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다리 아마노하시다테와 수상가옥촌 이네후나야!
인천공항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오후 3시 20분쯤 간사이 공항 1 터미널로 이동 후 jr 인포메이션에서 간사이 쓰루 패스 4일권 티켓을 교환했다. 일본은 워낙 교통비가 비싸 외국인 대상 할인 레일패스를 구입했다. 간사이 쓰루 패스는 오사카, 교토, 고베, 히메지 등을 이동할 수 있는 패스이다.
플랫폼으로 내려가니 하얀색 기차에 키티로 장식된 하루카가 미끄러지듯 다가왔다. 플랫폼에 다양한 형태와 색감의 기차들이 보였고, 하나의 관광 상품이 되는 일본의 철도 디자인 전략이 보였다. 1시간 20분 정도 지나 교토역에 도착하니 주변이 어두워졌고, 비도 추적추적 내리는데, 역사 맞은편에서 화려하게 빛나는 교토타워! 짝수 일은 핑크빛, 홀수 일은 파란빛 교토타워와 함께 분수 쇼가 여행객의 발길을 붙잡는다.
교토역 맞은편 마츠야마 호텔은 쿠키와 차가 마련된 다다미방 구조의 온천호텔이다. 이곳에 숙소를 정한 이유는 온천보다 첫차를 타고 교토 북부 바닷가 마을 1 day 투어를 위해서였다.
다음날, 아침 일찍 아마노하시다테 가는 첫 버스를 타기 위해, 일찍 줄을 섰으나 사전 예약 승객 먼저 태우고 남은 자리에 앉았다. 시가지를 벗어나 북쪽으로 2시간 정도 달리니 미야즈만이 보이기 시작했고, 이어 아마노하시다테 역에 도착했다. 작은 규모이지만, 역사는 깔끔했다. 관광안내소에서 버스표를 예매하고, 인터넷에서 구입한 아마노하시다테와 이네후나야 1일 이용권을 지역 티켓으로 교환했다.
아쉽게도 날씨가 흐렸다. 이네 후나야와 아마노하시다테를 하루 만에 둘러보려면 서둘러 다녀야 했다. 주어진 상황을 즐기는 것 또한 여행의 묘미 아닌가? 교토행 마지막 버스를 예약했으니 나름 시간을 벌어놓은 셈이다. 일단 더 북쪽 이네후나야를 먼저 둘러본 후 아마노하시다테를 보기로 했다.
소나무 사이로 길게 이어진 새부리 모양의 모래밭을 걸어서 건너고 싶었지만, 역 앞에서 단고 지역 버스를 타고 이네만으로 향했다. 버스는 마을 골목을 지나 둥근 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쭉~~ 달렸다.
바다를 마주 보고 자리 잡은 단고 와이너리는 현지의 포도원에서 생산하고 수확한 포도로 지역 와인을 만드는 곳이다. 독일산 최신 기계 도입 및 제조 기술부터 저장까지 독일의 노하우를 활용해 와인을 만들고 있다. 2층의 레스토랑에서는 지역 특산품을 사용한 요리를 맛볼 수 있고, 또한 직접 생산한 와인도 마실 수 있다.
버스는 잔잔한 바다를 끼고, 작은 섬들을 따라가고 있었다. 길게 이어진 모래사장과 갈매기, 차창을 통해 내다보는 풍경에 취해 있었다. 고요함 속에 30분 정도 지나니, 이네후나야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돌아가는 버스 시간표를 확인하고, 관광안내소 앞쪽 이네포구 공원으로 나갔다.
와!!! 나도 모르게 탄성이 절로 나왔다. 잔잔한 쪽빛 바다를 품고 있는 마을이 이네만을 따라 둥글게 모여있고, 이층집 후나야들이 줄지어 있는 모습이 참으로 멋진 풍경이었다. 바다가 육지로 쑥 들어온 이네만은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춰 풍랑 없는 평온한 바다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의 할슈타트라는 별명을 갖는 고즈넉한 느낌의 이네 후나야는 이네 마을에 수상가옥을 의미하는 후나야가 합쳐진 이름이다. 바다에 붙어 있는 목조가옥 1층 어선 수납소, 2층 주거지로 만들어진 독특한 건축물이다. 산이 병풍처럼 바다를 둘러싸고 있어 집 지을 곳이 없다 보니 바다에 붙은 집을 만들게 되었다.
