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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병기 Oct 03. 2020

[리뷰]런던에서 만난 도시의 미래

런던이 지루하면 삶이 지루한 것이다

런던에서 만난 도시의 미래_김정후


에필로그에 젹혀 있는 영국 시인 새뮤얼 존슨의 말 "런던이 지루하면 삶이 지루한 것이다"를 보고 옛 생각이 났다. 2014년께 독일 프랑크푸르트 여행을 갔다가 너무 지루해서 런던행 비행기를 끊어 런던으로 향했다. 심지어 저가항공으로 끊은 아침 첫 비행기를 놓쳐 맥도날드를 제외하고는 아무 것도 없는 프랑크푸르트 외곽 공항에서 맥도날드 햄버거로 두끼를 해결하고 한나절을 기다려 밤 비행기를 타고 런던으로 갔다. 새뮤얼 존슨의 말처럼 런던은 내게 지루할 틈이 없는 도시였기 때문이다.



책을 받은 지는 꽤 됐는데 이제서야 리뷰를 쓴다. 책을 전해준 김정후 교수님께 죄송한 마음이다. 사실 책을 받자마자 최근에 기사를 쓴 킹스 크로스 프로젝트부터 시작해서 평소 관심을 가지고 있는 프로젝트 위주로 읽어봤는데 추석 연휴를 맞아 처음부터 새로 읽어봤다. 느낌이 많이 달랐다. 이 책은 영국 런던의 도시재생 사례 10개를 소개하고 있는 책이라 책 중간 어디서라도 시작할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처음부터 읽는 게 훨씬 더 좋을 것 같다. 참고로 킹스 크로스는 마지막 열 번째에 소개되는 프로젝트다. 저자가 전하고 싶은 가장 중요한 말은 프롤로그에 다 담겨 있는 것 같다.


"도시는 필연적으로 쇠퇴하기에 이를 정확히 이해하고, 바른 해법을 찾는 것이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드는 핵심이다. 그런 면에서 런던이 거쳐온 치열한 도시재생의 역사와 노력을 들여다보는 것은 소중하다."


평소 김 교수님과 자주 얘기를 나눴던 부분이기도 하다. 물론, 그 프롤로그에 힘이 실리는 건 이 책에 담겨 있는 열 개 프로젝트 대한 글이 충실하게 쓰였기 때문이다. 이 책을 끝까지 읽고 나면 프롤로그의 저 말이 다시 한번 묵직하게 다가온다. 하나의 프로젝트 당 글과 사진을 포함해 30페이지 내외로 구성되어 있는데 길다면 길다고 볼 수도 있지만 길게는 몇 백년에 달하는 도시의 역사와 변화 과정, 그리고 그 의미를 다루는 데 결코 많지 않은 분량이다. 제한된 분량 안에 이 정도로 전달하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책은 여러 측면에서 흥미롭다.


1. 내가 런던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


 열 개 프로젝트는 사우스 뱅크, 테이트 모던, 밀레니엄 브릿지, 런던시청, 샤드 템스, 파터노스터 광장, 올스 스피탈필즈 마켓, 브런즈윅 센터, 런던 브리지역, 킹스 크로스로 구성되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첫번째 사례인 사우스뱅크에서부터 네번째 사례인 런던시청까지 읽을 때는 마치 런던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런던을 좋아해 여행과 출장으로 수 차례 방문했는데 사우스뱅크부터 런던시청까지 걸으면서 런던을 보는 걸 가장 좋아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중간에 밀레니엄 브릿지를 건너 세인트폴 대성당까지 걸으면서 낯선 곳에서의 이국적인 풍경과 여유를 즐기곤 했다. 빅밴이나 런던아이, 타워브릿지, 피카딜리 서커스 등 런던을 대표는 관광 명소도 좋지만 커피 한잔을 들고 브리티시팝을 들으며 사우스뱅크 일대를 걷는 게 가장 좋았다. 매번 런던을 찾을 때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 가보려고 하는 장소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서 내가 사우스뱅크부터 런던시청까지 걷는 걸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 보다 명확하게 알게 됐다. 런던을 처음으로 간 게 2006년 겨울이고, 마지막으로 간 게 2014년이었다. 런던을 가면 갈수록 그 그리움이 더욱 깊어진 것은 그저 취향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우스뱅크, 테이트모던, 밀레니엄 브릿지, 런던시청, 그리고 파터노스터 광장까지 내가 사랑하는 그 거리가 내가 런던을 찾았던 그 기간 동안에도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었고, 또 지금도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우스 뱅크에는 음악이 있고, 미술이 있고, 영화가 있고, 문학이 있고, 축제가 있고, 음식도 있다. 외형은 이미 50여 년 전에 갖추어졌다. 결적적이 차이는 다름 아닌 '사람'이다. 사우스 뱅크는 지난 20여 년 동안 사람의 온기를 불어넣기 위해 치밀하게 노력한 결과다."


