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독서회에서 누군가의 고백을 듣고
한국의 50대 남성들이 가장 많이 선택했다는 '그리스인 조르바'에 행복에 관한 언급이 여러 번 나옵니다. 그중에 하나.
"우리 두 사람은 말없이 난로에 둘러앉아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행복은 소박하고 단순한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다시 한번 확신할 수 있었다. - 말하자면 포도주 한 잔, 밤 한 톨, 별거 아닌 난롯불, 으르렁거리는 바닷소리, 그런 것이면 충분했다."
이번 주 시니어 독서회 대상 도서라서 회원들과 함께 읽었습니다. 매월 첫, 셋째 주 금요일 오전 11시 마을카페에서 정기적으로 만나 독서회를 진행하고 있는데, 벌써 3년 차입니다. 원년 멤버 중에 세 분이 개인 사정으로 그만두셨고, 그 자리엔 신입회원들이 자리를 채웠습니다. 독서 토론을 마치고 나면 곧장 점심 식사가 이어지는데. 작년까지만 해도 외부에서 시켜 먹거나 식당으로 몰려 갔었지요. 그런데 올해부터는 카페를 운영하시는 회원 두 분께서 직접 음식을 준비하여 식사를 마련합니다. 어떨 때는 독서 토론보다 점심 식사 시간이 더 즐겁고 행복합니다.
각자 돌아가면서 자유롭게 의견을 내는 형식이라서 분위기도 여유롭습니다. 굳이 먼저 말하겠다는 사람도 별로 없고, 자신의 의견만 강요하는 분위기가 아니지만 그래도 참석자들이 자신의 인생 경험에 비추어 풍부한 내용을 밝힙니다. 어느 여성 회원께서 소감을 내놓더군요.
"여기 그리스인 조르바에 나오는 행복에 관한 멘트 저도 공감이 많이 갔습니다. 매일 아침 베란다 의장에 가만히 앉아 커피 한 잔을 놓고 아침해가 떠오르는 순간 진짜 행복감을 많이 느낍니다. 세상 사람들의 행복에 대한 생각이나 관점이 다양하겠지만, 제 입장에선 그 순간이 진짜 행복을, 아주 사소할 수도 있는데도 깊은 행복감을 느꼈습니다. 작가가 '별거 아닌 난롯불'도 행복의 조건으로 충분했다'라는 언급도 충분히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이렇게 나이를 먹으니까 그렇게 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평소에 입성도 곱고 말씨도 나지막하고 조용 조용하셔서 우아한 분위기가 여실히 느껴지는 분이라 말씀 내용도 우리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듯합니다. 저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분의 말씀에 동감하는 표정을 지었지요. 아침 해뜰 때 베란다에 앉아 커피 한 잔을 하는 순간의 행복에 다들 충분히 공김이 가는가 봅니다. 대부분 비슷한 표정을 보이시기에 제가 한마디 보탰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00님께서 금방 말씀하신 아침 해가 뜨는 순간 베란다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놓고 누리는 여유 그건 진짜 행복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에서 그 순간에 그런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00님은 그래도 경제적 여유도 있으시고 주위 상황도 넉넉하시니까 어쩌면 그런 행복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면에서 00님의 현재 위치는 자본주의 우리 사회에서 99,95% 위에 자리잡고 있을 것입니다. 순전히 제 주관적인 판단입니다만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는 사람은 그 순간 새벽일 나가려고 정신없이 바쁠 테니까요."
어쩌면 제가 그런 말을 해서 분위기를 망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참석자들의 대부분의 공감을 끌어냈습니다. 그리고 00님도 제 말에 동의해 주셔서 우려나 걱정은 금방 사라졌지요. 굳이 상대방의 마음에 초치는 그런 발언을 할 필요는 없었는데 그냥 제 솔직한 마음을 내놓을 뿐이지요. 오랜 기간 독서 모임을 함께 하면서 서로의 생각을 깊이 들어주고 존중하는 분위기를 믿고 그랬을까요.
현재 우리 대한민국은 세계적인 경제 대국이라는 평가는 받습니다. 비록 영토는 좁고 게다가 남북 분단이 되어 휴전 상태의 실로 예민한 대치 상태이긴 하지만 무역 규모 10위권 대의 강대국 반열에 올라서 있지요. 일제와 6.25라는 정말 끔찍한 근현대사를 통과하면서 허허벌판에서 근대호, 단기간의 강력한 압축성장으로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끌어내면서 극빈국가가 선진국으로 진행하는 모범 사례로 꼽히기까지 합니다. 아쉬운 것은 물질적 성장에 비해 정신적 성장이 따라가지 못해 심각한 불균형을 겪고 있고, 부익부빈익빈의 심화에 따른 극심한 빈부격차로 고통을 겪고 있는 계층이 많이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사람들에 비해 매일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행복의 조건은 아무래도 경제적 여유가 전제되어야 하겠지요. 외형적인 경제 성장에 전력을 기울이고 그 덕에 세계 무역 강대국 대열에 올라섰고 엄청난 물질적 풍요도 누리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이 물질적 풍요에 너무 치우쳐 아주 사소한 것에 고마워하고 행복해하는 것은 놓치는 듯합니다. 행복에 대한 생각은 사람들마다 다르긴 하지만 아주 사소한 것에도 행복을 느낄 수는 있다는 점은 대부분 공감할 겁니다.
최근에 화제가 된 호르몬이 있습니다. 바로 감동할 때 분비되는 호르몬 다이돌핀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삶을 이야기할 때 즐거움을 느끼는 법이지요. 그래서 엔돌핀은 기분이 좋을 때, 기적의 호르몬 다이돌핀은 감동적일 때 나오고, 아드레날린은 기분이 나쁠 때 분비된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아드레날린이 나오는 게 싫어 평온만을 추구하면 기적의 호르몬 다이돌핀은 맛볼 수가 없답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이야기를 신나게 할 때 엔돌핀이 분비된다고 하니 남으로 하여금 마음껏 이야기하개 하면 정말 좋은 일하는 것이지요. 하기사 남의 이야기를 끝도 없이 들어준다는 것이 어디 그리 쉽던가요. 본인은 신나게 떠들지만 듣는 이는 별로 재미가 없을 땐 난감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누군가가 자신이 하고픈 말을 마음껏 했을 때 엔돌핀이 분비될 것이고, 감동받을 때 다이돌핀이 분비된다고 하니 앞으로도 더욱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생각을 마음껏 말할 수 있도록 하려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을 어떻게 감동시킬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