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아내가 비빔국수를 직접 만들어 식탁에 올려 놓았습니다. 조금은 매콤한 것이 입에 당긴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예전에도 아내가 해주던 비빔국수였는데 최근 3년 간 코로나 2차 접종 후유증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평소에 잘 하던 음식 요리를 할 기운도 잃어 버렸던 터라 이렇게 맛있게 만들어 주니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였습니다. 아내가 비빔국수를 준비하기 직전에 밥 한 그릇을 먹었지만 아내의 정성에 반할 수 없어 비빔국수 한 그릇을 또 맛있게 먹었습니다. 역시 맛이 좋다면서 고마운 마음을 표시했더니 아내의 표정이 매우 밝아집니다. 요리 실력이 좋아서 제가 어딜 가도
"우리 집사람 요리 실력정말 좋습니다. 돌아가신 장모님 영향이 큰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집사람 진짜 예쁩니다."
누가 봐도 팔불출 같은 발언을 하여 좌중의 헛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눈치없는 사람처럼 말했던 것이지요. 누가 물어 봤나 하는 표정들이었지요. 음식 솜씨 자랑하는 것도 눈꼴사나운 일인데 마누라 얼굴 예쁘다고까지 자랑하니 더 듣기 싫었겠지요. 그런 심정을 제가 왜 모르겠습니까만 그냥 한번 웃어보자고 농담 식으로 했던 게지요. 그래도 그렇게 둘러 앉아서 팔불출 같은 말을 하고 눈총을 마구 받았던 시절이 좋았습니다. 아내가 지금처럼 코로나 접종 후유증으로 애를 먹고 있어서 말입니다. 다행히도 최근 차도가 있어서 고마울 뿐입니다. 아내는 바깥 출입을 극도로 자제하다가 몇 년만에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자리였던 제 출판기념회에 참석하여 가족 대표로 인사말을 정성껏 해서 참석하신 사람들의 큰 박수룰 받았습니다. 말주변이 없다고 몇 번이나 사양하다가 그야말로 정성껏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아내가 비빔국수를 준비할 때 제가 곁에서 보조를 했습니다. 비빔국수에 들어가는 채소를 씻고 손질하거나 냉장고 깊숙한 곳에 있던 국수를 꺼내 올려 놓고 그 외에도 아내가 신호를 보내면 그에 맞는 각종 재료를 눈치껏 내놓았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제 어린 시절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저는 아무리 반복해도 지겹지 않을지 모르지만 듣는 아내는 너무나도 지겨운 일일 테지요.
"있잖아. 우리 집에선 지금 당신이 준비하는 이런 비빔국수를 먹은 기억이 없어. 어머니가 국수를 삶아서 큰 그릇에 담아 놓으면 간장이나 사카린을 넣어 맛을 조절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그것이 참 맛있다고 하니 어머니께선 정말 신난 표정이셨거든. 내가 어릴 때부터 워낙 식성이 좋고 까탈스럽지 않았기도 하지만 어머니는 나한테는 지극정성이었고, 내가 맛있다고 말만 하면 국수든 뭐든 진짜 많이 내놓았던 것 같아. 그래도 끝까지 다 먹고 어머니가 밭에 가시면 난 마루에 큰 댓자로 뻗어 잠들어 버린 일도 있었지. 그리고 잠에서 깨어 나서 소화가 좀 되었다 싶으면 들에 가서 어머니를 도와 드리기도 했지.
그런데 어머니가 겨울 내내 남의 집 배추밭에 가셔서 허리 춤에 짚을 가득 묶은 상태에서 허리를 숙여 월동배추 묶는 작업을 해서 받은 품삯을 고이 고이 보관해 두었지. 언젠가 어머니가 쌀 뒤주에 넣어 두었던 것을 아버지가 노름한다고 몰래 가져갔던 것을 내가 목격하여 그 다음부턴 어머니께 절대 쌀 뒤주에 두지 말라고 말씀 드렸더니 그 다음부턴 헌옷에 둘둘 싸가지고 농 깊숙한 곳에 숨겨 두었지. 아버지는 그것을 찾을 수가 없었고 어머니께선 가끔 그 돈을 꺼내 보이시면서 내 등록금이라고 말씀해 주셨어. 그땐 그것이 얼마나 힘들게 모은 돈인지 몰랐다. 그냥 쌀이나 시장에 내서 사온 돈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지. 그런데 여동생이 옆에서 과자 사먹는다고 용돈을 조금 달라고 하니 어머니께선 펄쩍 뛰시면서 여동생을 마구 타박했어. 물론 나중에 여동생에게 과자 사먹을 돈을 주시긴 했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너무 큰 리엑션으로 여동생을 꾸중하여 내가 미안할 정도였다. 나와 여동생 사이가 좋았기에 망정이지 여동생이 어린 마음에 얼마나 상처를 받았을까 싶어.
