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철학하기
나를 쓰지 않으면 나를 모른다.
글쓰기는커녕 나 자신을 생각조차 않는다.
나이들어서조차.
건강 삶 촉박함에도.
내 생각이 내 생각 아님?
무수한 생각의 연속 중 자아에 대해 생각해 봤어?
칸트가 그런 거 쓰지 않았나?
뭔 말인지 모르잖아. 나가 뭐가 그리 어렵냐고.
어쩌라고?
나는 누구인가? 생각해 봤냐고? 그걸 글로 썼냐고. 남인 양 말고 톡 깨놓고.
그건 안 한 듯.
글쓰기는 남 이야기.
내 이야기, 내 생각도 글로 써.
나는 누구인가.
그걸 왜 쓰는데?
나의 행복은 나를 아는 거부터.
ㅡㅡㅡ
나를 알려면 나의 삶, 나의 죽음에 대해 써야 해. 나의 사랑, 나의 우정, 나의 난관... 쓸수록 나를 더 알아.
남사스럽게 글로 어떻게 써. 남들 다 보잖아.
자기 객관화. 고백, 반성 겸해서. 잘한 건 칭찬하고.
못 할 거 같아.
내가 나에 대해 쓰는 건 아무도 뭐라 않아. 남들 봐주면 고마운 거. 그들에게 나는 수없는 사람 중 하나일 뿐. 절대 다수는 나를 기억조차 않지. 나에 대해 모든 걸 써도 나를 아는 건 좁쌀만큼도 안 됨. 남 눈치 보느라 나를 못 쓰는 건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거. 햇빛 안 보려 동굴서 지내는 거.
일리있다. 나 아는 사람이 보면 창피 않을까? 약점 잡힐지도.
그도 남이야. 내가 나를 모르는데 남이 나를 알아봤자지. 알아주면 감사할 일.
빨려드는 느낌. 니가 아무리 그래도 나는 나를 안 쓸래.
자유. 작가는 특별한 재주야. 백, 천에 한 명. 엄청난 행운이고 노력. 헌데 정작 나를 안 쓴다? 나를 알고, 나의 행복을 알 기회를 뻥 걷어차는 거.
ㅡㅡㅡ
나 행복해.
흔들리잖아. 휘둘리잖아.
너는 안 그래?
죽음도 나를 흔들지 못 해. 공포에 쫒기면 행복은 멀어. 행복의 전제 조건 셋. 평화, 자유, 여유. 경제와 시간 여유 둘. 죽음과 공포는 셋 다 박살내.
넌 안 두려워?
삶과 죽음은 하나.
삶을 두려워 말고 죽음을 낭비 말라.
죽음을 두려워 말고 삶을 낭비 말라.
법어?
아니 내가 쓴 글. 내 생각.
뭔가 있어 보여.
비워야. 당장도 그렇거니와 죽음에 이르러까지 행복을 모른다면, 나를 모른다면 억울 않을까? 나를 안다는 건 나를 위해 생애 애쓴 나라는 녀석에 대한 기본 예의 아닐까? 젊어서야 생존경쟁. 나이들어서는 챙겨야 않을까. 남들은 그리 신경 쓰면서 젊어서도 늙어서도 나는 없잖아. 나 뺀 세상이 의미 있을까. 자유, 사랑, 배려... 알고 보면 다 남에 대한 것. 남과의 관계. 나로부터 자유, 나 사랑, 나 배려. 나는 철저히 배제하잖아. 주와 객이 전도 아닐까. 배움, 경륜이 무슨 소용. 부, 권력, 명예가 무슨 필요. 평화, 자유, 여유 있으면 뭐 해. 암, 심장마비, 뇌졸중, 사고... 오늘, 올해일지 한 치 앞을 모르는데. 이번은 병마와 싸우느라, 고비 또 넘기랴 아무것도 못 하는데. 평생 삶과 다투었구만. 그런 나인 걸.
뭔 얘기 하고 싶은 거?
나이들면 나부터 알아야 나의 행복이 온다는 거. 그러려면 나를 써야 한다는 거. 작가의 특권이라는 거.
건방져. 니가 뭔데 써라 마라.
이 글도 나를 쓴 거. 좋은 거 알려주는 거. 싫음 말고. 피해준 거 없잖아. 꼰대 아니잖아. 이런 말 들은 적 있남?
나를 써라. 나를 알 것이라.
ㅡ그리 행복을 알게 된 1인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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