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스24 북클럽은 처음 가입할 때 한 달 무룐데 사이트를 들락거리다 보니 한 달을 더 연장해주는 이벤트가 있어서 냉큼 등록을 한 적이 있었다. 등록된 이북을 쭉 살펴보니 호감 가는 책들이 있길래 두 달 무료니까 해보자 싶어 책을 다운로드하였다. 그리고 한 권을 열자마자 내가 지금까지 수십만 원어치 이북을 받아놓고도 오랫동안 읽지 않았던 이유가 다시 떠올랐다. 이북은 화면의 규격이나 폰트 사이즈에 따라 언제든 페이지의 위치가 바뀐다. 애써 준비한 편집자의 기획을 이북에서는 전혀 기대할 수가 없다. 가끔은 이게 제대로 된 건가 싶은 화면 배치가 나오기도 한다. 책으로 활자를 볼 때의 정확한 간격과 정렬된 디자인을 이북에서는 느낄 수가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한 번 읽은 내용임에도 책 내용이 어디에 위치하는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촤라락~ "종이를 이렇게 훑으면 이쯤 어딘가에 내가 기억했던 내용이 있었지"가 이북에서는 더 이상 성립 되지 않는다. 종이책으로 읽는 경우에는 가끔 문장의 위치나 넘긴 종이의 두께, 여러 단이 모여있는 페이지의 모양도 기억이 나는데 이북에서는 항상 같은 곳에 있다고 담보할 수 없다. 확신이 들지 않았다. 이북은 "37페이지 상단에 있는 사진이요"식의 설명이 들어 먹히지 않는다. 이북의 강력한 검색을 사용하면 되겠지만 단어를 검색하면 앞뒤의 맥락을 찾을 수 없는 곳에 혼자 덩그러니 착륙한 기분이다. 그런 데서 오는 불안함이다. 그게 싫었던 거다.
책에는 손가락 끝으로 책 가장자리를 잡고 한 장씩 넘기며 느끼는 종이의 두께감과 질감, 넘기는 소리가 있다. 페이지마다 다른 배치를 가진 디자인으로 각각의 페이지가 어떤 식으로 차이가 생기는지도 파악이 가능하다. 책을 읽는 것은 이러한 과정의 반복된 경험이기 때문에 이북을 읽을 때와는 경험의 차이가 크다. 그래서일까. 다른 감각은 사라진 채 오로지 눈으로 들어오는 글자만 읽고 해석하다 보니 휑한 기분이 들었고 이 생각은 지워지지 않았다. 컴퓨터로 읽는 그 모든 텍스트들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유독 이북에서는 이것이 크게 다가온다.
사진작가 김홍희 선생님의 책 '사진 잘 찍는 법'에는 이미지를 인식하는 방법, 즉 '본다'라는 개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사람이 눈으로 무언가를 볼 때 시신경으로 들어온 정보는 뇌가 이미지를 합성할 때 사용하는 전체 이미지 정보의 오분의 일 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 오분의 사는 뇌가 미리 예측하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 시신경으로부터 들어온 이미지와 예측한 이미지를 합성하는 식으로 이미지를 '본다'는 것이다. 본다는 것의 왜곡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만 무언가를 하려고 생각하면 뇌는 이미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이는 독서를 할 때도 동일하다. 지금까지 살면서 책을 읽으며 느꼈던 경험들이 책을 읽겠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감각의 경험이 잔뜩 준비되는 것이다. 그런데 두꺼운 책이 아니라 LCD상의 이북을 읽으면 준비된 거의 모든 것이 소용 없어지니 휑한 기분이 들면서 혼란에 빠진다. 실제 내가 그렇다. 읽었는데 눈에 잘 들어오지 않고 차곡차곡 정리가 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종이책은 반대다. 독서란 지식을 얻기 위한 시각적 행위를 넘어서는 고도로 감각적인 행위였던거다. 그러니 내가 이북 형태의 도서를 다시 즐거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을 것인가는 여전히 의문이다. 여백이 불규칙하고 틀이 흔들리는 불안한 이북의 경험으로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을 읽고 싶지 않아 덮어둔지가 오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