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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겁꾼 May 02. 2022

두 달 만에 어린이집 퇴소한 사건

아이의 첫 사회생활은 짧고 굵게 끝나버렸다


그간 브런치에 소홀했던 원인은 단연코 육아다. 육아에 파묻혀 살다 보니 내 개인 생활은 진작에 사라졌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야 뭐라도 하겠다 싶어서 한동안은 모든 걸 내려놓고 어린이집 가는 날만 기다리며 육아 생활을 버텼다. 드디어 기다리던 3월이 찾아왔고, 아직 새것이라 빳빳하고 어색한 어린이집 가방에 기저귀 몇 장과 아이가 마실 물을 담아 첫 등원을 시작했다.


어린이집 입소 전 오리엔테이션 자리에서 나는 원장 선생님과 담임선생님께 아이가 기질이 좀 예민해서 하마터면 어린이집에서 쫓겨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고 화두를 꺼낸 적이 있었다. 오랜 시간 다양한 아이들을 봐오셨고 능숙한 경험과 전문적인 지식이 있으신 분들이니 알아서 케어해주시겠지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내 아이는 내가 봐도 좀 유별나서 언질을 해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의 우려대로 아이는 결국 두 달 만에 어린이집을 퇴소하고 말았다. 지극히 엄마 입장에서 판단하기에 두 달간의 어린이집 적응 과정 속에서 개선의 여지가 크게 보이지 않았고, 아이의 스트레스와 불안도 나날이 커지는 게 느껴졌으며, 어린이집에서는 생각보다 적응을 못하는 아이를 두고 난처해하는 기색을 보여왔기 때문에 퇴소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어린이집 등원 첫날부터 처음 3일간은 엄마와 함께 등원을 했다. 선생님들은 유난히도 엄마 껌딱지인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시고는 아이가 아마 많이 울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나도 아이의 어린이집 적응이 어려울 것이라는 강한 예감을 지울 수 없었는데, 그럴 때마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말들은 ‘아이가 어린이집과 집에서의 태도가 다르다’, ‘엄마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잘 적응할 수도 있다’ 같은 잠재적 가능성의 이야기들이었다.


엄마랑은 그럭저럭 잘 놀다옴


2주 차, 아이는 엄마와 처음 분리를 시작했고, 어린이집에 머문 한 시간을 내내 울었다고 했다. 아이를 데리러 가니 목이 쉬고 머리가 땀으로 젖어 흐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통곡과 오열의 생활이 몇 주 반복되면서 어린이집에서는 아이가 힘들어 보인다고 적응 시간을 30분으로 단축시켜보자 하셨다. 며칠을 30분간 등원하고는 마침내 우는 시간이 절반쯤 줄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는 어린이집의 영향인지 집에서도 제법 많이 보챘다. 강아지 애착 인형을 데리고 어린이집에 다녔는데, 밤에 잠을 자다 깨서 멍멍 거리며 울곤 했다. 어느 날은 아이가 울다가 인형에 토를 하는 바람에 고양이 인형으로 대체해서 어린이집에 보냈더니, 그날 밤에는 자다 깨서 야옹야옹하며 울었다. 아이는 자는 동안마저도 어린이집에 시달리는 듯했다.


나 역시도 어린이집에 보내기 전보다 육아의 난이도가 높아져서 지치고 피곤한 날들이 이어졌다. 정신없이 3월을 보냈고, 아이에게 적응할 시간을 더 줘보자고 하시는 원장 선생님 말씀에 따라 4월 한 달간 아이를 더 지켜보기로 했다. 언젠간 엄마의 품을 떠나야 하고, 어린이집이던 유치원이던 기관에 다니면 적응 과정은 어차피 거쳐야 하는 거니까 시작한 이상 할 수 있을 때까지 해보고 싶었다. 물론 아이의 힘든 모습을 보는 건 고역이었지만, 어린이집에 적응해서 아이도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나도 내 시간을 찾아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4월에는 부득이하게 며칠간 어린이집을 결석하게 됐는데, 며칠 만에 등원한 어느 날 신기하게도 아이는 어린이집 문이 열리자마자 담임선생님한테 팔을 벌리며 뛰어들어갔다. 하원하면서도 울지 않고, 한 달 동안 거부하던 간식(죽)도 먹었단다. 키즈노트에는 아이의 사진들도 많아졌고, 다른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있기도 해서 큰 산은 넘었다는 생각에 안도했다.



