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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매기 삼거리에서 Mar 18. 2020

베이비부머의 기록 - 가매기 삼거리 이야기

책머리 - 8살 꼬맹이 응답하라 1968


-- 잊히기 전에, 더 늦기 전에 1968년 전후 생활상을 서투나마 기록으로 남겨야 할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에. 저물어 가는 저와 새 시대를 살아가는 자식과 미래 세대를 위해서 한때는 이런 시절이 있었노라고. --




반세기 전 1960년대 기록이 희귀합니다. 사진기가 귀하기도 했지만, 사진 찍을 여유도 없었습니다. 지금 와서 먹고살 만한데 글로나마 당시를 세밀하게 기록하는 사람마저 드문 것 같습니다. 정치에 관한 것은 일부 있지만 생활상 전반에 대한 것은 찾기 어렵습니다. 지금은 어쩌다 말로 이야기하지만, 세대가 한 번 더 바뀌면 그때 그 시절은 영원히 잊힐 것입니다.


제가 태어난 1961년부터 국민학교 1학년 입학하던 1968년은 6.25 전쟁이 끝나고 10년 안팎 된 시기. 북한, 필리핀이 우리나라보다 잘 살던 때. 하루 약 6달러로 1인 의식주, 교육 등 전부를 해결하던 시절이라 생각보다 실제는 많이 열악했습니다. 한편 경제적으로는 가난했지만 마음은 한없이 풍요했습니다. 동네마다 뛰노는 애들이 그득하고, 학교서 오전반 마치고 돌아오면 오후 내내 앞산에서 전쟁놀이, 봉천내에서 수영하고 얼음배 타고, 논에서 올챙이와 메뚜기 잡으며 놀았습니다. 설날이면 동네 어른들 세뱃돈 받을 욕심에 새벽부터 일어나 아침 해를 기다렸습니다. 한없이 행복했던 개구쟁이 꼬맹이였습니다.   

 

이번에 태어난 가매기 삼거리 집으로 귀소 해서 보니 사시사철 뛰어놀던 추억의 장소들이 집 주변이었습니다. 끽해야 집에서 사방 100미터 거리. 그걸 벗어나면 큰 마음먹은 거였고, 300미터 이상은 원정이고 모험이었습니다. 100미터 그 좁은 세계에서 그리 행복할 수 있었다니 깜짝 놀랐습니다. 다시 그 세계로 돌아오니 행복이 다시 제게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옛 어른은 거의 세상을 떠났고 부랄 친구들은 모두 멀리 객지로 이사를 갔습니다. 다행히 동네 터와 길은 대개 그 자리이고, 산은 살아남았고, 내는 죽었다가 복원해서 생명을 되찾았습니다. 특히 도심에 앞산 줄기 전부는 전쟁 이후 한 번도 개발한 적이 없으니 제게는 어떤 보석보다 귀한 선물입니다.


마침 가매기 삼거리가 앞산과 뒤편 봉천내 사이, 도심이면서 논이 있는 농촌, 군부대 셋 사이에 낀 민간이라서 각 곳에 다 산 것처럼 추억이 참 많습니다. 발길이 닿을 때마다 그때 그 시절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마치 그때로 돌아가서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처럼.  


전 세계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급격한 경제 발전 속도로 인해 6살 차이 아내마저도 그 정도였냐고 의아해합니다. 잊히기 전에, 더 늦기 전에 1968년 전후 생활상을 서투나마 기록으로 남겨야 할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에. 국민학교 입학 전후 꼬맹이 눈으로, 가급적 그때 언어로. 저물어 가는 저와 새 시대를 살아가는 자식과 미래 세대를 위해서 한때는 이런 시절이 있었노라고.    


기록은 대소 주제별로 분류하여 다각도로 전개합니다. 완결되면 베이비부머 시대가 통째로 보이겠지요. 정겨운 얘기가 많고 지금 세대는 상상 못 할 일들이 넘칩니다.  


생활상 : 가족 / 주거 / 살림살이 / 의복 / 먹거리 / 놀이 / 동물 / 식물 / 곤충 / 꿈.....

사회상 : 명절 / 군부대 / 직업 / 종교 / 관혼상제 / 보건 의료 / 공용 공공시설 / 교통 통신 / 행정.....


국민학교 : 입학 / 등하교 / 담임 선생님 / 과목 / 행사 / 방학 / 친구 / 놀이.....

지명 유래 : 가매기 삼거리 / 태장동 / 육판바위 / 새동네.....


50여 년 전 어린 시절 기억이라 오류가 있을 수 있지만 의도한 것은 아닙니다.







그때는




1961년. 누드. 0살이니까요 머ㅎㅎ. 61년~68년경 제 사진 여기 석 장이 전부.

100일까지가 젤 위험. 낳다가, 낳고 나서 100일 전에 죽는 게 드물지 않으니까요. 생존 기념사진인 거지요.




1962년. 한 살 돌. 일단 살았다고 봐야. 그러니 이제 처음 사람답게 멋지게 꾸미고. 홍역 같은 무서운 병이 남기는 했지만요.   




1968년경. 8살 꼬맹이 때 사진은 이거 찢어진 거 단 한 장뿐. 아마 8살 국민학교 1학년 소풍 때 큰누나와 함께.  햇빛에 눈이 부신 해맑은 영혼의 장난꾸러기. 8살 꼬맹이 응답하라 1968은 요 꼬맹이 녀석 시각으로 쓴 글. 전지적 꼬맹이 시점이랄까요ㅎㅎ. 






지금은




가매기 삼거리 : 파란 풍선 자리. 2013년경 가매기 삼거리가 우로 길을 내서 가매기 사거리로 바뀜.

가매기 삼거리 동네 : 원주 종합사회복지관부터 태장1동 행정복지센터까지 100여 미터. 그리고 도로 양쪽으로 100여 미터. 우리 집은 그 둘 사이 중앙, 도로 접해서 왼쪽.






2017. 0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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