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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매기삼거리에서 Jun 03. 2024

엿장수 마음

24화. 응답하라 1968-먹거리 편


군부대 개구멍은 동네 꼬맹이들 놀이터, 쓰레기장은 사냥터다.

 

수송 부대. 가매기 삼거리 동네의 남쪽 경계로 개울이 흐른다. 너머로 붙어서 육공트럭이 잔뜩인 부대. 아침 6시면 기상 나팔. 일 년 365일 어김없다. 우리집이 부대 담벼락을 같이 썼을 뿐만 아니라 나도 단 하루라도 동네를 떠날 일 없었다. 마을 벗어나 이웃인 새동네와 중간 지점쯤에 부대 쓰레기장. 거기에 늘 고물과 오물을 버렸다. 철끈. 얄팍한 철로 되어 검고 납작하며 폭이 있는 줄자 같은. 이건 무거운 나무 상자를 둘러서 조이는 데 쓰였다. 엿장수 아저씨는 쇠붙이라면 무엇이든 좋아했다. 나무는 거들떠보지 않고 종이는 신문지마저 도배나 조각내어 밑 닦는데 쓰는 정도라 귀해서 길거리 엿장수가 넘볼 지위가 아니었다. 엿판을 리어카 위로 얹고 아래로 네모진 공간에 고물을 담는다. 엿공장에서 엿을 사다가, 엿 주고 고물을 받아서 고물상에 판다. 엿공장이래봤자 한두 명이 엿을 고아서 손으로 치대어 길게 늘리는 작업. 고물 사는 값은 엿장수가 정한다. 사든지 말든지. 엿 한 가닥, 두 가닥이건, 한 웅큼이건. 따지면 한 가닥 더 주고, 아까워 않으면 두 가닥 덜 주고. 흥정은 없다. 엿장수 마음대로. 환장하는 건 신주라 하여 포탄 바닥에 공이가 치는 부분. 전국 뉴스에 단골 등장. 육이오전쟁 때 불발탄은 국토 어디고 널렸다. 쇠가 돈이 되기에 고물상으로 집합. 신주 떼어내려고 망치로 두들기다가  터져서 즉사. 새동네서도 폭발 굉음이 두 번 들렸다. 그렇게 고물상 주인 둘이 죽었다.


부대는 개울가로 날카로운 철조망을 둘러 경계로 삼았고 민간의 침입을 막았다. 철조망 아래로 개구멍 하나. 개 아닌 애들이 뚫었고 기어서 드나든다. 내는 꼬맹이 한 길 깊이라 부대에서 보이지 않아. 개울에 몸 숨기고 있다가 군인이 안 보이면 침투. 쓰레기장서 철끈을 후다닥 챙겨 엿장수 갖다 주면 엿 가락 하나. 양 많으면 둘. 구멍 옆으로 옷나무 몇이 자랐다. 동무인 양 어리다. 개울 반대편이 논이고 끝에서 땅 한 길 반 돋우어 옻공장이다. 옻나무 껍질을 칼로 굵게 긋는다. 그 진액을 칠하는 옻으로 만드는 곳. 원주는 군사도시뿐 아니라 옻칠 공예로도 전국에 명성이 높았다. 그 공장이 시에서 유일하게 가매기 삼거리에 자리잡았다. 우리집 뒤로 담장을 두고 김봉룡 할아버지가 살았다. 옻칠 공예인 나전칠기 인간문화재. 답게 늘 한복 차림. 흰 수염은 관우 닮아 멋들어지게 바람에 휘날렸다. 신작로 걸을 때 더불어 날렵한 맵시는 모두의 눈길을 잡아챘다. 청년 제자들 서넛이 일을 배우며 도왔다. 옻공장 뒷마당으로 옻나무가 한 줄로 다. 양철판으로 담을 둘렀는데 나무가 우뚝우뚝 솟아 담장을 무릎인 양 내려다 보았다. 씨가 바람에 날려 부대 철조망 아래에 자리 틀었고 키를 작게나마 키웠다. 옻을 타는 사람은 따로 있다. 온몸에 우둘두둘 극심한 왕 두드러기. 얼굴, 머리통까지 뒤덮는다. 그런 이는 만지지 않고 근처만 가도 옻이 탄다고 할 정도로 옻하다. 오죽하면 옻칠한 가구 천 년 좀 안 쓸고 썩지도 않을까. 또래 춘근이가 그랬다. 개구멍 기다가 옻나무를 건드렸다. 일주일인가 가려워 생고생. 명준이는 급히 도망 나오다 철조망에 얼굴을 죽 긁혔다.