어린이집에서는 적응 시간을 1시간 반 정도로 늘려볼 것을 권했고, 만약 가능하면 점심식사까지 시도해보자고 하셨다. 설마 하는 기대를 품어봤는데, 아이는 등원한 지 한 시간이 지나고부터 울었고, 우느라 밥도 제대로 못 먹는다며 데리러 오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연락을 받았다. 적응 시간은 다시 1시간으로 줄어들었다.


중순쯤 되면 어린이집 보육료를 결제하라는 연락이 온다. 적응기간이라고는 하지만 한 시간씩 어린이집을 겨우 다니면서 국가에서 지원받는 양육수당의 일부가 어린이집으로 가고, 활동비를 별도로 또 지불하고 있는데, 하루에 한 시간씩 총 5일, 한 달이면 20시간, 그러니까 아이가 울고 불고 하는 20시간 동안에 약 20만 원의 돈을 지불하는 것이 과연 생산적인가, 합리적인가를 자꾸 생각하게 됐다.


어린이집을 다님으로써 얻는 장단점과 가정보육으로 인해 얻는 장단점을 나열해서 비교해볼까도 했지만 그것 역시 의미가 없었다. 장단점의 개수는 세어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각각의 장단점이 가진 질적인 측면의 양적 비교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같이 입소한 다른 친구들은 이미 적응을 마치고 낮잠까지 자고 오는데, 등원한 지 30분 만에 아이를 데리러 가는 날들이 지속되다 보니 별의별 생각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생각이 많으면 뭐하나, 나는 또 어김없이 내일 10시가 되면 우는 아이를 데리고 어린이집에 가야 하고, 우는 아이를 데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 할 뿐이었다.




퇴소를 얼마 앞두고 일련의 사건들이 있었다. 어느 날은 하원 후 아이 이마에 피가 고여있는 상처가 보였다. 아이가 혹시 넘어진 건가 궁금해서 어린이집 담임선생님께 여쭤봤는데 특별한 일은 없었다고, 선생님도 처음 보시는 상처라며 더 신경 쓰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다음 날은 같은 반 친구가 손으로 할퀴어 눈가에 상처가 생겼다. 부위도 부위고, 상처가 꽤 깊었어서 내심 속상했지만, 아이들끼리 놀다 보면 생길 수 있는 일이라 그러려니 했다. 또 다치지 않게만 지켜봐 주십사 부탁드렸다.


연달아 생긴 상처들 또르르


그리고 그다음 날은 촉감놀이를 하는 날이었는데, 식재료에 민감한 아이는 평소 촉감놀이를 즐겨하는 편이 아니라 원에서 하는 촉감놀이에도 역시나 참여하지 않고 보챘다고 했다. 다른 아이들이 놀이를 하는 동안 담임선생님께서는 핸드폰으로 아이가 좋아하는 트럭 사진을 보여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린이집에 가서까지 핸드폰을 보고 와야만 하는 건지, 핸드폰 말고 다른 놀잇감으로 놀 수는 없었던 건지 아쉬운 마음과 동시에 알 수 없는 짜증이 났다.




얼마간은 등원 길이 꽤 순탄했다. 약간 칭얼거리긴 했어도 어린이집 문이 열리면 선생님께 잘 안겨 들어갔고, 내가 손인사를 건네면 아이도 나에게 인사를 하며 헤어지곤 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아이는 초심으로 돌아와 다시 등원 길부터 울기 시작했다. 어린이집 가는 방향으로 유모차를 돌리는 순간 바로 울음을 터트렸고, 조금만 놀고 있으면 엄마가 금방 데리러 가겠다고 거듭 약속을 해도 소용없었다.


우는 와중에도 선생님들에게 곧잘 안기던 아이였는데, 어린이집 문 앞에서 내 옷을 붙잡고 소리를 지르며 울고, 선생님에게도 안기려 하지 않았다. 한 시간 뒤 하원을 하러 데리러 갔을 때, 담임선생님은 아이가 계속 울었다며, 좀처럼 적응이 잘 안 된다고 속상해하셨다.