어머니도 그때 당시 진짜 힘들었을 것 같아. 아버지는 가정 살림을 돌보지 않고 도박에 술판에 그렇게 무책임, 무능력, 무관심의 가장이었고,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해 글자도 모르는 여자 몸으로 우리 3남매에 아버지까지 책임졌으니 그 삶이 얼마나 고달펐을까. 내가 비록 그 동리에서 효자라고 크게 칭찬을 받긴 했지만 효자면 뭐해 어머니를 위해 뭘 할 수 있어야지. 지극 같으면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어머니께 돈이라도 모아 드렸을 텐데."
대충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니 제 말이 이렇게 장황하네요. 그래도 아내는 비빔국수를 준비하면서 제 말을 끝까지 들어주고 리엑션도 정성껏 해줍니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입니다.
"난 돌아가신 어머님 생전 모습을 뵌 적이 없어서 잘 모르지만, 어머니 당신께선 그래도 둘째 아들이 공부도 잘 하고 효자라서 그렇게 힘들다고 생각하진 않았을 것 같애. 지금 내가 몸 상태가 썩 좋지 않아도 우리집 아~들 3남매가 모이면 뭐든 해먹이고 싶어서 애를 쓰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 어머니는 당신 얼굴만 봐도 좋아하지 않았을까. 겨울 내내 남의 배추밭에 가서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해도 이돈 받아 아들 고등학교 대학교 학비에 보탠다는 마음으로 기꺼이 이겨내지 않았을까. 내가 이렇게 우리 아이들 엄마가 되어 보니 그럴 것 같아. 힘들어도 힘들지 않을 것 같아. 어머니 마음도 그러지 않았을까 싶어. 잘을 모르겠지만."
아내는 제가 기분 좋으라고 좋게 말했지만 저 스스로는 단 한번도 공부를 잘 했다고 샹각한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군대 생활 전역 2개월 앞두고 55세 그 좋은 나이에 세상을 버리신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그 어떤 것이라도 귀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이야 한없이 큰 법이지만 그래도 우리 어머니의 희생과 헌신 덕분에 제 현재 삶이 여유롭고 행복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쩌면 제 삶 주위에 어머니가 늘 계셔서 도와 주시는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큰 어려움이나 고통을 겪지 않고 살아왔기 때문입나다. 언젠가 우리가 비교적 넓은 평수로 이사한 직후에 어머니가 꿈속에 나타나셨습니다. 꿈속에서 아내는 몇 걸음 저만치 먼저 걸어가고 어머니와 저는 나란히 걷고 있었는데, 어머니께서
"야~야, 니 아가한테 잘 해래이. 암만 봐도 우리 아가 진짜 고맙다 아이가. 저렇게 니하고 아~들 3남매 챙긴다고 얼마나 고생 많노. 니도 재산이 있나, 뭐 가진 게 있나. 그래도 아가가 저리 고생해서 이렇게 큰집을 마련했다 아이가. 우짜든동 니 아가한테 잘 해래이. ....,:
라고 하시기에 제 한마디 했지요.
"어머니, 저한테 말하지 말고 집사람한테 직접 말하이소. 저 앞에 걸어가고 있다 아입니꺼. 어머니 직접 말하믄 집사람이 안 좋아하겠습니꺼.저는 어머니 말씀 깊이 새겨들으이까네 집사람한테 한 말씀만 하시만 집사람도 좋아할 것 같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꿈속에서 제 말에 동의하듯이 급히 걸음을 옮겨 아내에게 다가가는데 그만 꿈을 깼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을 전했더니 아내가 오히려 고마워하였지요.
아내 말을 들어보니 엄마는 아이를 위해 어떤 희생과 헌신을 해도 힘든 줄 모를 것 같습니다. 이미 돌아가셔서 확인할 방법도 없지만 우리 어머니도 살아 생전에 저와 형님 여동생 이렇게 3남매를 위해 온몸을 던져 희생하셨을 때 그런 마음이었을 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