"테이트 모던은 서쪽 사우스 뱅크 지역과 동쪽 런던시청 지역의 중간 지점에 자리한다. 그러므로 테이트 모던과 조성된 외부 공간은 서쪽과 동쪽을 연결하는 구심점이고, 이를 통해 템스강변 전체가 산책로로 확장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 2016년 10층 규모의 새 미술관을 신축했는데 확장이 방향이 좌우나 위가 아닌 뒤였다. 이는 테이틈 모던이 만든 지역 활성화의 긍정적 시너지 효과를 아래쪽으로 계속 확장하려는 것이다."



2006년부터 2014년까지 여행과 출장 등으로 런던을 방문하면서 찍은 사진들. 사우스뱅크부터 런던시청까지


2. 런던이라는 도시의 퍼즐을 맞추는 즐거움


런던은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문학 작품의 배경이 되는 도시다. 내가 본 런던을 배경으로 한 영화도 셀 수 없이 많다. 지금 당장 생각나는 것만 열거하더라도 노팅힐, 윔블던, 본 시리즈, 007 시리즈,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킹스맨, 어바웃타임, 브리짓 존스의 일기 등이 떠오른다. 스포츠를 좋아하기에 런던을 찾을 때는 꼭 축구 경기장을 찾기도 했다. 스탬포드 브릿지에서만 프리미어리그를 두번 봤다. 그런데 그렇게 런던을 좋아하면서도 런던의 형성 과정과 런던이라는 도시의 특징에 대해서는 제대로 살펴보지 않았다. 런던을 찾더라도 체류 기간이 길지 않고, 그때그때 가보고 싶은 곳 위주로 다녀오기 때문이다.

이 책은 10개의 개별 도시재생 사례를 소개하는 책이지만 런던이라는 도시가 형성된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길게는 수백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개별 프로젝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상까지 체계적으로 정리했기 때문이다. 이 책만 보더라도 런던 템스강의 북쪽과 남쪽, 런던의 서쪽과 동쪽이 어떻게 형성되고 발전되어왔는지 런던이라는 도시가 가지고 있는 고민,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나갈지를 가늠할 수 있다. 250페이지 분량의 책을 통해 이러한 내용들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풍부하고 체계적인 조사, 정리가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21세기 전까지 런던은 극단적으로 불균형적으로 발전했다. 런던은 11세기 이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면에서 템스강 북쪽을 중심으로 성장했고, 자연스럽게 살기 좋은 지역의 대부분이 북쪽에 형성되었다. 북쪽 지역정부는 다리를 놓아 템스강 위와 아래를 연결하는 것에 소극적이었다. 기존의 정치적 경제적 힘을 독점하려는 것이었고, 낙후된 남쪽과 교류해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밀레니엄 브리지는 2000년 동안 고착되었던 런던 중심부 지형애 지각 변동을 유도하며 새로운 통합과 발전의 가능성을 확짝 열어젖혔다."


"영국 정부는 보편적이 유럽 도시들과 달리 보존과 개발을 도시 발전의 양 바퀴로 간주하는 적극적인 정책을 펼쳤다. 한편으론 전통을 지키기 위해 엄격한 보존 원칙을 고수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정책의 틀 안에서 대규모 개발을 허용했다. 런던의 경우 허용된 대규모 개발 방식 중의 하나가 바로 '고층건물의 건립'이다. 오랜 역사를 보유한 유롭 도시 중에서 고층건물 건립에 유연하게 접근하는 도시는 런던이 거의 유일하다."


