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외 익을 때 반드시 교대해주겠소

신뢰 상실 -춘추 전국 시대 제나라 양공의 몰락

by 길엽


"참외가 익을 때 교대하겠소" - 군주의 최후 제양공의 비극 | 근친상간과 약속 불이행이| 내년 참외 때까지 기다려라" 오만함이 부른 비극적 결말 춘추시대 최악의 스캔들



약속 하나를 지키지 않아 목숨을 잃은 군주가 있다. 춘추시대 제나라의 제양공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참외가 익을 때 교대하겠다"는 사소해 보이는 약속이 어떻게 한 나라를 뒤흔들었는지 그 이야기를 들여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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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악무도한 군주


제양공은 기원전 697년 제나라의 군주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군주로서 갖춰야 할 덕목을 하나도 갖추지 못한 인물이었다. 그가 저지른 패악은 상상을 초월한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이복 여동생 문강과의 근친상간이다. 문강은 춘추시대 최고의 미녀로 알려져 있었는데, 제양공은 어릴 적부터 그녀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이는 당시에도 중대한 패륜 행위로 간주되었다.


기원전 709년, 문강은 정략결혼으로 노나라의 군주 노환공에게 시집갔다. 하지만 결혼 후에도 오빠 제양공과의 관계를 끊지 못했다. 노환공과 사이에서 네 명의 아들을 낳았지만, 그녀의 마음은 여전히 제나라의 오빠에게 가 있었다.



매제 살해 사건


기원전 694년, 노환공이 부인 문강을 데리고 제나라를 방문했다. 이 방문 중에 문강과 제양공이 다시 밀회하는 장면을 노환공이 목격하거나 눈치챘다. 노환공이 문강을 질책하자 제양공은 크게 분노했다.


제양공은 자신의 서자 팽생에게 암살 명령을 내렸다. 노환공이 귀국하는 길에 팽생이 "수레를 고쳐드리겠다"며 접근해 노환공을 수레에서 끌어내며 갈비뼈를 부러뜨려 살해했다. 겉으로는 수레 사고로 위장했다.

노나라가 이것이 암살임을 알아차리고 강력히 항의하자, 제양공은 비겁하게도 모든 책임을 아들 팽생에게 전가했다. 자신이 명령한 살인임에도 불구하고 "팽생이 멋대로 한 짓"이라며 팽생을 처형해 노나라에 사과의 뜻을 표했다.


이 사건으로 제양공의 도덕적 권위는 완전히 무너졌다. 근친상간, 매제 살해, 친아들 처형. 신하들과 백성들은 이런 군주를 더 이상 신뢰할 수 없었다.



"참외가 익을 때 교대하겠소"


기원전 687년, 제양공은 또 다른 문제에 직면했다. 생질인 위혜공 삭을 복위시킨 뒤 추방된 동서 검모가 주장왕을 부추겨 토벌군을 이끌고 올까 봐 걱정했다. 이미 노나라와의 관계도 악화된 상태에서 위나라까지 문제가 생기면 제나라의 안보가 위태로워질 수 있었다.


제양공은 대부 연칭과 관지보에게 명해 도성 임치성으로 들어오는 동남쪽 길목 규구를 지키게 했다. 파견을 명받은 두 사람이 물었다. "언제쯤이면 만기가 되어 돌아올 수 있겠습니까?"


당시 참외를 먹고 있던 제양공은 무심코 대답했다. "참외가 익는 내년 7월쯤 교대할 사람을 보낼 것이오." 당시가 7월이었으니, 1년 후 다시 참외가 익는 시기에 교대하겠다는 약속이었다.



배신당한 신뢰


연칭과 관지보는 규구에서 1년째 외롭고 힘든 경비 임무를 수행했다. 두 사람은 "참외가 익을 무렵 교대자를 보내겠다"는 약속만 믿고 오직 그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이듬해 7월이 왔다. 병사들이 잘 익은 참외를 바쳤다. 관지보는 참외를 보며 말했다. "참외가 익을 무렵이면 교대자를 보낸다고 했는데, 어째서 아무 소식이 없을까?"


