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님, 이러다 전셋집 인테리어 되겠어요
인테리어 업체 미팅을 한 세 군데 정도 잡았다. 웬만하면 그중에서 결정할 셈이었다. 견적은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좋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명절이 껴있는 탓에 이사까지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고, 인테리어가 덜 끝나서 이사 당일까지도 작업을 했다던 시누이의 인테리어 후기를 듣고 나니 최대한 기간 내에 마무리 짓는 것도 중요하겠다 싶었다.
나에게 인테리어라고 한다면 게임 심즈에서 집 꾸미기 정도의 지식과 관심 정도라 미팅에 가서 아무것도 모르는 멍청한 표정으로 끄덕끄덕 할 수는 없으니 급하게 벼락치기로 공부를 했다. 최소한 사람들이 많이 까는 벽지나 장판이라도 알아낼 요량으로 공부를 시작했는데, 남의 집 인테리어들을 보다 보니 ‘그래 나 이런 거 좋아했었지 ‘하며 내 취향을 다시금 정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PPT에 내가 원하는 스타일의 집 사진들을 넣은 자료를 준비해 이야깃거리를 만들기로 했다.
첫 번째 업체는 부동산에서 소개해준 업체였는데, 사장님은 일단 우리 단지 내에서 최근에 인테리어를 끝낸 실제 집부터 보여주셨다. 과연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하필 또 그 집은 내가 추구하던 화이트와 우드톤의 집이었고,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인테리어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집을 흔쾌히 보여주신 주인분은 갑자기 인테리어 사장님한테 홍삼 음료 박스를 선물하면서 너무 감사하다며 인사를 나누는 광경이 연출됐는데, 순간 ’이거 트루먼쇼야 뭐야?‘ 하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이 업체의 퀄리티는 의심할 일은 없게 됐다.
그리고 그날 밤 업체로부터 7천만 원의 가견적을 받았다. 실제 비용은 여기서 더 늘어날 거니까, 견적을 좀 줄이고 싶은데 어디서 줄일 수 있을지를 문의했다. 그간의 업적을 대표하듯 몽클레어 패딩을 멋지게 입은 사장님은 영 못마땅하다는 느낌으로 다시 견적을 봐보겠다고 하고는 결국 새로운 견적을 보내주지 않았다. 업체를 소개해준 부동산 중개인은 인테리어 상담부터 우리 옆에 찰거머리처럼 붙어서 무조건 여기로 하라고 설득하기 바빴다.
“5천만 원이면 충분하지“ 했던 그녀에게 우리가 견적을 7천에 받았다고 하자 “그래요? 가격이 더 올랐나? 라떼는 아니었는데~” 하고 살짝 발뺌함과 동시에 그래도 여기가 퀄리티가 좋아서 믿고 추천할만하다며 열변을 토했다. 우리를 구워삶으면 그녀에게 달콤한 커미션이 떨어진다는 건 나중에서야 알게 됐는데, 그런 부분에서 묘하게 성격이 뒤틀린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절대 이 업체랑은 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견적을 다시 보내주지 않었던 이 업체라면 퀄리티 좋은 인테리어는 나올지언정 우리가 살고 싶은 좋은 집을 만들어주지는 못할 것 같았다.
두 번째 업체는 집 가까이에 있던 인테리어 업체였고 집 보수와 인테리어를 같이 겸하는 곳 같았다. 세련과 거리가 먼 낡은 간판을 보고 큰 기대 없이 들어갔는데, 내가 만들어간 자료를 제일 꼼꼼히 봐줬고, 인테리어에 돈 많이 쓰지 말아라, 평생 살 집도 아니고 팔 때 그 돈 다 못 받는다, 차라리 그 돈 아껴서 아이 적금을 들어주라는 과하게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해줬다. 게다가 아이가 있는 집은 컬러가 많아서 아무리 예쁜 인테리어라도 실생활에 적용하기 어려울 수 있으니 다양한 색깔을 품어주는 올화이트 인테리어로 가고, 중간중간 포인트만 우드로 넣어주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상담 시간만 한 시간 반쯤이었는데, 우리가 원했던 현실적인 인테리어의 방향이었기 때문에 이미 마음은 이곳으로 기울어가고 있었다.
두 번째 업체와 미팅을 활활 태우고 만난 세 번째 업체에는 사실 큰 기대감이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도착하자마자 담배냄새를 진하게 풍기던 사장님은 우리 단지의 인테리어 경험이 별로 없다는 듯 도면을 꺼내서 이것저것 살펴보시며 기존에 있던 견적에 글자만 몇 개 바꾸듯 굉장히 빠르게 상담이 끝났는데, 사장님은 큰돈이 되는 현장이 아니면 잘 맡지 않는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그렇게 받은 견적은 결코 저렴하지도 않았거니와 가격 대비 퀄리티가 좋을지 조차도 의심스러워서 고르지 않았다.