선생님도 두 달간 이어지고 있는 이 난관에 지친 기색이 역력해 보이셨다. 사실 나도 매일 반복되는 이 과정이 조금 힘들었지만, 내심 어린이집에서 할 수 있다고, 같이 해보자고 이끌어주시길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는 울고, 선생님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시고, 나는 한숨을 속으로 삭혔다. 우리 모두가 이렇게 힘든 거라면 그냥 그만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퇴소 의사를 밝히고 마지막으로 등원하던 날, 마지막인지 알리 없는 아이는 여전히 등원 길부터 울었다. 그날은 엄마와 함께 어린이집에 들어가 선생님, 친구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담임선생님은 곧 아이 생일이라 아이가 좋아하는 트럭 장난감을 사뒀었는데 이렇게 미리 전해주게 됐다며 눈물을 보이셨다.


선생님은 아이에게 그동안 힘든 시간을 보내게 한 것 같다며 미안해하셨고, 나는 엄마와 떨어져 힘들었을 아이에게 그리고 죄책감에 울고 계시는 선생님께 미안해해야 했다.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우리는 미안하다는 인사를 나누며 무거운 작별을 했다. 그렇게 아이의 첫 사회생활은 짧게 끝나버렸다.




한창 엄마가 필요했던 아이에게 괜한 불안을 심어준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했다. 사실은 그것보다 아쉬운 마음이 훨씬 컸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 두고 하고 싶었던 일들이 많았다. 여유롭게 밥도 먹고 커피도 마셔보고 싶었다. 다시 일도 시작해보고, 땀 흘리며 운동도 하면서 아무에게 방해받지 않는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 기회들이 사라졌다는 아쉬움은 어떤 것들로도 쉽사리 메워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복합적인 마음 사이로 나타난 이상한 감정 중 하나는, ‘거봐, 우리 애 키우기 힘든 스타일 맞잖아’하고 타인에게 입증받았다는 안도감이었다. 모든 육아가 힘들다는 건 의심의 여지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육아 생활에 멘탈이 금방 지쳐버리는 내 모습을 마주하면서 ‘나는 역치가 낮은 사람’이라고 정의하며 자책하기도, 현실을 수긍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난 두 달간의 어린이집 생활을 통해 내 아이는 전문가들이 혀를 내두를 만큼(진짜 내두르시지는 않았지만…) 난이도가 있는 아이라는 걸 객관적으로 인정받은 게 어쩐지 후련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당장의 육아 현실이 달라지는 건 아니지만, 내가 유난스러운 게 아니라 내 아이가 유난스러운 게 맞다고, 나의 육아가 힘든 이유를 머리로 납득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 나에게는 충분히 유의미한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두 돌이 지난 아이를 데리고 가정보육을 다시 시작한다. 어린이집을 보내기 전, 힘들고 피곤해서 누워만 있던 나의 육아가 아이에게 얼마나 유익할지 모르겠다고 줄곧 의심해왔었다. 막상 어린이집을 보내보니 아이는 어린이집보다도 그런 엄마의 품이 훨씬 더 필요했었나 보다.


언제 다시 어린이집에 갈 수 있을지, 가더라도 또다시 실패를 하는 건 아닌지 벌써부터 괜한 걱정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아이는 더 이상 아침마다 엄마와 이별하지 않아도 되고 띵동, 엄마, 가자 등 어린이집에서 엄마가 오길 기다리며 되뇌던 단어들로 잠꼬대하며 울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나의 젊은 시간들이 빠르게 지나가는 게 아쉬운 만큼 너의 가장 어리고 귀여운 날들도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가고 말겠지. 나중에 돌이켜봤을 때 그때 어린이집에 안 보내길 잘했다고, 엄마는 정말 힘들었지만 그래도 하루 종일 너와 살을 맞대고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즐거웠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날까지 있는 힘을 다해봐야겠다. (엄마는 이미 힘이 많이 없지만..)


남들 다 가는 어린이집도 우리한테는 어려운 일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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