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오해하기 쉬운 말

by 윤현민

흔히 놀고 싶다고 하면 '내 마음대로'하고 싶다는 것과 같은 의미로 생각하기도 한다. 여기에는 즉흥적으로, 하고 싶은 대로, 혹은 제한 없이라는 단서가 늘 따라다닌다. 그래서일까, 나의 20대는 마음대로였다. 학과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고 나는 거의 항상 컴퓨터를 조립하거나 컴퓨터에 문제가 생긴 친구들을 도와주러 다녔다. 때로는 홈페이지를 만들어 부업을 했고, 미디로 음악을 만들거나 사진을 찍으러 다녔다.


이렇게 마음대로 하고 싶은 걸 하며 대학 생활을 했지만, 정작 나는 마음대로가 어떻게 하는 건지 잘 몰랐다. 그저 컴퓨터를 잘 다루는 것, 사진을 잘 찍는 것, 홈페이지를 잘 만드는 것처럼 피상적인 기술에 몰두할 뿐이었다. 하다 보면 뭐라도 되어있겠지 싶었다. 대학을 졸업하면 무얼 할지 아무런 계획도 없었으므로 나는 현실을 즐기고만 있었다. 하지만 나는 정말 이런 피상적인 일을 좋아하는 걸까, 늘 모자란 느낌이었고 의심이 들었다.


사진을 찍어. 그래 좋아. 내가 좋아하는 일이고 잘하는 일이기도 해. 그래서 이걸로 뭘 할까. 나는 이 질문에 답할 수 없었다. 그냥 찍고 마는 거지. 잘 찍으면 좋고 아니면 말고. 나중에 전시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막연함만 있었다.


사진 찍는 것을 좋아했지만 막연함은 늘 따라다녔다. 고민은 오래 이어졌다. 이 기술로 돈을 벌면 나에게 진정한 의미나 가치가 될까. 아니면 그 너머에 뭐가 더 있는 걸까. 나는 가끔 대학교 기숙사 앞에 걸려있는 커다란 산봉우리 사진을 보면서 저런 사진을 찍으면 나는 정말 의미 있다고 생각하게 될까, 고민이 되었다.


좋아한다고 믿었던 사진, 컴퓨터, 음악은 시간이 지날수록 독서, 글쓰기, 게임등으로 교체되었다. 애호하는 것들은 내 마음속을 마음대로 들락거렸다. 어쩔 때는 취미처럼, 어쩔 때는 본업처럼 구분이 없었고 마음 가는 대로 하다 보니 이리저리 부유하는 기분도 들었다. 겉도는 기분, 나는 그게 기분 나빴다.




좋아하는 일을 해도 의미가 없다고 느껴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궁금해졌다. 나는 어디에 의미를 두고 살았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다지 영민하지 않아 조건 반사와 무조건 반사로 삶을 살다 보면 위험한 것은 피하고 좋은 것은 계속하는 단순한 삶이 되어버린다. 나는 이런 상황에 지쳐있었다. 그 너머에 있는 것을 찾고싶었다.


나는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은 그만두었다. 나는 누구일까, 자기다움을 깨달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더 오래 좇아 다녔다. 그것은 결국 삶에 대한 자신의 가치관을 좇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식상한 '가치관' 말이다.


가치관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당신이 '어디에 가치를 두고 있는지'를 묻는 질문이다. 가치관은 익숙하지만 가치는 그렇지 않다. 어디에 가치를 두며 살아가는가를 물으면 가치관에 대해 물을 때보다 조금은 신선하게 느껴진다.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우리는 이익과 가치 사이에서 결정을 내린다. 일생을 걸쳐 우리의 선택은 이익과 가치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한다. 이 둘은 언제나 중첩되어 있어서 하나가 커지면 다른 하나는 작아진다. 그렇더라도 우리 삶의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는 항상 자신의 가치관이 반영된 결정을 내린다.


나는 어디에 가치를 두고 있었을까. 나에게 그런 게 있던가. 나는 무얼 할 때 가치를 느낄까. 꽤 오랫동안 탐구를 했다. 탐구를 하는 내내 글로 썼다. 나는 어땠는지, 어떤 사람이었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감정을 사랑하는지. 그리고 어떤 것을 추구하는지를 관찰했다. 자기다움에 대해 생각한 후 몇 년이 지나도록 탐구를 멈추지 않았다. 지금껏 어떤 일을 좋아하는지 피상적인 것에 몰두해 있었다면 이제는 내면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가르치고 배우는 일에 관심이 있었다. 배울 것이 있으면 급여를 적게 준다 해도 나는 늘 그쪽을 선택했다. 내가 아는 지식이 있으면 사람들에게 공유하는 것에서 기쁨을 얻었다. 내면의 성장과 더불어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것에 중요한 가치를 두는 사람이었다. 이 두 가지 축이 어려서부터 나를 계속 앞으로 이끌고 있었다.


내면의 가치관을 확인하고 난 이후로 나는 좋아하는 일이든 직업이든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일을 하든지 나의 가치관이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 가치관을 잘 지켜나갈 수 있으면서도 내가 좋아할 만한 일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통기타 커뮤니티를 만들어 사업을 일구었고 사람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교재를 만들었고 유튜브에 영상을 만들어 올렸다. 가치관이 작동하기 전에는 그저 통기타를 치는 일에 불과했으나 그 후로는 사람들의 실력이 성장하는 것에 관심이 생겼다. 그리고 그 일을 열심히 하게 되었다.


그래서 삶의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으면 사진을 찍는 일도 음악을 하는 일도 때로는 무가치하게 느껴진다. 나는 사진을 찍어. 왜? 사람들에게 세상이 아름답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거든.이라는 말을 할 수 있게 된다. 가치가 사람을 움직인다.


나는 오해하기 좋은 말이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이미 가치관이 정립되어있는, 그래서 어느 정도 무엇을 하고 살아야겠다는 감각을 가진 사람만이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좋아하는 일을 잘못 이해하고 삶과 관련이 없는 것들을 선택한다. 좋아하는 일에는 언제나 그 너머에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의미를 발굴했을 때 비로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조언 대신 어떤 가치관으로 살 것인지 묻는 것이 먼저다.




그리고 나면? 그제야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어떤 일을 하던 그 일에 자신의 가치관이 배어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이전까지는 자신의 취향이나 선호하는 일에 의미를 두지 못했어도 이제는 아닐 것이다. 내가 무얼 원하는지 알기에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없는 몸이 되었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리고 '좋아하는 일'이라는 게 피상적인 걸 말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기에, 아무렇게나 행동하지도 않을 것이다.


'마음대로'라는 말을 쓰려다 여기까지 왔다. 나를 알면 마음대로가 더 이상 그 마음대로가 아니게 된다. 규율을 갖지도 않았는데 선을 지키며 과욕하지 않는다. 내면의 가치가 나를 꽉 잡아주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은 이제 아무런 불안함이 없다. 좋아하는 일이 없어서 걱정할 이유도 없다. 자신의 가치관이나 애호에 따라 무엇이든 선택하면 내면의 가치관이 항해를 시작할 것이다. 안정감은 이렇게 찾아온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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