두 사람은 심복 부하를 임치성으로 보내 상황을 파악했다. 하지만 돌아온 보고는 충격적이었다. 제양공은 도성에 없었다. 이복 여동생 문강을 만나러 곡 땅으로 나간 지 한 달이 넘었는데도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연칭의 눈빛이 험악하게 변했다. "우리는 집에도 가지 못하고 변방에서 갖은 고생을 하는데, 임금이란 자는 여동생과 음탕한 짓만 하고 있다니 참을 수 없다."


신중한 관지보는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자고 제안했다. 두 사람은 다시 사람을 보내 잘 익은 참외를 한아름 바치며 정중히 교대를 요청했다.


문강과 실컷 즐기고 돌아온 제양공은 이 요청을 받고 기분이 몹시 언짢았다. "교대자를 보내고 안 보내는 것은 나의 뜻이다. 네놈들이 어찌 감히 나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이냐. 내년에 참외가 익을 때까지 다시 기다려라!"


제양공은 오기를 부리며 연칭의 부하를 그 날로 쫓아보냈다. 자신이 한 약속은 까맣게 잊고, 오히려 신하들이 약속을 상기시키자 화를 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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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의 씨앗


규구의 병사들은 한결같이 낙담했다. 이미 마음이 제양공에게서 멀어진 연칭은 불같이 노했다. "내 기필코 이 패악무도한 자를 처단하리라."


관지보도 이제는 연칭과 행동을 함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대사를 도모하려면 반드시 새 임금 될 사람부터 정해놓아야 한다. 가장 적당한 사람은 공손무지다."


공손무지는 선군 시절 세자와 똑같은 대우를 받았지만, 제양공이 군위에 오른 후 모든 혜택을 박탈당했다. 어릴 적 싸움에서 제양공의 이마를 다치게 한 일로 끊임없이 핍박받고 있었다.


연칭에게는 좋은 카드가 있었다. 그의 누이동생이 제양공의 첩이었는데, 제양공이 문강과 어울려 지내느라 거의 돌보지 않아 후궁 연씨 역시 원망하는 마음이 깊었다. 연칭은 누이동생을 통해 공손무지와 손을 잡고 궁중의 정보를 손바닥 들여다보듯 파악했다.



사냥터의 복병


그해 11월, 제양공은 "내달에 패구산으로 사냥을 나갈 터이니 준비하라"고 명했다. 이 사실은 후궁 연씨를 통해 즉각 공손무지의 귀에 들어갔고, 다시 규구의 연칭과 관지보에게 전해졌다.


관지보는 신중하게 계획을 세웠다. "이웃 나라들 중에는 주공과 친한 제후들도 있다. 미리 고분 벌판에 우리 군사를 숨겨두었다가 주공을 죽인 후 도성으로 들어가야 뒤탈이 없을 것이다."


연칭은 군사들에게 "양식을 마련하여 패구산으로 갈 준비를 하라"고 명했다. 오랫동안 변방에 있던 군사들은 드디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며 뛸 듯이 기뻐했다.


그해 12월, 제양공은 패구산 사냥터로 출발했다. 하지만 그는 알지 못했다. 고분 벌판에 연칭과 관지보의 군사들이 숨어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사냥에 몰두하고 있을 때 갑자기 복병들이 나타났고, 제양공은 자신이 즐기던 사냥터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새로운 시대의 시작


연칭과 관지보는 도성으로 들어가 공손무지를 새 군주로 옹립했다. 하지만 공손무지의 치세는 오래가지 못했다. 그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백성들에게 살해당했다.


이 혼란 속에서 등장한 인물이 바로 제환공이다. 제환공은 제양공의 이복동생으로, 이 기회를 틈타 귀국했다. 그는 유능한 재상 관중을 등용하여 제나라를 안정시켰고, 결국 춘추오패의 첫 번째 패자가 되었다.

제양공의 패악이 만든 혼란이, 역설적으로 제환공이라는 위대한 군주를 탄생시킨 것이다.



역사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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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외 한 입이 부른 이 비극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약속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반드시 지켜야 하며, 특히 리더의 약속은 더욱 무겁다. 제양공은 "내년 참외가 익을 때까지 다시 기다려라"며 오기를 부렸지만, 그 오만함이 결국 자신의 목숨을 앗아갔다.


신의 없는 리더는 오래가지 못한다. 아랫사람이라고 약속을 소홀히 하면 신뢰가 무너지고, 신뢰가 무너지면 권력의 기반도 함께 무너진다. 2,500년 전 제양공의 교훈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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