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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목 Feb 01. 2023

바리깡을 들면 겁시나는 이유

프로 미용사와 안절부절 소비자

시작부터 바리깡을 들면 사실 겁시납니다. 고등학교때는 이발비를 아끼기 위해 학생들이 아주대학교 구내 이발소를 많이 갔었어요. 이발비가 2천원이었나 그랬을 겁니다. 엄마한테 5천원 받아서 2천원으로 이발하고 3천원 과자 사먹는 그런 시스템이 유행이었죠. 점심에 이발소에 들어가면 우리나라 사상 최악의 교복, 풀색 교복을 입은 무리들이 2-30명씩 꽉꽉 들어차 있습니다. 대학생들은 보이지가 않아요. 이발사 분이 세 명 있었나, 고등학생들의 머리는 깍기 쉬우니까 바리깡을 대고 대충 슥슥 3미리 5미리 맞춰서 그냥 사정없이 밀어버립니다. 그리고 다 됐다고 하면 군말 없이 오는거죠. 교실에서 머리를 체크해보면 삐뚤빼뚤 난리가 아닌데 사내놈들은 그런 걸 별로 개의치 않아했습니다. 하지만 바리깡부터 들이대면 과거의 기억이 위험신호를 보냅니다. 


과거의 경험은 감정과 뒤섞여 우리에게 경고의 메세지를 보냅니다. 나이 마흔 중반이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문득 이 경고를 받았습니다. 미용실에 예약하고 머리를 깎으러 갔는데 시작부터 바리깡 소리가 들리니까 '뭐여 내 머리카락 조지는건가'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리고는 빗질민 수십 번, 빗을 머리에 뗏다 붙였다 수십 번을 하는겁니다. 뭔가 되게 초짜같고 안절부절하는 느낌이 들더니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바리깡으로 위이잉~ 머리를 잘라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발 시간의 약 절반 가량을 바리깡으로 해결했습니다. 


시력이 나빠서 거울 앞의 제 모습도 잘 보이지를 않아 평소에는 눈을 감고 있는데 오늘은 눈을 부릅뜨고 뚫어지게 거울을 바라보았습니다. 밖으로는 의연하지만 내면으로는 안절부절 하면서 '과연 이 젊은 남자 미용사는 지금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죠. 어느순간 이발이 마무리 되었고 머리를 감고 안경을 써보니 오 (사실은 나) 괜찮은데? 머리 말리고 제품 하나 발라준대서 바르고 결제하고 여유롭게 나오게 되었습니다. 겉으로 불안함을 내색하지 않아 저 스스로를 칭찬하면서도 나의 과거 트라우마까지도 말끔하게 치료해 주신 것으로 보아 역시 프로는 결과로 말하는 거 같습니다. 가만있어보자 네이버 별점이 어딨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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