오래전부터 중국과 무역으로 발전한 이네만 5km 해안선을 따라 약 230개의 후나야가 이어져 있으며, 현재 1,900명이 거주하고 있다. 색다른 가옥 구조를 갖춰 일본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관광안내소에서 2,000엔 보증금으로 자전거를 대여하여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다. 반납 시 돈은 돌려받는다. 그러나 카메라에 찰칵찰칵~ 눌러 담을 풍경이 너무 많아 걷기로 했다. 약 350미터 정도 걸으니 200엔을 지불하고 배를 구경할 수 있는 Boat house Museum이 바다 쪽에 자리 잡고 있다. 벽면에 사진과 설명자료, 이네만의 지도와 바다에서 사용하던 도구들이 전시되고 있다. 바다로 들어가는 경사로 위쪽에 배가 정박되어 있고, 물고기를 손질하여 벽에 둥글게 걸어놓아 바닷바람에 말리고 있었다.
친근한 바다마을 풍경을 뒤로하고, 50M쯤 거리 왼쪽 계단 위에 후나야노사토 뷰전망대가 있다. 이네만 전망이 한눈에 보이고, 역시 파도 없는 너무도 잔잔한 바다이다. 쏙 들어와 앉은 둥근 이네만 멀리 미야즈만까지 볼 수 있다. 해안을 따라 길게 이어진 후나야를 바라보니 한 폭의 그림이다. 통창의 목조 건물들, 프로펠러 모형과 물고기 조각품이 공원 곳곳에 세워져 있다.
아래쪽으로 다시 내려오니, 해안선에는 검은빛 나무판자를 덧댄 건물 3채가 붙어 있는 2층 목조 건물이 있다. 가로로 통창을 길게 뚫어 보기에도 시원한 뷰를 자랑하는 이네 카페이다. 바다 위로 테라스가 길게 나 있어 바닷가 마을의 숨결과 전경을 느끼기에 아주 좋다.
이네후나야의 독특한 마을 모습과 바다 카페의 모습에 매료되어 이곳을 찾아왔다. 이네카페, 여기에 내가 있다는 것이 새삼 감사하고 경이롭다. 가볍게 커피 한잔 마시고, 직원이 사진을 찍어 그 기분 그대로 마음에 담았다.
맞은편에 있는 わだつみ 스시 레스토랑. 14시 30분까지 영업이라 자리가 없어도 예약하면 전화 연락을 주는 시스템이다. 주변 경치를 카메라에 담고 있는데 연락이 왔다. 주방은 바다를 등지고 요리하는 공간, 맞은 편 긴 테이블이 바다를 향해 앉을 수 있도록 배치되어 있다. 노을 시간에 맞춰 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わだつみ 정식 세트는 사시미와 생선튀김, 스시 5점이 나오는데 3300엔이다. 아침에 잡은 생선으로 요리하여 신선하고 맛있었다.
초등학교, 수산 시장과 우체국을 지나 고즈넉한 마을의 정취를 느끼며 슬슬 걸었다. 옛날 일본식 가옥이 있었던 고향의 동네 어귀를 걷는 느낌이었다. 오른편 언덕배기 사찰과 신사를 지나 나타난 이네포구 민속자료관! 소박하고 단출하지만, 여기서 볼 수 있는 다양한 기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낯선 동네이지만, 전혀 낯설지 않은 곳. 집과 집 사이의 틈으로 바라보는 바다와 후나야의 조화는 세로로 길게, 혹은 가로로 드넓게 다가왔다. 마을 안쪽 길은 교토의 뒷골목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걸어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걷는 자의 눈높이에서 바라보아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읽는 것은 그래서 상대의 마음을 걷는 것이고, 걷는 것은 사유와 성찰의 과정을 통해 읽은 것을 쓸 수 있게 한다. 어느 작가의 말처럼 쓰는 것은 살기 위해서라는 말에 동의한다.
