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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진규 Dec 07. 2018

홋피 도오리 (ホッピー通り)

도쿄 대표 시타마치(下町)

관광객들에게는 ‘센소지(淺草寺)’로 유명한 아사쿠사(浅草) 지역의 현재 모습은 사실은 아사쿠사 롯쿠(浅草六区) 재개발을 통해 탈바꿈한 결과물이다. 스미다 강(隅田川)을 건너면 우뚝 서 있는 스카이트리와 함께 과거와 미래가 만난 듯한 멋진 풍경을 자아내고 있지만, 아사쿠사의 10년 전 모습을 생각해 본다면 이러한 지금의 모습을 상상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아사쿠사의 골목골목에는 서민의 정취가 깃들어 있다. 즉, 이 곳은 도쿄 시타마치의 대표격인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서민적인 안주와 술을 즐기기에 좋은 골목이 있다. 아사쿠사 롯쿠도오리 바로 옆 작은 골목, 홋피 도오리를 소개한다.


‘홋피(ホッピー)’란 무엇인가?

‘홋피(ホッピー)’는 보리주정청량음료, 그러니까 맥아 함유량이 낮아 맥주가 아니라 발포주라고 불리는 술로, 도수도 맥주보다 낮다. 독주를 즐기지 않는 일본인들의 성격이 딱 들어 나는 술이기도 하다. 사실 홋피는 흥망의 역사가 있는 술이다. 1948년 출시한 이후, 값이 비싼 맥주의 대용으로서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서민들 중심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1970~80년대 일본 경제가 호황을 맞으면서, 값싼 술인 홋피의 인기가 상대적으로 밀리게 되었다. 쇠퇴의 길을 걸으며 없어질 위기에 처했던 홋피는, 1990년대부터 영업 혁신을 통해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했고, 당시의 복고 열풍과 맞물려 매출을 회복했다. 이제는 동네 슈퍼마켓에서도 만날 수 있는 술이 되었다. 선술집에서 홋피를 주문하게 되면 보통 맥주 잔이 같이 나온다. 500cc 맥주 잔에 소주와 반반 부어서 섞어 마시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국의 ‘소맥’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제대로 된 이름도 없는 서민의 거리

홋피 도오리는 사실 정식 명칭이 없다. 이 곳의 또 다른 이름은 니코미 도오리(煮み通り), 한국 말로 조림 거리 정도가 되겠다. 이 곳 선술집들의 시그니쳐 안주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니코미'다. 한국의 조림 요리 정도로 생각하면 비슷하다. 생선이나 소돼지의 특정 부위를 약간 매콤한 국물에 푹 쪄서 나오는 안주다. 
홋피 도오리는 때를 가리지 않고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북적하다. 낮에는 요세(寄席, 라쿠고 극장의 명칭)에서 라쿠고(落語, 한 사람이 이야기꾼으로 나와 반전이 있는 이야기를 펼치는 일종의 일본식 스탠딩 코미디)를 보고 나오신 어르신들이 낮술을 한 잔 걸치고, 밤에는 퇴근한 젊은이들이 가득하다. 일본 사람들이 조용히 식사한다는 통설도 이 곳에서는 먹히지 않는 이야기이다. 고급스러운 도시의 느낌이나 일품의 맛을 기대했다면 조금은 실망스러울 수 있겠지만, 골목의 정취와 어우러져 여행의 재미를 배가시키는 포인트로는 아주 좋다. 니코미에 홋피 한 잔 기울이고 스카이트리가 보이는 야경과 함께 아사쿠사 골목을 산책한다면, 도쿄의 색다른 모습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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