3. 매력적인 도시와 공간을 만들려는 이들에게


매력적인 도시는 어느 한 주체의 노력과 힘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정부나 시가 그리는 큰 그림도 중요하고, 민간기업의 참여,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소상공인들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이들과의 교감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에 소개된 샤드 템스와 파터노스터 광장, 올스 스피탈필즈 마켓, 브런즈윈 센터, 킹스 크로스와 같은 프로젝트들의 진화 과정은 매력적인 도시와 공간을 만들려는 이들에게 시사점을 준다.


"21세기에 새롭게 탄생한 파터노스터 광장과 주변을 더욱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본 부지가 민간 소유이고, 철저하게 민간 주도로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앞선 실수를 반복하지 않더라도 현재보다 훨씬 더 상업적이거나 이윤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개발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신에 세인트폴 대성당을 중심으로 런던의 위용을 드러내기에 충분한 모습으로 재탄생했고, 세인트폴 대성당 주변에 소중한 공공공간을 제공했다."


"올드 스피탈필즈 어떤 유명한 백화점이나 할인마트 이상으로 훌륭하게 홈페이지를 운영 중이다. 이를 통해 올드 스피탈필즈 마켓에서 판매하는 제품과 식당은 물론이고, 각종 행사에 대한 최신 정보를 제공한다. 이는 시민과 방문객 모두가 올드 스피탈필즈 마켓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현재 홈페이지는 여느 문화 예술공간 못지않게 다양하고, 흥미로운 정보로 가득하다."


*올드 스피탈필즈 마켓 홈페이지_https://oldspitalfieldsmarket.com/


**책에서 인용한 글들은 책을 읽으면서 중간중간 표시해 둔 것을 따로 발췌한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아니다. 다음에 다시 읽을 때는 다른 부분이 눈에 띌 수도 있을 것 같다.




글을 마치며_김 교수님과의 인연은 한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으로 직접 뵌 건 제주에서 열린 도시재생 관련 세미나에서다. 당시 강의를 너무 재밌게 들어서 기억에 오래 남았다. 물론 그 전에 책으로 먼저 김 교수님을 만나기는 했다. 2013년에 출간된 발전소는 어떻게 미술관이 되었는가를 통해서다. 이후 팟캐스트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페이스북 등을 통해 교류하면서 김 교수님이 우리가 사는 도시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도시의 미래에 대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더군다나 자신의 생각을 상당히 설득력 있게 전달하기도 한다. 이 책에서도 그러한 김 교수님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2000년의 역사를 가진 런던이라는 도시의 진화과정을 10개 프로젝트를 통해 250페이지에 담아 전달하는 것은 결코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사실 처음에 킹스 크로스부터 읽기 시작했을 때는 이 책이 조금 딱딱하다고 느꼈다. 특히 내가 재밌게 읽었던 김 교수님의 또 다른 책 '발전소는 어떻게 미술관이 되었는가'와 비교하면 더 그렇다. 하지만 책을 처음부터 다 읽고 난 후에는 그런 생각이 사라졌다. 오히려 이 책이 여러 사람들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읽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해도 그렇다. 서두에서 밝혔듯이 처음부터 순서대로 끝까지 읽어가는 게 더 좋았지만(첫 인상이 보고서 같았다면 두번째 받은 인상은 여행서 같았다.), 앞으로 시간이 날 때 마다 하나하나 프로젝트를 찾아가며 읽고 참고하게 될 것 같다. 어떤 이는 런던이라는 도시를 여행하는 기분으로 읽을 수도 있고, 어떤 이에게는 매력적인 도시와 공간을 만는 데 도움을 주는 지침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다음에 런던 여행을 갈 때는 이 책을 챙겨가야만 할 것 같다.



**아래는 김정후 교수님 인터뷰와 팟캐스트에 초대해 나눈 얘기들이다.


[도시에는 다 계획이 있다]④21세기 대도시가 직면한 화두에 대한 고민과 해법이 담겨 있는 '킹스크로스' - https://n.news.naver.com/article/011/0003752888


http://podbbang.com/ch/17568?e=23213411


http://podbbang.com/ch/17568?e=23332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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