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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겁꾼 Mar 12. 2023

위기의 부부

결혼 6년 차에 부부 상담을 받았다


“요즘 우리 부부 상담받아 “


기혼자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시작하면 하나같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질문을 쏟아낸다. 그리고는 본인이 가진 결혼 생활의 고충부터 시작해 나도 부부 상담이 필요하다는 걸 증명하듯 각종사례를 구구절절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래, 다들 몰랐겠지. 예쁜 웨딩드레스를 고르고 좋은 곳으로 신혼여행을 떠났을 때만 해도 결혼이 이런 건지 알 수 없었지. 게다가 애를 낳았더니 결혼 생활이라는 게 이렇게나 복잡해질 줄은 상상도 못 했지.




먼저 부부 상담을 제안해 온 건 남편이었다. 아이가 태어난 뒤로 부쩍 싸움이 잦아지긴 했다. 그래도 싸움 자체를 부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다른 생활환경 속에서 몇십 년을 자라왔으니 우리는 다른 사람이고, 싸움이 그 다름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과정이라면 당연히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싸움이 끝나도 기분이 채 나아지지 않았고, 싸움 끝에도 마땅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느낌이었다.


이상하게도 상대방이 부부상담 이야기를 먼저 꺼내자 괜한 반발심이 들었다. '우리가 부부상담이 필요한가? 그런 건 이혼할 때나 해야 하는 거 아냐? 우리가 그 정도로 심각하다고?'


뭐, 사실 싸울 때마다 실태래처럼 꼬여가는 관계를 보면서 이제 더 이상 둘만의 힘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부부상담이라는 단어는 마치 오래전 티비에서만 보던 4주 후에 뵙겠습니다 같은 이미지가 그려져서 어쩐지 썩 내키지 않았다.


마치 이런 느낌적인 느낌. | 출처: KBS Drama ‘사랑과 전쟁 시즌 1’


인터넷 창에 부부상담이라는 단어를 검색해 보니 무수히 많은 정보들이 쏟아졌다. 사설 상담소는 비용이 꽤 비싸다는 이야기를 듣고 문의를 주저하게 됐는데, 때 마침 우리가 거주하고 있는 시 자체 '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 가족 상담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전화를 걸어 상담을 예약하고 싶다고 했더니 대기자가 많아서 최소 두 달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두 달이라니! 다들 해결책 없는 터널 속에서 구원의 손길을 요청하셨군요! 만난 적 없는 상담 대기자들과의 동질감은 잠시, 그 무렵 남편이 육아휴직을 시작했던 터라 이렇게 싸우면서 두 달을 붙어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깜깜해졌다.


그렇게 한 달쯤 지났을 때, 예상보다 빠르게 상담이 가능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이를 친정에 맡기고 기다리던 첫 상담에 나갔다. 상담실 의자에 앉자마자 종이 몇 장을 받게 됐는데, 그 안에 서로가 생각하는 우리의 위기나 갈등 요소, 상담 후 기대하는 변화 등을 기록했다. 그때 당시만 해도 나는 상담에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고 표시했다. 상담이 뭘 얼마나 바꾸겠어하는 회의적인 마음과, 너무 기대하지 말자는 방어적인 마음이 둘 다 들었던 것 같다.


상담 선생님과 함께 그동안 우리 사이에 일어났던 크고 작은 갈등들에 대해 서로 어떤 입장이었고 어떤 생각이었는지를 이야기 나눴다. 상담 중에는 부부끼리는 대화를 할 수 없는 게 유일한 규칙이었는데, 그러니까 각자가 생각하고 느끼는 방식을 상담선생님과 이야기 나누면 나머지 한 명은 그 대화를 경청하게 되는 셈이다. 그 덕에 그동안 나누지 못한 서로의 입장 차이를 조금 더 알 수 있었다.


대부분의 부부싸움이 그러하듯 거창하고 대단한 일로 싸움을 시작하는 건 아니었다. 우리 부부의 경우, 뭔가 불만이나 서운함이 생겼을 때 나는 그것을 바로 말로 푸는 편이고 남편은 말을 안 하고 함구하는 스타일이다. 나는 입을 닫아버린 남편에 화를 내고, 남편은 일방적으로 화를 내는 나에게 화가 나는 패턴이다. 말을 아끼고 조심하는 남편의 입장이 고맙기도 했지만, 상황이 매번 똑같이 반복되니까 어떤 날은 차라리 화라도 내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싸움을 시작하려고 건넨 말이 아니었는데 상대방은 곡해하고, 안 그래도 육아에 지쳐 피곤하고 예민해진 탓에 날 선 대화가 오고 가며 싸움이 되는 일들이 반복됐다.


첫 상담에서 대략 이러한 얘기들을 나눴는데 결국 남편도 그간 말하지 못한 힘듦을 쌓아뒀던 건지 첫 상담부터 눈물을 보였다. 힘들다고 우는 남편 모습에 그래, 괜찮을 리가 없지 싶은 생각이 드는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내 편인데 너무 모질게 대했나 싶은 안쓰러운 생각도 들었다. 묵혀왔던 이야기를 터놓고, 서로를 안쓰러워하고 미안해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는 감정을 다시금 느낀 그 자체로 상담의 목적 절반은 달성했는지도 모른다.