ㅡㅡㅡ




쓰레기장은 개구멍서 서너 보. 막사에서 멀리, 경계인 철조망서 가까이. 삽으로 두어 평 땅을 허벅지 깊이로 둥글게 팠다. 파낸 흙으로 테두리 삼아 둔덕을 쌓는다. 그래야 빗물이 흘러들지 않고 오물이 밖으로 쏟지 않는다. 한날은 둔덕에 나무 상자 하나. 사과 상자 반만하다. 양끝 둘레로 각 한 줄 철끈. 어랏, 저 안에 뭐가 들었지? 나무상자라니. 친구들보다 먼저 쌔벼야 한다. 군인 아저씨 안 보인다. 개울 바닥서 지면으로 올라 납작 엎드린다. 옻나무, 철조망 안 닿게 잽싸게 사사삭 기어서 개구멍 통과. 상자를 드는데 어랏, 꿈쩍 않는다. 영차. 힘들이니 움찔. 어영차. 들린다. 철조망 아래로 몸 먼저 나오고 밖에서 끌어당긴다. 군인 나타날까, 쫒아올까 서둘러 옮긴다. 들고 끌고 들고 끌고 땀 범벅. 뭐가 들었길래 이렇게 무거워? 사람 지나면 난닝구 벗어 덮어 가리고 걸터 앉아 모른 척 아닌 척.150여 미터 집 도착. 부대가 쌓은 브로꾸 담장 너머가 우리집. 개울 따라 멀리 왔지만 부대와 경계인 건 매한가지. 부대 안이 보이고 아니고 차이일 뿐. 우산 자루 모양의 길다란 빠루를 철끈 매듭 부위에 건다. 빙빙 돌려서 절단. 다시 빠루를 나무상자 판자 틈에 끼운다. 아래에 망치를 받치고 위 끝을 누른다. 우지끈. 나무가 부서진다. 쇳덩어리 가득. 하나 하나에 누런 구리스 즉 굳은 기름을 잔뜩 발랐다. 열과 줄 맞추어 빼곡하다. 수 십 개. 하나 빼서 들어보니 묵직. 필통만 하다. 잘 만든 쇠뭉치. 이게 뭐지? 무게 나가니까 엿장수가 반길 건 틀림없다. 까짓 철선 두 가닥은 이제 관심 아니다. 숨겨야 한다. 군인이 찾아올까, 엄마, 아부지한테 들킬까 겁난다. 어디다 감추지? 상자라 집안은 눈에 쉽게 띤다. 낑낑 힘들여 미류나무 위로 올린다. 집 담장에 커다란 나무 한 그루. 늙어서 해마다 미류나무 버섯이 큼지막 자란다. 희고 두터워 펼친 부채만큼 자라면 아부지가 따고 잘게 찢어서 데치면 식구들 맛나게 먹는다. 나무는 기둥에서 두 갈래 났고 그 사이에 상자를 얹는다. 아래서 올려 보아 갈래 기둥이 상자를 웬만큼 가린다. 둥근 나뭇잎 겹겹이 빼곡하여 천막과 같아서 상자를 이중으로 너끈히 감춘다. 나무가 집 안에서 자라니 나 외에 누가 오를 일 없다.


다음날. 기다리던 엿장수 아저씨가 집앞 신작로를 지난다. 한 뭉치 보여주니 깜짝 놀란다. 이거 어디서 났니? 주웠어요. 엿을 한 손 가득 쥐어준다. 속으로, 이렇게 많이? 더 줄까? 그러면서 한 웅큼 더. 속으로, 엄청 비싼 거구나. 이게 엿장수가 젤 좋아하는 신주인가보다. 겁 더럭. 어쩌지? 갖다 놓을까? 너무 무거워. 옮기다 들키면? 벌써 한 개 엿 바꿔 먹었는데? 다음날 한 뭉치 엿 뭉치. 다음날 한 뭉치 엿 뭉치. 질린다. 다음은 돈으로 달라하니 10원 동전 몇 개 선뜻 준다. 크림빵 하나 10원. 달여 세상은 다  것이었다. 


1968년경 꼬맹이 때. 그땐 그랬다.





잊히기 전에, 더 늦기 전에 1968년 전후 생활상을 서투나마 기록으로 남겨야 할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에. 국민학교 입학 전후 꼬맹이 눈으로, 가급적 그때 언어로. 저물어 가는 저와 새 시대를 살아가는 자식과 미래 세대를 위해서 한때는 이런 시절이 있었노라고.




♤ 그때는



동네에 구멍가게 하나. 담배 한 종류와 눈깔사탕, 크림빵, 딱지, 유리구슬 이딴 거 몇 가지. 낮에 리어카로 동네 이동하는 장삿꾼. 봄, 여름 엿장수, 여름 멍게. 한겨울 낮으로 트럭에 싣고 꽁치, 도루묵, 양미리. 밤으로 어깨에 메고서 찹쌀떡, 메밀묵 외친다.

군부대에서 쓰레기장에 버린 철끈을 훔쳐다 엿 바꿔 먹는 건 놀이이고 먹거리였다.


크림빵은 1963년 출시. 쫀드기는 국민학교 고학년 때쯤 나온 거 같다. 쇠뭉치 엿 뭉치 사건은 크림빵과 쫀드기 사이에 일인 게다.


우리집은 가매기 삼거리에 여럿이었다. 군부대 담장 끼고 미류나무집일 때, 신작로 건너편. 김봉룡 할아버지가 뒷집일 때.




 후



군대 가서 알았다. 첫 소총 분해. 소총의 핵심 부품. 총구, 개머리판 뺀 나머지 쇠뭉치 일체. 악, 그건 노리쇠뭉치였다.


그 중요한 게 왜 쓰레기장에 상자째 방치? 군수품 비리가 만연하던 시절이었다. 창문짝만한 가오리를 달리는 육공트럭 적재함에서 신작로에 던졌다. 민간에 팔아 먹는 거. 노리쇠뭉치도 그렇게 빼돌린 걸 꼬맹이가 가로챈 듯. 아니라면 부대 비상 걸렸을 거. 어쨌거나 시균이 청년 되어 죗값 받았다. 군대 끌려가 뒤지게 매 맞았다.




♤ 지금은



맞아. 이거였어. M1 노리쇠뭉치



가매기 삼거리를 에워싼 군부대 셋 다 시 외곽으로 이전했다. 수송부대 터와 건물은 예전 그대로. 하나는 빌라가 일렬로, 하나는 모텔촌이 들어섰다.


부대에 붙은 우리집은 대로로 확장되면서 도로로 편입되었다.


할아버지는 벌써 가시었다. 부인인가 한동안 보였는데 자손은 보질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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