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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청의 힘: 말하기보다 듣기가
어려운 시대

by 길엽




현대 사회에서 소통의 기술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소통의 핵심은 말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잘 듣는 것이다. 경청은 단순히 상대방의 말을 가만히 듣는 수동적 행위가 아니다. 진정한 경청은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적절하게 반응하는 적극적 듣기의 과정이다.


경청의 본질은 말 자체를 해석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말과 말 사이에 스며든 감정을 읽어내고, 상대방의 목구멍까지 차오른 절박한 마음까지 헤아리는 깊이 있는 이해의 과정이다. 이를 맥락적 듣기라고 표현해도 무방하다. 상대방이 전달하고자 하는 진짜 메시지는 종종 말의 표면이 아닌 그 이면에 숨어있기 때문이다.





말하기에만 급급한 사회


그런데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남의 말을 들어주는 데 유독 인색한 것이 현실이다. 사람들은 경청보다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에 더 집중한다. 대화의 자리에서도 상대방이 말을 마치기 전에 이미 자신이 할 말을 준비하고 있다. 진정한 경청은 안중에도 없는 상황이 반복된다.


이러한 현상의 배경에는 말의 총량이 듣는 총량보다 적으면 불안해하는 심리가 자리잡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말을 많이 해야 타인에게 인정받을 것이라는 믿음에 사로잡혀 허우적거린다. 침묵이나 적은 말은 마치 자신의 존재감을 약화시키는 것처럼 느껴진다. 말을 적게 하면 공연히 손해를 보는 것 같은 박탈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리더들과 소통의 달인들을 살펴보면, 그들의 공통점은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잘 듣는 능력이었다. 경청을 통해 상대방의 진짜 필요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적절한 반응을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소통의 핵심이다.



듣기가 만드는 변화의 힘


경청의 힘은 여러 차원에서 발휘된다. 우선 개인적 관계에서 경청은 신뢰를 쌓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누군가가 내 말을 진심으로 들어준다고 느낄 때, 우리는 그 사람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반대로 상대방이 내 말을 제대로 듣지 않는다고 느끼면,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그 관계는 깊어지기 어렵다.


직장에서도 경청의 중요성은 더욱 두드러진다. 효과적인 리더는 부하직원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 그들의 고민과 아이디어를 진심으로 경청함으로써 조직 전체의 창의성과 생산성을 높인다. 반면 자신의 말만 하려는 리더 밑에서는 구성원들이 위축되고, 결국 조직의 역량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한다.


경청은 또한 갈등 해결의 열쇠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갈등은 서로의 입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발생한다. 각자가 자신의 주장만 내세우려 하고, 상대방의 말은 들으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진정한 경청을 통해 상대방의 관점을 이해하게 되면, 갈등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고, 창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진정한 경청을 위한 방법들


경청의 기술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몇 가지 구체적인 방법들이 있다. 먼저 상대방이 말할 때는 온전히 그에게 집중해야 한다. 스마트폰을 보거나 다른 일을 하면서 듣는 것은 진정한 경청이 아니다.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이며, 상대방이 충분히 말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


또한 상대방의 말을 중간에 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설령 상대방의 말에 반박하고 싶거나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고 싶어도, 먼저 상대방이 하고 싶은 말을 끝까지 들어야 한다. 그래야 상대방도 내 말을 들을 준비가 된다.


경청할 때는 단순히 말의 내용만이 아니라 감정도 함께 읽어내야 한다. 상대방이 화가 나 있는지, 슬퍼하고 있는지, 흥분되어 있는지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반응을 보여주는 것이다. "정말 힘드셨겠네요", "기쁜 일이군요"와 같은 공감의 표현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이 이해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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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하는 기술도 경청의 중요한 부분이다. 적절한 질문을 통해 상대방이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때 기분이 어땠나요?", "그 일이 당신에게 어떤 의미였나요?"와 같은 개방형 질문은 대화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경청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고 실천하는 것은 개인의 성장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발전에도 기여한다. 서로의 말을 진심으로 들어주는 문화가 확산되면, 사회 구성원들 간의 이해와 신뢰가 깊어진다. 갈등이 줄어들고, 협력이 증가하며, 전체적인 사회의 질이 향상된다.


결국 경청은 단순한 의사소통 기술을 넘어서 인간다움의 핵심이다. 타인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마음가짐에서 시작되는 경청은, 우리 모두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말하기에 급급한 시대에, 듣기의 가치를 다시 한번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진정한 소통의 시작은 입을 여는 것이 아니라 귀를 여는 것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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