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 싶었죠
학창 시절 아버지께 대들었던 기억들
색소폰 동호회에서 잠깐 쉬는 시간에 회원들과 둘러 앉아 담소를 나누는데 갑자기 학창 시절 에피소드가 주요 화제가 되었습니다. 저도 제 고교 시절 아버지께 대들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풀어나갔습니다.
"저는 둘째라 장남인 형과 달리 돌아가신 아버지와 정말 충돌이 많았습니다. 무능하고 무책임한 것도 용납하기 어려운데 글을 모른다고 어머니를 은근히 무시하는 것 같아 아들로서 참을 수가 없더군요. 그리고 어머니는 아무 대꾸도 않고 그냥 들에서 하루 종일 일만 하시면서 생고생만 죽도록 하셨지요. 제 입장에선 아버지의 행동 하나 하나가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더군요. 특히 우연히 우리집에 모인 마을 아지매들 앞에서 어머니가 요리 실력도 떨어지고 무식하다고 망신을 주는 장면을 보고 제가 폭발했지요.
"도대체 아버지는 남자 맞습니까. 사람들 앞에서 아무 죄도 없는 엄마를 망신을 그리 줘도 됩니까. 아버지는 얼마나 유식하기에 그럽니까. 또 어머니가 그렇다 치더라도 그건 어머니의 죄가 아니지요. 학교를 안 보내 주신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책임이 큰 거 아닙니까. 그리고 아버지도 남자가 되가~ 그라는 거 아니잖습니까. 진짜 남자 맞습니까? 그라고 음식 솜씨 관련은 어머니 자존심을 완전히 상하게 하는 건데, 그걸 굳이 이 많은 사람 앞에서 하셔야 합니까? 도대체 이기 뭡니까? "
마당에 떡 버티고 서서 강력하게 따지며 대들던 저를 보고 아버지가 격노하셨지요.
"공부 좀 한다고 오냐 오냐 했더니 이젠 애비한데 달려드는 놈이 됬네. 저기 커서 나중에 뭐가 될 끼고. 지금 니 그런 행동이 나한테 할 수 있는 기가?"
"있지예. 저는 낭중에 크만 절대 아버지처럼 무책임하게 무능한 가장은 안 될 낍니다. 집에 남자는 가정을 일구면 그날부터 모든 책임을 끌어안아야 한다꼬 생각합니다. 집 식구 허물이나 들추고 사람들 앞에 망신 주는 거 그거 남자가 할 일입니까? 전 절대로 이해가 안 됩니다. 아버지께서 그런 거 말고 어머니를 지키고 보호할라 캐야 되는 거 아입니꺼?"
제가 바락 바락 대들자 분노한 아버지는 갑자기 집 뒤안으로 가서 지게 작대기를 가지고 와서 제 양 어깨를 내리칩니다. V자 모양이 끝에 달린 지게 작대기를 머리에 잘못 맞으면 심각한 부상도 생길 법한데, 저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마당에 딱 버티고 서서 아버지께 대들었지요. 어머니가 너무 불쌍해서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더군요. 물론 아버지께서 늘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머니께 잘 하신 적이 훨씬 많습니다만 그래도 그 순간은 제가 참지 않았지요. 지게 작대기로 몇 대 맞았을 때 어디선가 형님이, 덩치도 정말 컸던 형님이 나타나 아버지 허리를 꽉 끌어안고 말렸지요. 그러면서 저에게 눈짓으로 이 자리를 빨리 뜨라고 하기에 저도 그대로 도망쳤습니다. 같은 마을에 큰 외삼촌과 작은 이모가 살았는데, 이모네 집으로 피신했습니다. 그리고 이모께 아버지를 신랄하게 일러 바쳤습니다. 패륜아적인 행위였지요. 지금 생각하면 정말 부끄럽고 죄송스럽기만 합니다.
둘째 이모는 당시 무당이면서 주위에서 보기 어려운 진짜 미인이셨습니다. 굿을 하고 나면 사과나 배 같은 과일을 한 가득 담아서 우리집에 와서 주셨고, 어머니께 몰래 용돈도 많이 주셨지요. 그리고 아버지께서 외가 식구들과 썩 그리 친하지 않으셨는데, 둘째 이모와는 소통을 잘 하셨습니다. 이모 말씀을 잘 들으셨지요. 둘째 이모네 집으로 피신한 그날 저녁밥을 맛있게 먹고 방에서 설핏 잠이 들었을 때 이모네 대문간으로 아버지가 들어오는 인기척이 들렸습니다. 저는 자는 척해야 했지요. 그런데 아버지와 이모의 대화 소리가 들려옵니다.