어차피 큰돈 쓰는 거 퀄리티라도 보장되면 나중에 후회는 없을까 봐 첫 번째 업체와, 두 번째 업체 중 고민했다. 그러다가 자신들을 선택 안 해도 되니 현장에서 한번 더 미팅을 했으면 한다는 두 번째 업체를 다시 만났다. 다행히 공실 상태였던 집에 직접 들어가 각 공간을 어떻게 바꿔갈지 얘기했고, 별 거 아닌데 따뜻한 커피를 사 오셨던 그리고 우리가 이사 전 살던 집 사진들을 참고로 이야기 나누던 사사로움에 결국 마음을 굳혔고, 원하고 원하지 않는 것에 대해 편하게 얘기 나눌 수 있겠다 싶어 두 번째 업체와 계약을 맺었다.
인테리어는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즐거워지는 고급 취미활동이 맞다. 우리 집은 철거할 부분도 많고, 베란다를 확장하기로 해서 대대적인 단열 공사도 해야 하고, 샷시도 싹 다 바꾸는 올수리 인테리어를 하다 보니 기본 공사비가 높게 잡혀 있는 상태에서 벽지는 어떤 종류로 하고, 바닥은 장판으로 할 것인지 마루로 할 것인지, 하다못해 스위치 커버를 뭘로 할지에 따라서 가격이 오르락내리락했다. 처음 받은 견적보다 실제 공사가 진행되면서 올라가는 비용을 보면서 욕심을 줄이고 현실과 타협하는 과정이 이어졌다. ‘그러면 이건 포기할게요’, ‘이건 안할게요’ 하는 나에게 인테리어 사장님은 “사모님, 이러다 자칫하면 전셋집 인테리어가 될 것 같아요”라는 말을 하셨는데 그게 너무 웃기고 슬펐다.
그리 예뻐 보이던 조적식 욕실은 비싸다기에 과감히 포기하고, 마루를 고집하던 나는 견적을 줄이기 위해 장판을 깔기로 하고, 붙박이장도 원래 있던 장을 재활용하기로 하고 그래도 침니후드는 하고 싶어서 그거 하나고집했다. 간식을 사들고 중간에 한 번씩 현장을 방문하기도 하고, 거의 매일같이 카톡을 주고받으며 결정해야 할 것들이나 의문스러운 부분들을 논의했다. 처음엔 시간만 많으면 셀프 인테리어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나중에는 정해진 예산 내에서 쥐어짜며 결정하고 고민하는 일에 현타가 와서 이놈의 인테리어 두 번은 못하겠다 생각했다.
인테리어 작업해 주시는 분들과 트러블이 나기도, 지속적인 소음 민원으로 이웃들과 갈등을 빚기도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다행히도 별다른 일 없이 기간 내에 인테리어가 무사히 끝났다. 이삿짐을 옮기며 장판이 찌그러지고 찍히는 이벤트들이 있었지만 지나고 나니 별 일 아니다. (그 당시에는 속상했다ㅠㅠ) 그런데, 크게 호불호도 없고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던 내 눈에조차 화장실 공사가 너무 엉망진창인 게 보였다. 타일이며 실리콘이며 돈 들여서 새로 지은 화장실의 몰골이 전혀 아니었다. 게다가 벽지나 몰딩 마감, 실리콘 마감 같은 것들도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너무 엉망이었다. 결코 나는 그런 걸 깐깐하게 따지는 사람이 아닌데 헌 집은 뜯어고쳐도 헌 집인가, 저렴한 업체랑 작업해서 이 정도의 퀄리티인 건가 라는 생각을 하며 예전 신축 아파트가 너무 그리워서 한참을 속상해했었다.
그래도 흐린 눈이 장착되고, 시간이 흐르고 나니 그때 내가 고집하던 인테리어가 뭐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고, 별다른 하자들에도 무던해져 버렸다.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에는 변기 옆에 달린 스프레이건 호스가 터지면서 화장실에서 물폭탄을 맞은 날이 있었는데, 최근에 그 호스가 다시 한번 터졌다. 화장실 인테리어에 앙심(?) 같은 걸 품고 있던 나는 ‘이놈의 오라질 인테리어!’ 하고 화냈을 법도 한데, ’또 터졌네’ 하고 물을 뒤집어쓰며 변기 수도꼭지를 틀어막던 나의 평정심은 올수리 인테리어를 끝내고 나니 현실과 타협하는 어느 지경에 도달한 결과물인가 생각도 했다.
인테리어는 미워도 사람이 미운 건 절대 아니니, 같이 고민하고 고생한 시간들이 무사히 마무리되었음에 감사한 마음을 표하고자 인테리어 사장님을 초대해서 같이 저녁 식사를 했다. 사장님은 새로운 집에서 행복한 날들을 보내라며 화분을 선물해 주셨고, 그 마음만 감사히 받고 몰딩이며 실리콘이며 어떻든 앞으로의 행복을 가꿔가는 건 우리 몫으로 하기로 했다. 그런데 부디 다음 집은 인테리어가 필요 없는 신축이면 좋겠다는 꿈을 살포시 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