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세시 반에 만나는 사람들

내일 또 만날 느슨한 유대의 힘

by 즐겁꾼


이 동네로 이사 온 지 1년이 훌쩍 흘렀다. 젊은 층이 적은 탓인지 동네는 이상할 정도로 한적하고 조용하다. 애보다 개가 더 많다고 우스갯소리로 얘기하곤 하는데 진짜 그렇다. 지난해 아이는 집 근처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에 입학했다. 유치원에 처음 입학했을 때, 반 친구들은 총 8명이었다. 동네에 애들이 없어서 그런가 했더니 옆에 있는 사립 유치원은 한 반에 16명이란다. 그것도 반이 여러 개라는데 그럼 거기는 도대체 몇 명이 다니고 있는 거냐며, 이 동네 친구들은 죄다 사립유치원으로 가버린 거냐며 못내 아쉬워했었다.


아이들의 등하원 시간이 제각기 다르고, 하원하고도 다들 집에 가기 바쁜지 이상하게도 놀이터에서 노는 친구들을 찾아보기 어려웠던 지난해는 날씨가 좋은 날은 아이와 둘이 놀다 들어오는 날들이 다반사였다. 시간이 흘러 자연스럽게 유치원 같은 반 엄마들의 얼굴을 하나 둘 익혔지만, 대부분 마주치면 어색한 웃음으로 인사하는 게 전부였고, 그나마 아이가 친하게 노는 친구 엄마랑 간간이 대화를 주고받으며, 연락처를 교환하기도 했으나 이상하게 좀처럼 가까워지기가 어려웠다. 지금보다 더 어렸던 영유아기 시절에는 마음 맞는 맘친구를 그리도 원했었는데, 더 이상 육아가 고독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은 그때만치 맘친구를 찾아 헤매지는 않지만, 솔플 육아는 어쩌면 나의 숙명이라고 여겼다.




그러다 올해 들어 아이의 유치원이 정해진 시간에 일괄 하원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1차 하원 시간인 3시 반이 되면 유치원 입구에서 아이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온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유치원 앞 놀이터로 돌진했고, 비가 오지 않는 이상 어쩔 수 없이 혹은 어쩌다 보니 매일 놀이터를 떠돌았다. 그렇게 바깥놀이가 반복된 지 한 두 달쯤 흐르자 3시 반에 하원하는 아이들과 엄마들의 그룹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어느 날 한 명이 간식을 뿌리는 날이면 다음날은 내가 간식을 뿌렸고, 또 다음날이 되면 다른 엄마가 간식을 뿌려 매일 간식으로 달콤한 결속력을 다져갔다.



그 생활이 몇 개월쯤 반복되니 유치원 끝나고 친구들과 간식을 나눠먹고 노는 시간이 아이들에게는 당연한 일과가 된 모양이다. 하원하고 미술학원에 다니던 친구는 놀이터 라이프를 위해 다니던 학원마저 끊었단다. 아이들은 저만치서 자기들의 놀이를 하면 엄마들은 의자에 자리 잡고 앉아서 수다를 떤다. 유치원 이야기, 육아가 이러쿵저러쿵, 요즘은 이런 게 고민이라고 이야기하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공감의 목소리, 그러다 보면 가족 이야기나 개인적인 고민들까지 이야기보따리는 나날이 확장된다. 유치원 같은 반에는 한국어가 서툰 필리핀 엄마가 있는데, 그녀와 매일 짧게나마 영어로 대화를 나누면서(대화라고 해봐야 거의 영단어의 나열) 퇴화되어 버린 영어 능력에 충격받고는 영어 공부를 다시 해야겠다는 자극도 받고 있다.


육아는 일상 속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하는 커다란 뿌리 같아서, 육아에서 느끼는 안정감과 편안함은 곧 내 삶이 잔잔하고 단단하다는 걸 뜻했기 때문에, 매일 같은 시간을 함께하며 반복되는 일상은 생각보다 나에게 큰 안정감을 줬다. 오늘은 유치원 끝나고 뭐 하고 놀지 하며 터덜터덜 하원길을 가던 지난해와 달리, 얼른 아이를 데리러 가야겠다는 마음과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어른들에게 말 걸기 좋아하는 아이가 뜬금없는 말들로 엄마들에게 말을 걸면 같은 시선으로 대화해 주는 상냥함, 머리 자를 때 됐네, 오늘 학습지 하는 날이네 하며 일상을 기억해 주는 마음, 더우니까 같이 마시고 놀자며 한 보따리 들고 온 요구르트, 같은 유치원이라는 단순한 소속감 이상의 마음에 고마움을 느끼는 순간들이 늘어났다. 이름과 연락처도 모른 채 존댓말로 서로를 배려하며 대화하는 대단히 가까운 사이는 아니지만, 유치원이라는 공통 주제 하나로 누구보다 연대되어 있는 이 관계가 편안하다. 약간 비주류(?) 같은 병설유치원을 선택한 계기들은 저마다 다르지만, 적어도 육아에 대한 결은 이들과 어쩌면 비슷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자연스러운 유대감이 흐른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보다 나의 일상을 더 잘 알고 있고, 오래된 친구보다 더 깊은 내적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게 신기했다. 도대체 자식은 무엇이고, 육아는 무엇이길래 나의 생각과 관념을 이리도 바꿔버리는 걸까. 직장을 그만둔 뒤로는 누군가와 내일 또 만나자는 인사를 나눠본 적 없었던 것 같은데, 놀이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일 만나자는 인사를 나누는 이 느슨한 유대는 내 삶을 은은하게 물들이다 못해 풍덩 빠트린 것만 같다. 누군가 이사를 가거나,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뿔뿔이 찢어져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사이가 될지 모르는 유한한 관계일들, 지금에 진심을 다하고 그것이 나를 편안하게 만들어준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여름에 접어들자 하원 후 같은 반 친구들 뿐만 아니라 동생반 친구들도, 형님반 누나와 형들도 종종 같이 어울리며 모임이 나날이 커져가고 있고, 챙겨 나가는 간식의 사이즈도 점점 커지고 있다. 북적북적한 놀이터와 그 안에 가득 찬 웃음소리들은 그저 싱그럽고 사랑스럽다. 이제 한동안은 무더위로 아이들의 바깥 놀이가 잠잠해지겠지만, 선선한 가을이 찾아오면 또다시 바글바글해질 놀이터가 그리고 한층 더 소란스러워질 엄마들의 대화가 더욱더 기대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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