"처형요. 우리 아~ 여~ 왔지요. 자~ 저녁밥은 먹었습니꺼?"
그러자 이모가 답합니다.
"최서방요. 둘째 자~가 즈그 엄마 핀 든다고 최서방한테 바락바락 달려들었는갑지요. 그런데 자~는 인자 아~ 아인교. 세상 물정 모르는기 즈금 엄마 생각한다고 저리 했으니 최서방이 너그럽게 받아주이소. 나도 오늘 밤에 자~를 여기 재우고 낭중에 찬차이 갈차주고아침에 바로 학교로 보낼 끼끼네 너무 걱정하지 마이소. 그라고 큰아 시키가 자 가방 여~로 갖다 주이소. 지금 잠든 지 한참 됬으니 걱정 말고 돌아가이소."
아버지도 제가 잠 안 자는 거 다 아셨겠지요. 그래도 이모 말씀을 듣고 집으로 가셨습니다. 조금 있으니 형님께서 제 가방을 들고 왔습니다. 가방이 아닌 책보자기였지요. X자로 질끈 매고 학교까지 달려가도 잘 안 풀리던 그 책보였습니다. 이모도 그렇게 말해 주고, 형님도 집으로 돌아가 제 변명을 많이 했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그날 소동은 끝났습니다. 동네에서 소문이 금방 났습니다. 잘 했다는 사람과 공부 시켜봐야 아무 소용없다는 의견으로 갈렸다지요. 그렇게 대들었던 일이 참 많았습니다. 특히 어머니를 무시한다 싶으면 그 뒤에도 많이 대들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지금 이렇게 나이를 먹고 보니 왜 그렇게 부끄럽고 죄송한지 모르겠습니다. 그 당시엔 분명 제가 정말 잘 한 거 같은데, 지금 생각하면 너무 너무 죄송하기만 합니다. 혼자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냥 고개를 푹 파묻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집 큰아들과 최근 대화를 나누다가 이런 고백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야야~ 내 있잖아. 느그 할아버지께 정말 많이 대들었다. 그땐 느그 할머니를 보호하고 지킨다는 마음으로 당당하게 생각했는데 지금 돌아보니 정말 부끄럽다. 지금 큰아 니가 나한데 그 옛날 내가 하던 것처럼 달려들면 내가 과연 참을 수 있을까. 못 견딜 거 같⁷아. 도저히 자신이 없다. 그래서 난 큰 아 니캉은 그런 일이 없도록 노력할라 칸다. 아무리 생각해도 느거 할아버지께 큰 죄를 지은 것 같다. 참말로 부끄럽다."
그러자 큰 아들이 말했지요.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번도 말대꾸 하지 않고 효성이 지극한 우리집 큰아들입니다. 늘 저와 아내에게 지극정성 효성을 다한 큰아들입니다. 물론 요즘엔 가끔 아내와 언쟁을 하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우리 부부에겐 세상 그 어떤 아들보다 효자입니다.
"아버지께선 우리 3남매에게 정말 잘 해주셨습니다. 워낙 책임감이 강하시고 어머니와 우리들 3남매를 위해 늘 최선을 다하셨기에 그 옛날 할아버지처럼 하실 리가 없습니다 지금껏 그렇게 하시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버지께 그럴 일이 절대 없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돌아가시고 세월이 한참 흐른 뒤 마을회관에서 아지매들 앞에 부산에서 가져간 음식을 앞에 넣고 담소할 때 어느 아지매가 하신 말씀
"야야 니가 효자라 카는 거 세상 사람들 다 알지만서도 솔직히 느거 엄마가 느거 아부지 진짜 좋아했데이. 느그 아부지 말은 그캤을지 몰라도 니 없을 때 느거 엄마한테 진짜 잘 했다 아이가. 니는 그 순간만 보고 느그 엄마 핀든다꼬 그랬지만서도 느그 엄마는 느그 아부지 진짜 좋아했고 니는 모른다. 그라고 인근에 느그 아부지만한 미남 있었나."
이 이야기를 색소폰 학원에서 털어놓으니 동호회원들께서 공감을 해주셨습니다. 저를 좋게 봐주신 것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