. 클링온어를 들은 웬디는 경계심을 풀고 경찰관과 소통한다. 일반인들이 쓰는 소통방식(영어)과 전혀 다른 소통방식(클링온어)으로. 바로 이 장면에서 <스탠바이, 웬디>가 자폐증을 가진 사람 혹은 정신적인 문제를 가진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 수 있다. 이 영화에서 웬디는 영어가 아닌 클링온어로 이야기할 때 제대로 된 소통을 한다. 그냥 사용하는 언어가 틀린 것뿐이다. 일반인들이 영어를 쓴다면 웬디는 클링온어를 쓴다. 그뿐이다. 우리나라 사람 모두가 한국어를 쓴다고 해서 우리나라에 온 외국인을 보호해야만 할 존재로 인식하지는 않는다. 물론 의사소통이 불편한 만큼 도움과 우호적인 시선이 필요할 테지만 외국인은 당연히 한 명의 인격체로 대해지며 오직 보호를 위한 대상으로 격하되는 일은 없다. <스탠바이, 웬디>는 자폐증, 정신장애를 가진 이들에게도 다른 언어를 쓰는 외국인에 대한 시선과 같은 시선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들이 쓰는 언어가 일반적으로 쓰는 언어와 다를 뿐이라고, 그저 소통방식이 같지 않을 뿐이라고. 스팍은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함에도 일등 항해사이자 부함장이 되었다. 특별한 소통방식을 사용하는 자폐증 혹은 정신장애를 가진 이들 속에도 우리의 잘못된 시선으로 인해 개화하지 못한 스팍이 잠들어 있을지 모른다.


웬디는 파라마운트 픽쳐스로 가는 여정 동안 많은 일을 겪는다. 위험을 겪기도 하고 도움을 받기도 한다. 생각하기도 힘든 기발함으로 병원을 탈출하고 몰래 버스의 짐칸에 들어가 LA에 도착하는 대담함도 보인다.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는 오드리와 스코티의 걱정이 무색하게 웬디는 무사히 LA에 도착했다. 웬디는 자신의 두 발로 LA에 도착함으로써 스스로 세상을 걸을 수 있는 사람임을 증명한 것이다. 보호 대상이 아니라 한 명의 사람으로,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웬디에게 오드리는 루비를 넘긴다. 루비가 웬디의 어깨에, 웬디가 오드리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영화는 끝난다.


참 괜찮은 결말이다. 오드리는 웬디에게 루비를 넘겨주며 웬디에 대한 신뢰를 함께 건넨다. 오드리와 웬디 밑에서 무럭무럭 자란 루비는 또 다른 웬디에게 또다시 신뢰를 건넬 것이다. 자신을 웬디에게 넘겨준 오드리처럼.


작가의 이전글 어느 작가의 오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