아지노 신사를 지나고, 慈眼寺라는 자그마한 절에 올라갔다. 절에는 붉은 도리가 세워져 있고, 앞치마를 입은 석상 맞은편 스님은 담장 너머 바다로 시선이 이어지고 있다. 경사진 곳에 부도탑이 보이고, 사당 앞 석등은 나란히 서 있었다. 여기는 이네 후나야의 풍경을 가득 담기 아주 좋은 눈높이를 갖고 있다. 찰칵찰칵!!
전망대와 성터를 지나니 드디어 붉은 등대가 기다리고 있다. 맞은편 아오섬 부속 섬에는 하얀 등대가 마주 서 있다. 남쪽으로 이네만이 형성되어 동해의 영향을 덜 받아 잔잔한 바다, 빛바랜 2층 후나야는 고요한 평안을 전해준다. 비가 오는데도 바다는 조용하고, 하늘을 나는 갈매기도 평온을 유지하고 있다. 나이가 들어 더 이상 배 손질도 어렵고, 바다로 나갈 사람이 없어 점점 줄어가는 이곳을 등대는 그렇게 말없이 지키고 있다.
붉은 등대까지 돌아보고 다시 입구로 가려는데 꽤 멀리 왔다. 약 2.5km의 거리를 기웃기웃 사진 찍느라 걸어왔더니 다리가 아팠다. 잠시 쉬어가려는데 마침 자동차 한 대가 천천히 다가왔다. 노부부가 시장 가려고 나선 듯했다. 무작정 손을 흔들고 태워달라고 도움을 요청했다. 노년의 부부는 차를 세우고, 큰 길로 이동하여 이네 마리나까지 데려다주셨다. 낯선 여행객의 요청을 기꺼이 들어주신 두 분께 너무너무 감사했다.
운이 좋아 바로 보트에 오를 수 있었다. 선착장 앞에 나란히 서 있는 미니어처 크기의 섬들, 중간 규모 바위 섬에 호 코라 신사가 위치하고 있다. 오랜 세월 그 자리에서 바다의 안녕과 장수를 기원하는 이네 니자키 신사와 도로 건너 야사카 신사가 이어지는 모양새였다.
이네만 순례 유람선에는 대만 단체 여행객이 우르르 함께 탔다. 보트에 일본어로 후나야의 역사와 볼거리가 안내되고 있었고, 사람들은 새우깡 스낵을 갈매기들에게 나눠주었다. 힘차게 비행을 한 갈매기들은 유유히 날아들어 익숙한 듯 먹이를 가로챘다. 그들은 갈매기들이 먹이를 들고 달아나는 모습에 놀라 소리치고 웃고 떠들었다.
바다에서 바라본 이네 후나야의 모습 역시 독특하다. 삶은 결국 자연의 일부분으로, 여건과 상황에 따라 만들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찍던 뷰랜드, 이네 카페와 식당, 절과 신사 등이 그 자리에 잘 있었다. 선착장에 돌아와 이네만 그림 마그네틱을 구입, 제시간에 도착한 버스를 타고, 아마노하시다테로 향했다.
30분 후 도착한 곳은 가사마쓰 공원 정류장. 맞은편 모토이세코노 신사를 휘리릭 둘러보았다. 둥근 원기둥을 머리에 얹은 신사 지붕의 이끼들은 긴 시간을 축적하고 있었다. 거북이 석상 위를 실제 거북이들이 기어오르던 장면 때문인지 신사보다 절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규모도 있고, 세련된 분위기를 풍겼다.
가사마쓰 공원으로 올라가는 케이블카 정류장과 유람선 선착장 부근은 제법 활기차 보였다. 아마노하시다테 뷰는 맞은편에서 보기로 하고, 1일 이용권을 활용, 이치노미야 부두로 가서 유람선을 탔다. 역시 갈매기들의 호위를 받으며 10분 후 건너편에 도착했다.