두 번째 상담에서는 감정 카드로 서로의 현재 감정 상태를 체크했다. 이 무렵 아이가 말문이 막 터지던 시기라 나는 아이에게서 오는 사랑스러움 감정을 가장 상위에 꼽았고, 첫 상담 이후 남편과 한층 나아진 관계에 대한 안정감, 그리고 육아로 인한 피곤함, 심심함 등을 하위 감정으로 꼽았다. 남편의 카드도 살펴보니 비슷하게도 사랑스러움, 무기력함, 피곤함 등의 감정을 꼽았다.


“사랑스러움의 대상은 서로가 아닌가요?”라는 상담 선생님의 질문이 허를 찌르긴 했지만, 어쨌든 우리는 아이의 사랑스러운 순간을 같이 공유하며, 육아에 절어 피곤한 날들이긴 하지만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안정감 있는 일상을 보내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다음 상담이 진행되기 전에 ‘문장 완성 검사’를 미리 해오라는 과제를 받았다. 문장의 앞머리를 읽고 뒤에 빈칸을 채워 넣으면 되는 형식이었다. 영역별로 질문이 꽤 많았는데, 생각나는 것들을 적다 보니 꽤 깊은 내면의 이야기를 하게 되겠구나 하는 예감이 들었다.  


출처: 인싸이트 'SCT 성인 문장완성검사'


이 결과를 바탕으로 개인 상담이 진행 됐다. 상담 선생님께서 부부가 된다는 건 현재의 둘과 과거의 둘이 함께 만나는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각자 어린 시절 어떻게 자라왔고, 어떤 힘든 일들이 있었고, 그런 일들이 지금에 어떤 영향을 끼쳐서 이런 성격을 만들고, 행동하게 된 것인지를 이야기하다 보니 몰랐던 퍼즐을 맞춰가는 기분이었다. 서로를 좀 더 알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됐고, 외로웠던 어린 시절의 나를 따뜻하게 품어준 남편에게 고마웠다.




개인 상담 이후에는 부부가 느끼는 사랑의 언어를 이야기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사랑의 언어는 게리 체프만의 ‘5가지 사랑의 언어’라는 책에서 나온 개념인데, 사람마다 사랑받는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수단이 다르다고 한다. 이를테면 누군가는 선물을 받으면 사랑받는다고 느끼고, 또 누군가는 말로, 스킨십 등으로 사랑이 채워진다는 것이다.


상담 선생님은 우리 부부의 경우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 큰데, 그게 서로에게 제대로 전달이 안 되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는 의견을 주셨다. 몇 가지 테스트를 해본 결과 나는 칭찬, 격려 등 인정의 말로 사랑을 느끼는 편이고, 남편은 같이 보내는 시간으로 사랑을 느낀다고 했다. 나는 이만큼 사랑한다고 표현했는데 그게 상대한테 제대로 전달이 안되면 결국 사랑의 표현도 무효해지는 것이다. 사랑을 표현하려면 먼저 상대의 언어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사랑을 위해 노력한다는 건 결국 그 상대의 언어를 사용하는 노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몇 번의 상담을 거치면서 우리는 싸우는 빈도가 줄어갔다. 어떤 날은 상담 가기 전 아침부터 말다툼을 했었는데, 그 다툼을 주제로 상담 선생님과 대화해 보고 해결해 볼 수 있던 것도 유용한 경험이었다.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대부분 나눴고, 상담 선생님이 보시기에도 당장은(?) 큰 문제가 없을 것 같다고 하여 우리는 8회 차로 상담을 종료했다. (10회로 상담이 모자란 부부들도 많다고 하셨는데, 짐작하기에 우리는 비교적 양호한 상태인 것 같았다.)


마지막 상담 이후 몇 개월이 흐른 지금, 우리는 여전히 부부싸움을 한다. 당연하게도 상담 8번으로 부부싸움이 종결될 리 없다. 심지어 상담 때 끄덕이며 공감했던 이야기들도 시간이 지나니 기억조차 가물가물해졌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늘 하고있는 이야기지만, 부부 갈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부부 상담을 한 번쯤은 꼭 추천하고 싶다. 둘 사이에 나누지 못했던 대화를 입 밖으로 꺼내고 나도 힘든데 너도 힘들구나 하며 상대의 입장을 추측해 보는 일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과정이다. 그리고 상대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배려를 해보자는 마음을 먹게 되는 것만으로도 부부 사이에 유의미한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다.




얼마 전 유튜브를 보다가 부모님과 배우자 중 물에 빠졌을 때 누굴 구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굳이 정답을 찾는다면 ‘배우자'라고 대답하는 게 맞다는 영상을 봤다. 왜냐하면 부모는 내가 선택하지 않았지만 배우자는 내가 선택한 사람이고, 어른이란 나의 선택에 책임을 지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제 막 6년, 서로를 선택한 책임의 대가(?)로 얻은 달고도 쓴 결혼생활은 앞으로 우리를 더욱 성숙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왜 결혼을 해야 어른이 된다고들 이야기하는지 이제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잘 지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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