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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단 Oct 16. 2016

문자를 날리는 세상

침선 수필

이사를 한 지 삼 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정리하지 않고 상자째 보관하고 있는 짐들이 여러 개 있다.    한국에서의 살림살이들을 정리하면서 버릴 수는 없어 상자에 담아 왔지만 꺼내 놓지 않고 차고 한구석에서 긴 잠을 자고 있는 짐들이다.   그러다가 평소에는 없어도 전혀 불편하지 않던 어떤 물건이 정말 간혹 가다 필요해질 때가 있는데,  분명히 나에게 있던 그 물건이 집안 구석구석을 뒤져도 보이지 않으면 찾다 찾다 결국 그 상자들 중 하나에 들어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 한바탕 뒤짐을 하게 된다.   


며칠 전도 그랬다.  버린 기억은 없는데 집안에서는 찾지 못한 그 물건을 찾으려 차곡차곡 쌓인 상자들을 들어내고 의심 갈 만한 상자 하나를 끄집어냈다.  그러다가 필요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꽁꽁 싸매 보관 중이던 다른 상자들과는 달리, 뚜껑을 가로질러 달랑 테이프 한 줄로 길게 붙여 놓은, 이삿짐 치고는 허술한, 상자 하나가 나왔다.  손잡이까지 달린 무늬가 요란한 상자인데도 '이런 상자가 있었나?' 싶게 무슨 상자였는지 기억이 도통 없다.   필요한 물건을 찾다 말고 갑자기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 궁금해졌다.   


안을 뒤져 보니 비닐봉지에 싸인 제법 큰 뭉치가 나오고,  그 안에는 편지들이 가득 들어 있다.   남편과 결혼 전에 주고받았던 편지들이다.  나도 그렇지만  모아둔 편지를 비닐봉지에 꼭꼭 싸서 결혼하면서 가져온 남편과 여태 가지고 있었으면서 잊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니 꺼내어 읽어 보지 않을 수가 없다.  11년이라는 긴 연애기간 동안 서로 주고받았던 그간의 얘기들을 봉투에서 꺼내자 시간이 멈춰 서더니 과거를 향해서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거의 매일 만났으면서 무슨 할 얘기가 그렇게도 많았는지,  만나서 주면 될 것을 우표 붙여서 부치는 것은 또 무슨 짓이 었는지.  그 당시 유행이었던, 매주 학보에 싸서 보낸 편지들부터 열 장이 넘어가는 장문의 편지까지,  지금은 희미해진 추억들이 결혼 2년쯤 전에 쓴 마지막 편지로 끝이 나있다.  ‘어떻게 된 일이지?  잃어버렸나?’ 하며 한참을 찾다가 언제부턴가 편지는 쓰지 않고 전화만 하기 시작했고 꽤 많은 전화료가 우리의 인생에 등장했었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편지를 주고받던 것과 똑같은 열정으로 해댔던 그 수많았던 전화통화들이 편지질의 종말을 가져온 것이었다.  이후로 남편뿐 아니라 누구에게도 종이에 편지를 써서 부쳐본 지가 언제인지 잘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전 일이 되었다.   


생각해 보니 연말에 보내는 카드 정도를 제외하고는 이젠 주로 전자우편을 이용한 편지와 카드를 보내고 있다. 그리고 우체통에는 각종 청구서와 광고문만이 채워져 있게 되었다.    바다 건너 멀리 사는 가족들에게도,  친구들에게도, 요즘은 전자메일이나 문자를 주고받으며 지낸다.   그리고 예전에 우체통을 뒤졌듯이 매일 시시 때때로 휴대전화로 편지가 왔는지 들여다보곤 한다.  게다가 한 술 더 떠서 문자가 도착할 때마다 알림음이 울려주니 즉각 확인이 가능하다.   시간이 걸려 도착했던 편지에서, 전화로, 컴퓨터 채팅으로, 문자로, 그러다가 이제는 화상통화까지,  이젠 유선전화조차 하지 않아도 아쉬울 것이 없는 세상이다.   


하지만 전자메일을 쓰면서는, 문자나 화상 통화를 하면서는, 예전에 편지를 쓰면서 절절하게 늘어놓던 그런 말은 잘 안 나온다.  한 줄 쓰고 한숨을 쉬기도 하고,  생각을 하기도 하고,  또 몇 줄 써 내려가고 하는 편지 쓰기와는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받은 편지를 몇 날 며칠씩 꺼내어 들여다보고 되씹어 보고 상상하는 대신, 받은 즉시 답하는 문자를 날릴(?) 수 있고 버튼 하나로 바로 삭제가 되는 신속함에 버릇 들여졌기 때문이다.  모니터는 쳐다볼 필요도 없이 키보드 위에서 단숨에 쳐서 입력시키는, 손가락 두 개로 다다닥 눌러 보내지는 사이버 커뮤니케이션은 단순, 간단, 명료한 단어들과  이모티콘을 이용한 짤막한 감정 표현에 익숙해질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뛰어난 적응력으로 별 무리 없이 자신을 변화시켰다.  편지를 쓰지 않고 문자를 날리는 세상을 만든 것이다.  


이제는 편지를 상자에 꽁꽁 넣어두는 대신 둥둥 떠다니는 구름에 '저장’한다.  그리하여 오늘날 쓰기 쉽고 보관하기 쉬운 만큼 ‘삭제’하기도 쉬운 우리들의 편지들이 전선안에 여기저기 매달려 있다.   


일부러 숨기거나 왜곡하지 않았는데도 편리함과 거기에 익숙해짐으로써 잊고 사는 진실이 세상에는 종종 있다. 특히나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인간의 편의에 의해 생기는 수많은 물건들 속에서,  우리는 편리함이라는 작은 것을 가지려고,  빠르다는 한 가지를 누리려고  많이 생각하고 손때를 묻힐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고 있다. 아니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아예 알아차리지 못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은 앞만 보는 게 아니라 가끔은 뒤를 돌아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고로 예전에는 알아차리지 못했던 진실을 다시 생각해 내기도 하고 발전의 대가로 바쳐진 온갖 궁상스러운 것들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그리고 새삼 소중하게 느낀다.   


상자의 맨 밑에 흰 편지 봉투가 보인다.   결혼식을 끝내고 신혼여행 길에 오른 맏딸에게 친정엄마가 주셨던 편지이다.  여행지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그 편지를 읽으며 얼마나 많이 울었었는지 모른다.  편지를 펼치니 동글동글한 필체가 마치 엄마의 얼굴을 보는듯하다.  딸에게는 이런 편지가 소중하다.   


아마 겨우 한 장을 채우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너무 오랜만에 쓰는 손글씨라 예쁜 글씨체로 안 써질지도 모르겠지만,  이번 주말에는 책상에 앉아 손편지를 써서 엄마께 보내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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