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고 싶다는 농담

by 윤현민

허지웅의 에세이 '살고 싶다는 농담'에는 가장 어둡고 깊었던 '그 밤'에 대한 묘사가 나온다. 악성 림프종을 진단받고 어두웠을 그의 마음 중 가장 어두웠을지 모르는 그날 밤, 견디기 힘들었을 그 밤에 그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자신을 한탄한다. 그리고 '도와달라는 말'을 할 줄 모르는 자신은 아무짝에도 쓸데가 없다고 말한다.


그날 밤의 그는 살고 싶다는 말이 농담이나 다를 바 없다고 느꼈을 것이다. 까마득히 멀거나 아니면 닿을 수 없으니 농이라도 던져 삶에 이르기를 바랐을 것이다. 죽음을 앞둔 적이 없는 나는 그의 감정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그가 무얼 이야기하는지는 아주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도 닿을 수 없는 것에 농담을 던져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 일은 언제 끝날까. 아, 이 일은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걸까. 수도 없이 되뇌면서 새벽 두 시가 넘도록 영상 작업을 몇 년간 이어가던 그 시절 나도 똑같이 닿을 수 없는 농담을 던졌다.


자영업은 생존 수영을 닮았다. 생존할 줄 모르면 물에 가라앉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수영을 한다 해도 생존할 정도, 딱 숨을 쉴 만큼만 고개를 쳐들고 살아 있을 수 있다. 살아있다고는 해도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도와줄 사람이 없다면 힘이 빠져 자세를 잡지 못했을 때 물속으로 가라앉을 운명일 뿐이다. 나도 허지웅 그처럼 도와달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늘 혼자 헤쳐나가야 했다.


온라인 쇼핑몰과 매장을 9년간 운영하고, 2017년부터 지금까지 1인 출판을 하고 있다. 출판을 시작한 후 5년가량은 하루 18시간씩 일을 했다. 두 시간은 운전을 했고 두 시간은 식사를 했으니 그 시간을 제외한다면, 월화수목금토일 평균 14시간을 일했다. 자주 표현하는 말이지만, 나는 호랑이 등에 매달려 달리고 있었다. 호랑이 등에서 내려오려면 호랑이를 죽이든지 내가 죽든지 해야 한다. 나는 호랑이를 죽이고 내려올 자신이 없었는데 어느 날 마음을 먹고 그 후에 닥칠 모든 일을 감당하기로 했다. 그렇게 매장 일을 내려놓았다. 그러나 출판을 하면서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아 다시 호랑이 등에 탄 기분이었다.


나를 움직인 것은 돈이다. 돈을 벌려고 혈안이 되었던 거라면 얼마나 좋을까. 은행 돈을 갚기 위해 온갖 애를 써야 했다. 거대한 은행 대출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렸다. 대출에서 자유로워진다면 나는 책을 판매할 때 들어오는 조금의 수익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 그러니 그때까지만 달리자. 주체적으로 움직이고 싶다는 이상적인 자존심은 내려놓고 어딘지 모를 곳으로 내달렸다. 그리고 5년 만에 이전 거래처의 미수금과 은행 대출 2억을 모두 갚고 2022년부터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지내고 있다.


팀 페리스의 '4시간'이라는 책에는 그가 하던 일을 줄이고 줄여서 일주일에 4시간만 일하는 삶을 만들었다는 전설이 소개되어 있다. 나는 2013년부터 그 책을 책상 옆에 놓고 몇 번을 읽었는지 모른다. 내가 상상해 마지않던 일을 현실에서 이뤄낸 사람이 있다는 걸 알고 그가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알고 싶었다. 주변의 어떤 이들은 그 이야기는 허튼소리라고 나를 타일렀다. 정신 차리라는 말이었다.


2022년의 어느 날부터는 통장에 돈이 남아있었다. 매달 여기저기서 돈을 메꿔 통장에 넣는 족족 대출금을 갚는 데 사용했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으니 계좌에 현금이 남아있는 것이다. 이러면 이제 생활이 되겠구나.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일을 계속 열심히 하면 대출금을 갚은 만큼 수익으로 쌓이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일은 더 하지 말자라고 다짐했다. 일이라고 한다면 내가 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외부의 힘으로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을 일이라고 생각했다. 회사에서 종업원으로 하는 일도, 대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도 나에게는 모두 일이었다.


주체적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한다면 그것은 나의 상식에서는 더 이상 일이 아니었다. 시간과 애정을 쏟는 것에 일이라는 단어를 나는 붙이고 싶지 않았다. 일이라는 것은 관찰하고 탐구하는, 공부하는 시간일 뿐이다. 처음에는 책을 만드는 일도 일이라고 생각했으나 어느 순간부터는 더 이상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대로, 내 속도대로, 하고 싶어 하는 것을 행동한다면, 그것은 일종의 놀이가 아닌가. 놀이에는 의무가 없다.


내가 만든 열 권의 책은 서점에서 판매되고 있었고 나는 그 수익으로 생활을 했다. 하루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시간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 시간에 애정하는 글쓰기를 해야겠다고, 에세이를 한 권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2023년 11월부터 2025년 2월까지 에세이를 쓰는데 나의 모든 시간을 사용했다. 마치 업무를 하듯 하루 8시간 이상 의자에 앉아 글을 썼다. 2024년 7월부터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평소에 운영하던 유튜브도 중지하고 오로지 글쓰기에만 몰두했다. 그래도 일상에는 문제가 없었다. 팀 페리스가 말한 일주일 네 시간이 나에게는 한 달에 30분으로 줄어들었고 남는 시간은 애정하는 것으로만 채웠다.


놀고 싶다는 농담은 정말이지 농담으로만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언제든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다는 사실이 더 이상 남의 이야기는 아니다. 적어도 나에게는 현실이 되었다. 큰돈을 벌 생각은 없다. 나의 농담은 이제 애정하는 일을 하면서 소소한 삶을 어떻게 다채롭게 꾸밀 수 있을까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중이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