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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단 Mar 22. 2017

무지개보

손바느질로 만든 물건

처음에 세명으로 시작했었다.   

그러던 것이 해를 지나면서 어느새 열다섯 명이라는 적지 않은 수의 바느질 쟁이들이 모이게 되었다.  모두들 아이를 키우는 주부들이라 가족의 일들이 자신의 일보다 우선하기 때문에 수업에 오지 못하는 날도 왕왕 있지만, 그래도 평균 예닐곱 명 정도는 일주일에 한 번씩 하는 바느질 수업에 모인다.  

  

아이들을 등교시키자마자 바느질거리를 챙겨 들고 나의 작업실에 모여 바느질을 하다 보면 시간이 어찌나 빨리 가는지,  아이들의 하교시간에 맞춰 다들 부리나케 돌아가야 한다.  마치 자정을 넘기기 전에 파티에서 빠져나와야 하는 신데렐라처럼.  


나의 바느질 수업에서는 열다섯 명의 수강생 모두가 다 다른 바느질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몇몇은 사각형을 바느질하고 있는데 규칙적으로 사각형을 배열하는 디자인을 하고 있는 이도 있고,  또 다른 누구는 불규칙적인 형태를 도출하고자 바느질해서 다시 자르고 또 이어 붙이고 또 잘라서 다시 배열하면서 재미있는 형태를 만들고 있기도 하다.   누구는 삼각형을 이용한 디자인을 하고 있고 또 누구는 곡선 바느질을 해야 하는 디자인의 작품을 만들고 있는 이도 있다.   액자 작업의 막바지에 이른 어떤 이는 종이에 세 땀 상침을 하고 있기도 하고, 창문에 걸 발을 만드느라 쌈솔을 눈 빠지게 한 끝에, 창문에 묶을 끈의 끝부분을 예쁘게 하느라 삭모를 만들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그중 두 명의 프로젝트는 입체로 완성될 예정이다.   

이렇게 전통 바느질로 다양한 작업을 진행하면서, 누구는 밥상보라 부르고 누구는 만들어서 뭐에 쓰냐고 묻는 전통 바느질에 대한 그 시선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쓰고 있다.    


그러다 보니 나의 바느질 수업은 한 개의 아이템을 놓고 만드는 법을 강의하는 식이 아닌, 한 명 한 명 각자 나와 함께 아이디어를 내고 디자인을 하고 원단을 고르고 작업을 진행한다.  그리고 개개인의 바느질 작업 상황에 따라 코멘트를 해주고 수정하고 완성하는 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렇게 만지는 원단도 다 다르고 크기도 디자인도 다 다른 각자의 바느질을 하기 때문에 자신의 바느질을 하면서 뿐 아닌, 남이 하는 바느질 과정을 보면서 배우는 것도 그 못지않게 많다.   


요즘은 수업 중에 무지개보를 만드는 수강생들이 몇몇 있는데, 물론 사용하는 원단이나 크기, 디자인을 다 다르게 진행하고 있다.  한 명은 전통적인 무지개보를 만들고 있고, 또 다른 이는 무지개보를 만드는 기법에 파격적인 디자인을 적용한 변형 무지개보를 만들고 있어서, 직접 하고 있지 않아도 다른 이가 하는 것을 보면서 여러 개의 디자인을 해 보는 것처럼 대리체험을 할 수 있다.  이렇게 다른 사람의 작업 과정을 보면서 자신의 다음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작업에 관심을 가지고 의견을 보태기도 한다.   한정된 수업시간에 각자 다 다른 것을 가르치느라 힘들 수 있겠다 싶지만, 이렇게 모두가 함께 의견을 내고 평을 해 주면서 진행하는 수업은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 양쪽 모두에게 많은 도움이 된다.


손으로는 바쁘게 바느질을 하면서 유익한 수다 또한 넘쳐서 음식의 레시피를 공유하기도 하고 맛난 식당 정보를 풀기도 한다.  일주일 중 다른 하루에 모여서 골프를 치는 모임도 이 모임 안에서 만들어졌고 전시회를 같이 가기도 한다.  박스로만 구입해야 해서 망설였던 질 좋은 과일을 공동 구매하기도 하고, 최근에는 LA에서 올라오는 진짜배기 참기름과 들기름을 같이 구입했다.  이렇게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들이 되고 있다.   

  

무지개보를 만드는 수업 중에 샘플로 쓰고 있는 이 보자기는 만든 지 벌써 십 년이 되어간다.  

진한 분홍색의 은조사와 은색 자미사를 매치해 이어 붙인 뒤, 가운데에 세 땀 상침질을 촘촘하게 해 앞면을 만들고 연분홍색의 오래된 옥사로 뒷면을 대어 만들었었다.   내가 바느질해 만든 작품들 중에 무지개보 만드는 기법을 이용한 것들이 몇 개 있는데, 이 무지개보가 그중에서 가장 전통적인 형태를 따른 얌전한 보자기이다. 디자인을 변경하고, 새로운 원단으로 시도하는 등, 전통 바느질을 하면서도 항상 새로운 형태를 시도하며 재미나게 작업을 하고는 있지만, 가끔은 이런 얌전한 보자기를 꺼내어 보면서 십여 년 전 처음 바느질을 시작했을 때를 생각한다.  그러면 그때 나와 함께 했었던, 바느질을 하러 분당에서 홍대 앞까지 한차에 타고 그 먼길을 함께 오갔던, 오래전 그 바느질 멤버들도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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