붉은색으로 칠해진 카이센 다리는 배가 지날 때 90도 회전하여 뱃길을 만들어 준다. 다리 아래 원형 모양의 기계 장치가 달려있다. 뜬 다리는 보았지만, 회전하는 다리는 새로운 느낌이었다. 배에서 내려 안으로 들어서니 일본 3경비라는 석조물이 세워져 있다.
히로시마현의 미야지마, 미야기현의 마츠시마와 더불어 일본 3경으로 꼽히는 아마노하시다테. 이곳은 미야즈만과 아소해 사이에 위치한 길이 3.6km, 폭은 약 20~170m의 사주이다. 조류와 바람, 바닷물의 흐름이 자연적으로 모래사장 만들고, 양쪽 바다 사이로 길게 이어진 모래사장을 7천 주의 소나무가 숲을 이루었다.
일본 창세 신화의 이자나기와 이자나미가 처음으로 지상으로 타고 내려온 무지개다리라는 전설과 하늘로 올라갈 때 쓰는 사다리였는데 이자나기가 낮잠을 자는 사이에 넘어져 바다의 다리가 됐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평균 2~3백 년의 자연발생적 소나무에는 각자의 이야기를 담은 작은 팻말이 서 있다. 곳곳에 신사와 비석, 기념물이 있는 이곳은 1952년 국가지정특별명승, 2007년 국정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오랜 세월 바람과 파도가 들려준 이야기가 겹겹이 쌓인 모래사장, 오래된 솔 숲에서 느끼는 향기는 평화와 고요를 선물하고 있었다.
모래밭 산책 중 808년에 창건된 치온지라는 절에 들렀다. 지혜를 내려주는 문수보살을 모시는 절로 규모는 크지 않다. 학업 성취의 뜻을 내리는 절로, 학부모와 수험생이 많이 찾는다. 본당 안에는 가마쿠라 막부 시대의 중요 문화재가 소장되어 있고, 경내 다보탑은 1500년 무렵 무로마치 시대 지어졌다. 나뭇가지에 작은 부채모양의 오미쿠지가 잔뜩 걸려있다. 사인을 소나무에 걸면 좋은 일이 일어나고 나쁜 일이 빨리 지나가기를 기대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카페와 기념품 가게가 즐비하게 늘어선 거리를 지나, 건널목 너머 뷰랜드로 향했다. 바삐 걸음을 옮겨 산 쪽 경사진 길을 오르니 리프트 타는 곳이다. 1일 관람권과 별도로 비용을 지불했다. 그냥 의자만 달랑 놓여있는 리프트는 부담되고, 심장이 쫄깃해졌다. 올라갈 때는 제대로 보지 못한 아마노하시다테 풍경을 내려올 때 바라보니 대단했다.
남쪽에서 전망할 수 있는 몬주산 뷰랜드는 케이블카와 리프트, 관람차 등 유원지로 꾸며져 있다. 아마노하시다테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이곳에서 바다를 등지고 상체를 숙여 다리 사이로 머리를 넣고 보면, 마치 구름을 뚫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엉덩이를 쳐들고 바라보는 모습은 우스꽝스러웠다. 그렇게 보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운 곳이다.
양심적으로 200엔을 넣고 3개의 도자기 둥근 조각을 집어들어 동그라미 속으로 던져 넣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따라 해 보니 쉽지 않았다. 재미난 스토리보드 하나 추가해 놓은 셈이다.
아마노하시다테 역 부근에 지혜의 온천이 있어서 이용했다. 목조로 지어진 건물은 크지 않지만, 레트로한 느낌을 물신 전해준다. 소금기가 있는 해수온천으로 냄새도 없고, 적당히 뜨거워 기분 좋게 목욕할 수 있었다. 탕의 규모와 탈의장 크기도 작았지만, 얼른 씻고 나오기에는 무리가 없었다.
흐린 날씨, 간간이 내리던 빗 속에서 많이 걸었던 나를 위해 위로해 준 700엔짜리 온천이었다. 어느덧 사방이 어둑어둑해졌고, 시간에 맞춰 도착한 버스도 좋았다. 이제 교토로 출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