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들이 가볍게 술을 한잔 하고 싶을 때 가장 먼저 머리속에 떠오르는 안주거리가 무엇일까? 열 명중 여덟 아홉 명이 치킨과 맥주를 생각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몇 년 전부터 불던 ‘치맥’ 열풍이 우리 생활 속에 자리잡아 이제는 남녀노소 모두가 즐기는 식문화가 되었다. 기름으로 튀기기 때문에 아무래도 느끼할 수 있는 치킨의 맛을 시원한 맥주가 깔끔하게 가려주면서 맥주와 치킨은 최고의 궁합을 이룬다. 이러한 ‘치맥’ 문화가 여러 외신과 인터넷 공간에 소개되고 더 나아가 축제 성격의 행사도 종종 열리면서 지금은 전세계의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본 사람들도 우리 못지않게 닭튀김을 사랑한다. 일본의 선술집 메뉴에 카라아게(唐揚げ, 닭튀김)가 없는 곳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본에는 우리의 ‘치맥’과 같은 식문화가 없는 것일까?
카라아게는 에도 시대(江戸時代, 1603~1867)에 중국의 승려에 의해 전해진 보차요리를 기원으로 하고 있다. 카라아게는 본래 생선, 채소 등의 다양한 식재료에 밀가루 또는 녹말가루를 묻혀 기름에 튀긴 음식을 총칭하는 말이지만 오늘날에는 치킨 카라아게가 카라아게를 대표하는 대명사처럼 사용되고 있다. 닭 다리, 연골, 날개 등 여러 부위를 사용하기 때문에 다양한 종류의 카라아게가 있다. 예를 들어, 난코츠(軟骨) 카라아게의 경우 연골을 이용해 만들었기 때문에 오독오독한 식감이 있다. 닭 날개 부위를 튀긴 테바사키(手羽先) 카라아게도 있다. 튀기는 방법의 차이도 있어 녹말을 입혀 튀겨낸 타츠타아게(竜田揚げ), 톳과 표고버섯을 갈아 넣은 가루로 튀겨 검은색을 띄는 쿠로(黒) 카라아게, 마지막으로 미야자키의 치킨난반(チキン南蛮)도 있다.
그렇다면 위에서 설명한 카라아게에 가장 어울리는 술은 무엇일까? 바로 하이볼(ハイボール)이다. 하이볼이 어떤 술인지 알기 위해선 먼저 그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본은 1923년부터 위스키를 생산해 그 역사가 100년을 바라보는 전통의 위스키 생산국이다. 그렇지만 계속해서 이어진 경기 불황(최근의 일본 경제는 상황이 매우 좋아졌습니다만)과 젊은 층의 음주 기피 현상으로 인해 판매 실적이 점점 줄게 된다. 이러한 판매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위스키 전통의 명가 산토리가 발 벗고 나서게 된다. 산토리의 대표적인 위스키 가쿠빙(角瓶)에 레몬과 탄산수를 섞어 알코올 도수를 8도까지 낮춘 제품을 개발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저알코올, 저가격 정책은 당시 시장 상황에 딱 들어 맞게 되어 결국에는 하이볼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된다. 기린, 아사히 등 다른 주류 회사들도 하이볼 음료 개발에 뛰어들게 되고 지금에는 일본의 국민술로 자리잡게 되었다.
한국의 ‘치맥’과 비슷하게, 하이볼 역시 카라아게와 환상적인 궁합을 자랑하면서 인기를 끌게 되었다. 탄산이 주는 특유의 청량한 느낌에 도수를 낮춰 술 향이 강하지도 않으니 누구나 쉽고 가볍게 즐기게 된 것이다. 결국에는 ‘하이카라(ハイカラ, 하이볼+카라아게)’라는 신조어까지 탄생하게 된다. ‘하이카라’는 유명 드라마인 심야식당에 그 먹음직스러운 모습을 내비치면서 더욱 인기를 얻어가게 된다. 일본에 여행 계획이 있는 분, 특히 식도락 여행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주목해 주시기 바란다. 낮 동안 열심히 명소를 둘러본 후, 발이 닿는 대로 선술집에 들어가 갓 튀긴 카라아게에 시원한 하이볼 한잔, ‘하이카라’를 맛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